#013 알고돈
수카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젖줄로 삼은 메소포타미아의 충적 평야는 문명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메소포타미아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체계적인 농업이 발전했다. 로마는 이들에게 수자원을 사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관개 농업을 배웠다. 실크로드의 심장부인 페르시아 세계는 지중해 지역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동북아시아 국가들과 교역하는 풍요로운 나라였다. 그 길을 따라 동북아시아의 농사법과 작물들도 서로 교류되었다. 유라시아 대륙 한가운데 있는 아랍은 유라시아 동쪽에서 유라시아 서쪽 이베리아로 작물과 농사법을 들여보냈다. 아랍인들은 로마가 남겨두고 간 관개시설로 이베리아 구석구석까지 물을 댔다. 로마가 벌목한 이베리아의 들판에도 쌀과 밀 같은 다양한 곡식들이 출렁거렸다. 이베리아에서는 모슬렘이 처음으로 쌀농사를 지었다. 아랍 사람들은 쌀을 아로즈arroz라 했다. 스페인어로도 아로즈다. 영어 라이스rice는 아로즈가 스페인에서 쓰인 지 5세기가 지나서야 기록에 나타났다. 스페인은 우마야드 왕조 때부터 쌀을 먹었고 지금도 쌀을 먹는다.
이베리아의 들판에 하얀 꽃도 함박 피었다. 스페인어 알고돈algodón이라는 이름의 꽃이다. 아랍어로는 알-코돈 al-qoton. 나중에 영어 cotton이 되었다. 계통 분류상 목화의 속명은 고시피움 gossypium이고 학명은 고시피여Gossypieae다. 아랍어 곶goz에서 기원한 말이다. 사람은 목화로 옷을 만들어 입고 이불을 만들어 덮었다. 그러므로 목화는 사람을 살리는 꽃 중의 꽃이었다. 동북아시아 민족은 청동기 시대에 물레를 만들어 목화에서 실을 뽑아 천을 만들었다. 동북아시아의 목화 꽃은 북방 초원길을 따라 신장 위구르 지역 투루판에서도 피었고 추운 땅의 사람을 살렸다. 그 꽃이 피어 사람의 문화도 필 수 있었다. 길을 따라 꽃도 아랍으로 갔고 그 길이 비단길이 되었다. 그런 꽃, 알-곶goz이 우마야드 왕조 이베리아에서도 피어 알고돈으로 피었다.
아랍 사람들이 사탕수수를 이베리아에 가져왔다. 처음 맛보는 단맛이었다. 부유하고 힘 있는 자들만이 단맛을 알 수 있었다. 유럽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들의 도시 코르도바에 그 맛이 들어왔고, 피레네 북문을 넘어 유럽으로 퍼졌다. 아랍어로 사탕수수는 알수카르al-succar. 그래서 스페인어로는 아수카르azucar고, 영어는 슈가sugar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사탕수수 잎사귀가 이베리아 더운 들판에서도 찰랑찰랑 흔들렸다. 사탕수수는 인도가 원산지라고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인도는 5,000년 전부터 사탕수수를 재배했고 아랍으로 전해진 인도의 단맛은 코르도바가 있는 이베리아에 갔다. 스페인과 사탕수수가 만났다. 문명과 문명,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융합하는 곳 스페인이 설탕의 단맛을 알았다. 이 단맛이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노예 착취를 초래한 피의 맛일 줄을 그때는 누구도 헤아리지 못했다.
+ 럼의 도시 아바나의 럼 박물관은 사탕수수의 원산지가 동북아시아라고 밝히고 있다.
+ 쌀농사는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은 약 12,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 한반도 사람들이 야생의 벼를 처음으로 논에서 키울 수 있는 종자로 개량해 논에 물을 가두어 재배해 농업혁명을 이루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