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라반다

7. 사라반다

#177 줄리엣

by 조이진

줄리엣

천둥 치는 운명처럼 로미오와 줄리엣은 만났다. 줄리엣이 로미오를 처음 본 순간은 모리스카를 출 때였다. 16세기 영국에서 모리스카의 인기를 셰익스피어가 보여주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68). 누군가 “모리스카!”라 외치자 파티에 참석한 젊은 남녀가 환호하며 설렌다. 줄리엣 같은 아가씨들이 남자들보다 더 기뻐한다. 두 줄로 선 남녀가 원을 만들고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춤을 춘다. 이때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났다. 그리고 세상에 가장 기억되는 사랑 이야기를 썼다. 셰익스피어는 최신의 유행을 작품에 활용했다. 모리스카가 시작된다는 말에 젊은 남녀들이 환호하고 모리스카를 추는 내내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를 찾고 손을 잡아 입맞춤했다. 이 시퀀스는 16세기에 영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모리스카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파트너를 바꿔가며 여러 이성과 춤을 추는 모리스카를 추다 줄리엣도 로미오도 짝을 만났다. 남녀가 짝을 만나기에 좋은 모리스카. 그것이 춤의 본성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모리스카를 춘 뒤로 유럽은 500년 동안 두 줄 춤을 추었다. 영국은 모리스 댄스Morris Dance를 자기들의 가장 오랜 민속춤이라고 소개한다. 두 줄로 나란히 선 댄서들이 손목에 방울 래틀을 달고 흔들어 내는 짤랑거리는 소리를 신호로 춤을 춘다. 손에 손수건을 들거나, 막대기를 들거나, 칼을 들고 춤을 춘다. 무릎에 부딪혀 찰랑거리는 징글스를 묶어 스텝을 움직일 때마다 착착 소리로 박자를 만들어낸다. 이 모리스 춤은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민속춤이다. 이 춤은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의 남쪽 문을 통해 건너온 알모라비데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셰익스피어가 모리스카라는 단어를 살짝 다른 단어로 바꿔 써 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해주지는 않았다. 이교도의 말을 그대로 쓴다는 것이 거슬렸던 영국인들이 모리스카를 모리스로 슬쩍 이름을 바꿨다. 이름을 손보고 나니 감쪽같았다. 이슬람교도의 것도, 스페인의 것도 아닌 영국인들 고유의 포크 댄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영국 사람이 옮겨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서도 모리스 댄스를 영국 고유의 전통춤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독교 1,000년의 적인 모슬렘이 기독교도를 상대로 칼을 겨누고 훈련하던 칼춤이 그들의 전통춤의 뿌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춤과 춤이 만난다.

영국 전통 춤 모리스 댄스/위키피디아


그날 로미오와 줄리엣이 함께 춤을 춘 음악은 어떤 곡이었을까.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가 작곡한 <오르페오L'Orfeo>(1607)는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기에 작곡된 모리스카 곡이다. 아마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르페오> 같은 분위기의 곡에 발을 맞추고 눈을 맞추었을 것이다. 음악사는 이 곡을 최초의 이탈리아 오페라 곡이라 규정한다. 그러니까 최초의 오페라는 모리스카였다. 모슬렘의 군사 훈련 검무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뿌리도 되어주었다. 두 줄로 마주 서 춤을 추게 된 뒤로는 발이 마룻바닥에 붙어있는지, 깡충 뛰어 바닥에서 떨어지는지 따위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춤에서 중요한 것은 천둥 치는 운명으로 로미오를 만날 수 있을지 그것이 중요했다. 짝짓기의 감성은 춤의 코드가 되었다. 그것이 모리스카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었다. 신은 이교도를 ‘철천지원수’라 증오했지만, 사람은 그렇게 춤을 주고받았다. 그것이 신과 사람의 차이였다. 모리스카를 춘 뒤로 춤이 교회를 벗어났다. 인간을 위한 춤이 시작되었다. 음악이 왔다. 이제 신의 시대는 절정의 순간을 지나치고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모리스카를 추면서 초롱한 눈을 맞추기 약 100년 전.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카리브를 침공한 지 30년쯤 지난 1527년. 쿠바에는 이미 1,000명 이상의 네그로가 노예로 와 있었다. 아바나 거리에는 네그로와 스페인 뱃사람들 그리고 엔코미엔데로를 꿈꾸며 아바나에 온 이달고와 산초 판사 같은 하급 인생들이 윤락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카디스가 그랬던 것처럼 뱃사람들이 드나드는 항구에는 늘 그런 곳이 있었다. 아바나는 벌써 매음굴이 자리 잡았다. 매음굴에서 네그로 창녀와 뱃사람들이 새로 유행하고 있는 춤을 추고 있었다. 카디스와 세비야에서 막 유행하기 시작한 춤, 모리스카와 파란둘라를 벌써 추고 있었다. 카디스의 딸 아바나가 지금 막 카디스의 자궁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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