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베리아

1. 이베리아

#014 톨레랑스

by 조이진

톨레랑스

종을 닮은 석류꽃은 우마야드 왕조의 상징이었다. 이베리아 이슬람 왕조가 창조한 숱한 아름다움과 위대함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석류꽃은 톨레랑스였다. 우마야드는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교도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거나 내쫓지도 않았다. 우마야드의 이런 관용 정책이 모슬렘과 기독교도의 협력과 통합을 이끌었다. 열린 마음이 이베리아의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슬람 신앙을 믿지 않더라도 특별세를 좀 더 내면 되었다. 이슬람 통치자는 일정한 세금을 낸 기독교인들을 모슬렘과 공평하게 대우하고 보호했다. 고트 치하에서 심하게 박해와 차별을 받았던 유대교도들이 모슬렘들을 좋아한 것은 당연했다. 세금도 기독교도와 유대교도에게 자신들이 모슬렘의 피정복민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의미로 가벼운 정도였다. 모슬렘들은 기독교도와 유대교 신도도 모슬렘과 마찬가지로 “코란의 사람들”로 대우했고, 그들도 같은 유일신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들로 대했다. 코란이 가르친 톨레랑스였다. 우마야드 왕조는 기독교와 유대교도가 낸 세금으로 그들의 종교를 위한 예배당을 지어주기도 했다. 기독교도와 유대교도들이 모슬렘 문화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자유를 되찾은 유대인들은 주특기 분야인 의학, 철학, 상업, 예술 분야에서 크게 이바지했다. 유럽에서 농업이 가장 발달했던 이베리아 농민의 상황도 기독교 고트족이 통치하던 때보다 개선되었다. 모슬렘 정복자들은 이베리아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했던 기독교 영주들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농지개혁을 시행했다. 농민들은 생산물 가운데 일정하게 정해진 몫만 영주들에게 나눠주면 되었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것으로 먹고 팔 수 있었다. 우마야드와 코르도바는 혁명적이었다. 예수가 그토록 중요하게 설파한 사랑의 요체는 관용이다. 예수는 관용할 수 없는 것을 관용하는 일이 관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원자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원자 알라를 믿는 자들이 먼저 세상에서 실천했다. 메시아가 다름을 먼저 관용했다. 이베리아에서 석류꽃은 그렇게 피었다.

우마야드 왕조 전성기 영역



+ 영어 단어 “cordoba”는 오늘날에도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도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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