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라반다

7. 사라반다

#176 모리스카

by 조이진

모리스카

이베리아가 가장 먼저 춤을 추었다. 800년 동안 무어가 지배한 영향이다. 기독교도와 전쟁 중인 이베리아 무어들은 전투하지 않는 동안 무예를 가다듬었다. 기독교 십자군을 가정하여 마주 선 상대에 칼을 겨누고 천천히 휘휘 내둘렀다. 전투를 상상하며 칼을 다루는 군사 훈련이기도 했지만, 칼로 추는 춤 검무이기도 했다. 두 줄로 나란히 선 군사들이 마주 보는 상대를 한 명씩 차례대로 바꿔가면서 천천히 칼을 겨누고 또 휘둘렀다. 움직임은 마치 팬터마임 하듯 느렸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런 무어 스타일의 춤을 모리스카라고 했다. 독일 음악학자 커트 잭스Curt Sachs는 15세기 문헌에 가장 많이 기록된 댄스 장르가 모리스카라고 했다. 사교댄스나 발레, 가면무도회 같은 곳에서 춤을 언급할 때 모리스카만 언급되었다. 유럽인들은 모슬렘을 축출하려 싸웠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교도의 춤을 모방했다. 모리스카 댄스가 인기가 좋았던 데는 까닭이 있었다. 무어 군인들처럼 한 무리의 젊은 남녀들이 서로 마주 보고 두 줄로 나란히 섰다. 음악이 시작되면 박자에 맞춰 상대방을 바꿔가면서 짝을 지어 춤을 추었다. 무도회에서는 젊은 남녀가 한꺼번에 여러 이성을 만나볼 수 있었다. 유럽의 춤은 남녀가 나란히 두 줄로 마주 보고 서서 짝을 짓는다. 그 이름이 무엇으로 바뀌든지 유럽의 춤은 대개 이런 형식이다. 이런 유럽의 춤은 모리스카가 그 뿌리였다. 안달루시아의 모슬렘들이 기독교 유럽인들에게 음악뿐만 아니라 춤의 기본도 만들어주었다. 그 무렵에 바세 단자basse danza나 살타렐로saltarello 같은 댄스 스타일도 추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거의 기록에 남지 못했다. ‘낮은 춤low dance’라는 뜻의 바세 단자는 15세기 프랑스 궁정의 춤이었다. 옥시탄 지방에서 종글러들이 추던 춤을 궁정의 귀족들이 받아들여 춘 춤이었다. 발을 마룻바닥에 낮게 붙여서 떼지 않고 천천히 미끄러지듯 느리고 우아한 듯 거북이처럼 아장아장 스텝을 밟는 춤이어서 낮은 춤 바세 단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느린 춤에 음악이 빠를 수는 없다. 춤을 추는 가벼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아쉬웠을 것이다. 그래도 유럽인들은 처음 추어보는 춤을 위해 많은 곡을 작곡했다. 단자danza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곡들이 바세 단자를 위해 작곡된 곡들이다. 살타레로Saltarello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춤이었다. 바세 단자가 낮은 춤이라는 뜻인 데 반해 살타레로는 ‘높은 춤’이라는 뜻으로 알타 단자alta danza라고도 불렸다. 이 춤은 낮은 춤과 달리 높게 뛰는 것이 특징이었다. 높게 뛴다 해도 마룻바닥에서 발이 살짝 떨어질 만큼 뛰는 정도였다. 바세 단사에 비하면 높다는 뜻일 뿐이었다. 바세 단자는 17세기에 기록에서 자취가 사라졌다. 대신 발레라는 단어가 기록되었다. 루이 14세가 발레에 탐닉했기 때문이다. 발레는 높이 뛰는 춤이라는 뜻이다. 높이 뛰는 춤이 낮게 걷는 춤을 소멸시켰다. 춤이 진보할 방향은 그때 그렇게 정해졌다.

단자 모리스카/위키피디아

이베리아 남쪽 문 틈으로 들어온 검고 뜨거운 아프리카의 리듬이 피레네라는 문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갔다.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하고, 르네상스가 시작될 때 일이다. 포르투갈이 노예무역을 활발히 하여 흑인들도 피레네를 넘었다. 유럽 여러 곳에서 흑인이 눈에 띄었다. 흑인은 늘 드럼과 함께 다녔다. 흑인과 드럼이 새로운 리듬을 만들었다. 이제 막 모리스카를 추기 시작한 유럽인들의 춤 욕구를 드럼이 자극했다. 춤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리듬의 발화점은 이번에도 카디스와 세비야였다. 노예무역으로 새로 부상한 항구 리스본도 유럽 유흥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돈과 상인이 넘쳤다.활기도 넘쳤다.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본격적으로 식민지를 정복하고 착취할 때인 16세기 초의 일이다. 오스만튀르크의 상인들도 카디스와 세비야에 드나들었으므로 아랍문화도 뒤섞였다. 흑인 노예의 춤이 공연되었다. 니그로의 춤은 외설스러웠다. 카디스와 세비야의 유흥업이 본디 음란한데다 니그로의 적나라한 움직임이 더해지니 더욱 음란해졌다. 외설은 아프리카 특유의 드럼 리듬에 맞춰 공연되었다. 쇼 비즈니스에 혁신이 일어났다. 파란둘라farándula는 떠돌이 유랑극단이라는 뜻의 바스크 말이다. 이 유랑극단의 공연 중에서 니그로들이 춘 음란한 춤이 새로이 유행했다. 그 춤도 파란둘라라 했다. 파란둘라가 스페인 궁정과 프랑스 궁정에 흘러 들어갔다. 길거리 술집에서 유행한 파란둘라와 드럼 사운드가 귀족들의 오감을 자극했다. 카리브에서는 다이노가 학살되고 있을 때였다.

이탈리아의 단자 살타레로. 발을 땅에서 떼도 되는 춤이라는 뜻이다./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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