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라반다

7. 사라반다

#175. 팀파니

by 조이진

드럼

신은 하지 못했다. 대신 이교도와 노예의 악기와 리듬이 음악과 춤을 해방했다. 카리브의 보물선은 스페인에 금은보화를 쏟았다. 보물선은 스페인의 남쪽 문으로 카리브의 소리와 리듬도 실어 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악기와 악기가 만났고 음표와 음표가 만났다. 사람이 만나니 소리와 리듬이 바뀌었다. 새로운 소리와 리듬이 만들어졌다.


마틴 아그리콜라는 16세기 종교개혁과 음악의 르네상스 태동기의 독일 작곡자였다. 그가 <독일의 기악Musica instrumentalis Deudsch>(1528)를 저술했다. 이 책이 유럽 음악의 르네상스를 자극했다. 이 책은 악기마다 만들어진 유래와 사용된 역사, 악기의 구조, 소리를 내는 원리 등에 따라 분류했다. 그가 독일어로 정리한 음악 어휘는 현대에도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가 책에서 중요하게 다룬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악기는 오르간과 류트 그리고 플루트였다. 방대한 분량의 책이었지만 드럼이라는 단어는 들어있지 않았다. 드럼은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니그로 모슬렘의 악기였다. 오래전에 이베리아 남문을 열고 들어온 드럼은 그런 이유로 아직 피레네를 넘지 못했다. 드럼은 1540년에서야 영국에서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피레네 너머를 유럽으로 볼 때 유럽에서 처음 기록되었다. 옥스퍼드 사전도 1573년 이전에는 드럼이라는 단어가 영국에서 흔히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Bodhran.jpg 아일랜드 켈트족의 전통 악기 보드란과 지핑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죽 북과 매우 유사하다./위키피디아

피레네 너머 유럽에서 가장 먼저 북을 사용한 민족은 켈트족이었다. 붉은 머리칼을 두 갈래로 땋은 켈트족은 다른 서유럽 민족과 달리 일찍부터 바지를 입었다. 투구에 새 깃털도 달았다. 갈리아 지역에 똬리를 튼 켈트족은 본래는 중부유럽에서 살았었다. 켈트족이 이베리아에 와서는 바스크족과 혼혈하여 켈티베리아 민족을 형성했다. 켈트족은 보드란이라는 북을 두드렸다. 손으로 북을 잡은 위치에 따라 보드란은 소리의 음정과 음조가 달라졌다. 왼손으로는 보드란 북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작은 나무 막대기를 채로 삼아 가죽을 쳐 소리를 냈다. 나무 북채를 지핑이cipíní라 했다. 나무 북 통의 변죽을 울려 다른 색의 소리로 만들어내기도 했고 맨 손가락으로 보드란을 다스려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악기는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두었다. 중앙아시아에는 여러 종류의 다프daf가 있다. 북 틀에 부드럽고 얇게 다듬은 가죽을 씌워 손으로 두드렸다. 쇠붙이를 북 틀에 끼워 흔들면 짤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쇠고리 같은 래틀을 달아서 두드리고 흔들면 수선스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 도이라Doira의 조상이기도 했다. 다프와 도이라는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본 악기다. 보드란과 다프는 흔들어서 소리를 내거나 북채로 다스리는 드럼이다. 이런 중앙아시아의 북류는 손으로 두드려 소리를 아프리카계 드럼과는 뿌리가 다르다. 켈트의 방랑 예인들은 다른 악기들도 사용했다. 한 손으로는 피리를 불고, 다른 손으로는 나무 채를 써서 탐보르tambour를 두드렸다.

탐보르. 우리 북과 비슷하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다보tabor라 하는 악기를 유럽인들이 탐보르라 불렀다. 탐보르는 우리의 북과 생김과 연주법이 같다. 탐보르는 늘 피리와 함께 연주되었다. 탐보르가 비트를, 구멍 3개 뚫린 피리가 소프라노를 맡았다. 밝족이 중앙아시아를 통과해 이베리아에 온 뒤로 피레네의 바스크도 탐보르를 연주했다. 바스크의 탐보르tambour de basque를 이탈리아 사람들이 바스크의 작은 탐보르Tamburello basco라고 불렀다. 그것을 프랑스 사람들이 탐부른Tambourin이라 줄여 불렀다. 뒷날 탬버린이라 불렸다. 바스크 탐보르는 북채를 때려 가락과 장단을 만들던 악기였다. 반면 오늘날 탬버린은 몸통 틀에 10여 개의 구멍을 뚫고 한 벌씩의 엷은 금속 원반을 끼워 서로 부딪쳐 울리게 하는 악기다. 탬버린은 다보보다는 다프에 가깝다.

바스크 악기 3종. 북과 피리, 탐보르


다프. 중앙아시아 음악의 기본 악기다. 안의 쇠링이 래틀이다.


팀파니

16세기에 스페인은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시작했다. 기독교 수호국 스페인과 이슬람 수호국 오스만의 종교 전쟁이자 지중해 패권 전쟁이었다. 스페인은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로 쳐들어온 알모라비데가 전투 때 북을 두드린 일을 기억했다. 그 충격을 기억했다. 몇백 년이 지났어도 그 두려움은 또렷했다. 그때 알모라비데는 몸에 두 대 한 쌍의 케틀드럼을 착용하고 작은 북채로 두드렸다. 스페인이 알모라비데의 드럼을 전투에서 군악 무기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었다. 케틀드럼은 니그로의 것이었고 가죽은 피로 물들여서 검은색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군사가 사용할 수는 없었다. 드럼 가죽을 흰색으로 바꾸었다. 흰색은 천사를 상징하는 색이었다. 비로서 기독교군의 악기다워졌다. 그것을 팀파니라고 불렀다. 귀한 것이니 귀족의 정예부대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스페인이 전쟁에서 군악기로 사용한 뒤로 팀파니는 유럽에서 귀족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했다. 이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팀파니는 소품으로 자주 등장했다. 작품 속에서 팀파니를 두드리면 전투가 시작되었고, 왕의 행진에서 위엄을 드높일 때 팀파니 소리가 효과음으로 사용되었다. 또 비장한 죽음을 표현할 때도 팀파니를 낮고 잘게 두드려 배경음으로 사용했다. 셰익스피어 연극에 “흑인 무어 놈이 음악에 맞춰 입장한다”라는 지문이 있다. 무어가 춤을 추며 들어오도록 지시한 지문이다. 그때도 영국에 흑인이 있었고, 그들이 춤을 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흑인이 무대에 올라 연기하지는 않았다. 백인이 흑인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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