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가이나
가이나
노래하는 노예 소녀를 아랍 사람들은 가이나quayna 또는 가이네quaynah라 불렀다. 그리고 가이나 무리를 기인qiyãn이라 했다. 가이나들은 높은 수준의 춤과 노래를 훈련받았다. 뿐만 아니라 품위 있는 태도와 수준 높은 교양 지식도 갖췄다. 가이나들은 대개 아랍 역사에 기억될만한 영웅의 일화를 소재로 짧게 함축한 노랫말에 가락을 실어 노래로 불렀다. 가이나들이 직접 가사와 가락을 지어 노래 불렀으니 요즘의 싱어송라이터다. 기인들은 공연에 필요한 의상과 소품, 무대 같은 것들도 스스로 디자인했다. 그림자 인형극이라는 장르를 발명해 낸 것도 기인들이었다. 가이나들의 섹스어필하는 무대 프레젠테이션은 공연에 대한 평판을 갈랐다. 그때부터 섹스 요소는 쇼 비즈니스 성패의 관건이었다. 가이나들의 주인은 대개 모슬렘 사회 지배 엘리트들이었고, 주인들은 전문 매니저를 두어 가이나들을 양성했다. 가이나들은 노예 신분이었으니 주인들은 재능 있는 가이나를 사 올 수도 있고 또 되팔아 돈을 버는 사업 대상이기도 했다. 많은 연예인을 거느린 소속사 경영자, 그들을 관리하고 양성하는 전문 프로듀서, 트레이너들에게 훈련받은 아티스트, 그들이 창작하고 공연해 돈을 버는 시스템이 그때부터 있었다. 연예인들의 노예 계약 관행도 오랜 파르티아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었다. 텔레투사처럼 빼어난 아티스트이자 섹시한 엔터테이너들은 공연을 마친 후 주인이 초대한 권세 있는 손님에게 이부자리 시중을 들었다. 그것도 가이나들의 일이었다. 스스로 원해서 이부자리에 들었다면 창녀라 할 것이나, 그들은 주인의 소유물이었고 이슬람 율법은 주인들이 노예를 성적으로도 강제할 수 있게 보장했으니 매춘이라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가이나들이 창작한 수많은 노랫말 작품은 기록으로 남았다. 중세 아랍 여류 문학사는 가이나들의 문학사라 할만하다.
7세기 이슬람 세계에서 처음으로 남자 뮤지션 집단이 나타났다. 이들을 임마imã′라 불렀다. 임마들은 가이나들보다 공연료가 낮았고, 노래의 수준도 낮았다. 임마들도 섹스를 노래와 결합했다. 이들은 여성 역을 하며 노래를 불렀고, 섹스를 이용해 돈을 모았고, 자유 신분을 사서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다. 이때 지중해 세계 어디서나 여자든 남자든 노래하는 자들은 모두 몸을 팔았다. 그러다 보니 뮤직이란 사랑이 어떻고 하는 가사로 노래 부르면서 술 마시며 웃음도 팔고 몸도 팔 때 배경음악으로 연주되는 저급한 일 정도로 여겨졌다. 예언자 모하메드가 죽기 전까지 아랍 세계는 무척 방탕한 사회였다.
아랍 문화가 알-안달루스를 건설했을 때 가이나들도 이베리아로 데려왔다. 그리고 이제 코르도바에서도 가이나들을 직접 양성하고 음악을 프로듀싱하는 연예 제작자들이 자리 잡았다. 이집트를 비롯한 지중해 세계 전체에 가이나들이 퍼졌다. 세비야가 이 무렵 지중해 상업의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늙은 카디스가 젊은 세비야를 낳았다. 돈 많은 상인들이 모이는 곳이니 가이나들도 많았다.
세비야가 기인 양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세비야에서 잘 양성된 가이나들은 노예였으니 수출 상품이기도 했다. 세비야의 가이나들이 북아프리카를 비롯해 이집트, 페르시아, 바그다드 등 지중해 여러 곳으로 퍼졌다. 로마와 아테네도 물론이었다. 이베리아 스타일은 언제나 최신 유행 스타일로 선망되었으니 음악적 형식과 방법, 악기와 연주법들까지 모두 함께 세계 풍류 시장에 전파되었다. 춤과 무대 연출 방식도 함께 따라갔다. 가이나들이 세비야산 악기들을 연주했다. 세비야산 악기는 이때부터 세계적인 명품으로 취급받았다. 손가락으로 튕겨서 연주하는 우드류와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류 악기가 가장 많이 연주되는 악기였다. 그 다음은 피리류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에서는 대나무 같은 관악기에 입술을 대고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악기류를 이르러 피리pili라 했다. 중앙아시아의 피리는 고조선과 고구려 시대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아프리카로 가이나들과 악기를 실어 보낸 배는 금과 흑인 노예들을 싣고 돌아왔다. 세비야는 엔터테인먼트로만 명성을 드높인 것만은 아니었다. 흥청망청 마시고 노는 일과 섹스에 탐닉하고 향락에 빠진 도시로 지중해 세계에서 널리 알려졌다. 우마야드 왕조 시대의 세비야는 가장 화려했고, 또 가장 방탕했다. 그 세비야가 자신을 빼다 박은 딸 아바나를 카리브 바다 한가운데에 낳았다.
+ 우리도 기생들을 기인이라고 했고 여자아이를 낮춰 부르는 말로 가이나 또는 가시나라고 했다.
+ 프랑스어인 악기 이름 오보에는 ‘높은', '소리가 큰'이라는 뜻의 haut와 '나무', '목관'을 뜻하는 Bois가 합쳐진 단어다. 바람을 불어넣어 높은 음을 내는 나무통이라는 뜻이다. 이 오보에 연주자가 입술을 대고 부는 리드를 피루엣Pirouette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