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알우드
우드
우드Al’ud는 아랍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악기였다. 실크로드 남북로 두 갈래 길과 인도에서 오는 긴 상단 행렬이 모이는 도가니 파르티아 고원에서 우드는 처음 만들어졌다. 이란, 이라크가 파르티아 땅에 있다.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후 3세기까지 파르티아 왕국이 중동지역을 통일했다.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터키, 시리아, 걸프만 국가들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그 영토가 광대했다. 페르시아Persia라는 이름은 파르티아Parthia 왕국에서 비롯했다. 파르티아가 이 지역을 통일해 정치적으로 안정을 유지했기에 실크로드가 연결될 수 있었고 이 시대에 파르티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번잡하고 국제적인 장소였으며 실크로드에서 온 낙타들은 파르티아 왕국을 통하지 않고는 지중해에 다다를 수 없었다. 파르티아가 지중해 일대와 히말라야 사이 지역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 무렵 작고 별로 유망하지도 않았던 도시 로마가 해안의 도시국가들을 차례차례 탈취한 끝에 서비 지중해 일대를 지배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동방을 향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악티움 해전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 모든 것을 걸었지만 옥타비아누스의 로마군에 패배하고 말았다. 잘 익은 이집트라는 과실이 로마의 품에 떨어졌다. 이집트의 점령이 로마를 성공과 영광의 가도로 이끌었다. 이집트 점령으로 벽돌로 지은 로마는 이집트 대리석의 도시로 바뀌었고 동쪽 지중해 연안에 닻을 내린 로마 병사는 아시아에서 사랑하고, 포도주를 마시고, 조각품과 그림과 미술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 이집트가 로마의 운명을 바꾸었다. 로마는 동방에서 만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고 비단을 실은 낙타가 오는 아시아로 팽창했다. 페르시아의 팽창과 로마의 팽창이 겹겹으로 부딪혔고 끝내 로마가 승리했다. 전쟁에서 로마는 파르티아 군단이 전투 때 우드를 연주하며 싸우는 모습을 처음 보고 들었다. 파르티아에서 태어난 우드가 로마로 갔다. 또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거쳐 우마야드 왕조 이베리아로 들어갔다. 우드는 남으로는 인도에 가서 시타르sitar가 되었고, 동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의 비파가 되었고, 신라의 비파로 연주되었다.
7세기에 우드는 유라시아 동쪽 백제, 신라에서도 서쪽 끝 이베리아에서도 연주되었다. 그때 세상은 우드의 현으로 길게 이어졌다. 음악으로 이어진 지구는 그때 벌써 작고 좁았다. 이베리아에서 우드의 현이 당기고 퉁겨지자 유럽에서 음악이 탄생했다. 파르티아 인들은 나무로 소리통을 만들어서 우드라고 불렸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이베리아에서 우드는 널리 사용되었다. 뒷날 레콘키스타로 모슬렘을 축출한 뒤 기독교도들은 우드를 주요 악기로 연주하면서도 이단이자 적인 모슬렘의 악기를 쓰는 일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독교도들은 뒤로 둥글게 배 나온 우드의 소리통을 판판하게 개량했다. 제법 달라 보였으니 모슬렘 악기가 아닌 다른 악기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알-우드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정관사 '알'을 유럽식 정관사 '엘'로 바꾸어 엘우드가 되더니 류드가 되었고 또 오늘날의 류트lute라는 이름이 되었다. 류트라는 이름이 되니 이 악기가 본디 유럽 악기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드가 이베리아에 올 때 유럽에는 캐스터네츠와 탬버린 말고는 별다른 악기가 없었다. 정관사를 바꾼 엘우드가 있어서 중세 유럽의 가톨릭 교회 음악이 생겨났다. 우드가 있어서 근대 클래식 음악도 나올 수 있었다. 바흐도 헨델도 많은 류트 곡을 남겼다. 모슬렘의 알-우드가 기독교 유럽 음악의 어머니였다. 복수심에 불탄 돈 훌리안이 모슬렘에게 성문을 열어주었을 때 유럽 음악의 문도 열린 셈이었다.
이슬람 사회는 코란을 읊기 위해 음악을 연주했다. 모슬렘은 늘 코란을 읊으므로 아랍에서 음악은 일상이었다. 모슬렘은 지하드로 이슬람의 세력을 넓혔다. 파죽지세로 승리해 돌아온 전사들을 위해 매일 같이 잔치가 열렸다. 잔치에서 음악은 중요했다. 승리가 많아질수록 축제가 많아졌고 그럴수록 이슬람 음악은 발전했다. 군인들을 위해 마련한 술과 음악이 있는 축제. 춤과 여자가 없을 수 없다. 지중해를 장악한 이슬람 세계는 돈이 넘쳤다. 로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슬렘 세력가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는 가수가 노래하고,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 1명의 빼어난 유명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하고 커튼 뒤에서는 50명이 넘는 소녀들이 백 코러스를 넣었다. 이 가수와 소녀들이 손에 들고 연주하는 악기가 우드였다.
+ 물방울 모양의 비파는 대한제국이 끝날 때까지 궁중 안팎에서 널리 쓰였다. ‘금슬이 좋다’는 표현에 나오는 금(琴)은 거문고, 슬(瑟)이 비파다. 낙조가 아름다운 곳 부안 능가산 가슴팍에 묻혀있는 내소사 대웅전 천장에는 여러 악기와 함께 비파가 그려져 있다. 백제 무왕 633년에 페르티아의 악기가 동북아시아에 왔다.
+ 생김새는 비슷해도 우드와 기타라kithara는 근본이 완전히 다르다. 우드는 기타처럼 몸 안에 품고 손가락으로 튕겨 연주하는 악기고, 기타라는 무릎에 세워 양 손가락으로 훑는 소리를 하프류 악기다. 기타라는 크레타에서 처음 만들어져 그리스와 로마에서 연주되었다.
+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아우구스투스를 칭송하면서 이때 벌써 지중해 지역을 넘어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세계 정복을 시로 노래했다.
+ AD3세기 로마 역사가 Junianus Justinus는 스키타이어로 '망명'을 'Parti'라고 하는데 파르티아인은 스키타이민족의 일원이었다 추방된 사람들 일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