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환
환
유라시아 대륙도 아직 빙하가 다 녹지는 않았다. 춥고 먹을 것은 궁했다. 인간은 동으로 향했다.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걸었다. 해가 빨리 뜨는 쪽이 따뜻했다. 동트는 동녘은 밝아서 환했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이 동북아시아다. 가장 먼저 해 뜨고 밝은 동쪽 끝에 먼 길 온 사람들이 모였다. 그래서 한반도는 그 무렵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 중 한 곳이었다. 동북아시아 신석기인은 스스로 ‘밝’족이라고 했다. 세상을 환히 밝히는 해가 있는 하늘을 숭배했고, 하늘이자 해가 낳은 아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렇게 환한 임인 환웅을 조물주 임금님, 하느님으로 모셨다. 하느님의 아들 단 임금의 자손이므로 바위를 쌓아 올리고 흙을 쌓아 올렸다. 그래서 하늘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고, 그 꼭대기에서 해와 조상신에 제를 올렸다. 환한 밝족은 스스로 단 민족이라 했다. ‘환’과 ‘단’은 아주 오래전에 같은 옛말이었다. 지구 기온이 급상승했다. 빙하가 녹았다. 살기가 좋아지니 인구가 많아졌고 사냥과 채집만으로는 먹을 것이 부족했다. 신석기 사람들의 뇌 용량은 현대인과 같다. 그러므로 축적된 문명이 다를 뿐 지능은 같다. 동북아시아인은 지구상에서 북방계와 남방계의 여러 민족이 섞인 유일한 곳이다. 섞인 피는 강하다. 여러 피가 섞여 두뇌가 뛰어난 동북아시아 조상들이 인류역사상 최초로 농업혁명을 이루어냈다. 한반도 신석기 사람들이 들의 숱한 풀 속에서 원시 벼 종자를 찾아내 개량하여 재배했다. 13,000년 전 일이다. 7,000~8,000년 전에는 인류 최초로 콩, 들깨도 종자를 개량하여 밭에서 재배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보리와 밀을 재배했다. 날이 따뜻해지니 인구가 갑자기 크게 늘었고, 만주에서 서쪽 중앙아시아로, 동쪽 캄차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할 때 쌀과 밀과 보리와 콩을 지녔다. 쌀 종자를 개량한 지 4,000년 지난 약 7,000~8,000년 전에는 아메리카의 원주민들도 메주와 감자 등 여러 작물을 종자 개량했다. 그리고 인구가 폭증했다. 누군가는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