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가누아
가누아
콜럼버스도 오비에도도 가누아canoa를 만드는 방법을 기록했다. 나무를 잘라 “돌도끼로 자르고 속을 도끼로 찍고 불로 태워 재로 만들어 돌칼로 조금씩 속을 파내가기를 거듭하여….”라고 기록했다.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뿐 아니라 북아메리카 오대호 주변의 원주민들도 같은 방법으로 카누로 만들었다. 콜럼버스는 캐나다 허드슨만 일대를 항해하다 가누아를 탄 원주민들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다이노들은 속을 파낸 카누에 널빤지를 대고 걸터앉아 노nahe를 저었다. 노는 “빵 구울 때 쓰는 긴 자루 달린 삽처럼 생겼는데 그보다는 머리가 뾰족하다”라고 라스 카사스는 적었다. 노는 통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다이노들이 서기 후 1,000년쯤에 만든 노는 길이 1.5m가량에 버드나무 잎사귀를 닮았다. 카누의 길이는 용도에 따라 달랐다. 콜럼버스가 바라코아에서 보고 아름답다고 기록한 카누는 20m도 넘었다. 그 배에 150명이 탔다고 콜럼버스는 적었다. 콜럼버스의 배에 올라탄 가시관은 길이 30m, 폭 2.5m짜리 카누를 타고 왔다. 또 콜럼버스는 70, 80명이 탄 카누를 보았다고 했다. 그들 중 절반은 노를 젓고, 절반은 바닥에 앉아 쉬었다가 교대한다고 했다. 카누로 사용한 나무들의 보통 크기를 생각하면 표준적인 카누는 10~12m가량이라고 추정된다. 그 정도면 40~50명이 탈 수 있는 크기다. 항해전문가들은 그 정도 크기가 높은 파도를 타기에 가장 유리하다고 했다. 더 크거나 작아도 난바다에서는 불리하다는 것이다. 라스 카사스는 카누들이 “하루에 70km가량씩 항해했다”라고 적었다. 다른 기록자는 “쾌청한 날에 보통 500km씩 항해했다”라고도 했다. 콜럼버스는 “그들은 유럽인들이 믿지 못할 만큼 활발하게 항해한다. 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과 섬을 카누를 타고 이동했고,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했다”라고 기록했다. “매일 히스파니올라와 푸에르토리코의 장에서 물건을 교환했다”라는 기록도 있다. 여러 섬에 흩어져 살았지만, 카누 타는 다이노들은 하나의 생활과 문화권으로 연결해 살았다. 최대 1,000kg 정도의 농산물을 실어 해안을 따라 위치한 마을로 운반했다는 기록도 있다. 다이노들은 크기가 큰 카누에는 그림을 그려 장식했다. 스페인 기록자들은 “놀랍도록 아름답다”라고 적었다. 가시관을 상징하는 새나 토템 동물의 이미지를 그렸다. 히스파니올라의 가시관인 해태이도 카누를 타고 와서 쿠바 다이노들과 함께 스페인군과 무장 투쟁을 계속했다. 플로리다 인디언들도, 루이지애나 인디언들도 카누를 탔다. 멕시코도 그렇고,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칠레에서도 그랬다. 카누라는 해류라는 고속도로를 달려 중앙아메리카 전역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주는 자동차 같은 것이었다. 카누를 타고 물건을 교역하였고, 섬에서 섬으로 이주하였다. 카누가 광범위한 중앙아메리카 문화를 만들었다. 멕시코 정복자 코르테스는 다이노들이 모로코 앞바다 카나리아섬까지 갔다고 단정했다. 콜럼버스는 다이노와 관체족의 피부색이 같다고 기록했다. 정말 그랬다면 그들도 카누를 타고 갔을 것이다. 밝족의 땅 이베리아 코앞까지 카누를 타고 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