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세네갈
식민지 중남미의 대토지 소유제도가 부여한 대농장. 초기에는 정복군인들이 원주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아시엔다를 형성한 뒤 차차 가톨릭 사제와 교회에 되팔았다. 교회 소유의 아시엔다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노예 약탈에 의존한 플랜테이션의 모델이 되었다. 아시엔다가 아메리카 식민지 침략을 촉진했다. 아시엔토는 아시엔다에 공급하는 노예를 무역하는 권리를 말했다. 해상을 장악한 영국은 1713년 스페인에 타격을 줄 목적으로 식민지에 공급할 노예무역 독점권리 아시엔토를 빼앗아 노예무역을 독점했다.
세네갈
아프리카 노예 90% 이상은 세네갈에서 앙골라까지 아프리카 서쪽 해안 주변에서 팔려 왔다. 극히 일부만이 세네갈강 깊숙한 곳에서 매매되었다. 유럽 노예상들이 그런 깊은 곳까지 직접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륙 안 말라리아는 치명적이었다. 세네갈에서 앙골라까지 긴 해안에 식민거점 요새가 여럿 섰다. 유럽인은 요새나 배에서 기다리면 되었다. 검은 이들이 검은 이들을 묶어왔다. 백인에게 흑인을 파는 검은 수집상들도 검은 포획자에게 검은 이들을 사서 묶어왔다. 세네갈이라는 지역 이름의 유래에 관한 설은 여럿이다. 포르투갈이 세네갈강 주변에서 노예 거래를 많이 했는데 거래 상대방 추장 이름이 세네갈이었다. 그래서 포르투갈이 그 땅 이름을 세네갈이라 불렀다는 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노예를 가장 많이 공급해 주었던 거래자의 이름을 유럽인들이 지역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세네갈강은 매우 길다. 사하라사막과 중앙아프리카를 나눈다. 세네갈강 입구에 있는 항구 이름이 세인트루이스 항. 그 아래 수도 다카르가 있고, 바로 옆에 노예의 집이 있는 고레Gorée섬이 있다. 그 아래에 감비아가 있다. 세네갈과 감비아의 국경이 감비아강이다. 배에 실리는 항구는 한 곳이었으나, 화물 신세가 된 흑인들의 고향은 제각각이었다. 광범위한 곳에서 포획되어 여러 단계의 매매를 거쳐 항구까지 와 쇠사슬에 묶여 배에 실렸다. 그런 노예들을 유럽인들은 세네감비안Senegambians이라고 묶어 불렀다. 세네감비아 흑인이 고레 섬의 노예의 집이라는 ‘화물 집화장’에 일시 보관되었다. 고레 섬에도 다카르에도 세인트루이스에도 모스크 사원이 있고 또 기독교회도 있다. 세네감비아 노예와 함께 콩고 앙골라에서 잡아 온 흑인들이 노예의 또 한 축이었다. 노예상은 이들을 더 좋아했다. 포르투갈이 이 지역을 식민지로 정복한 뒤로 기독교를 퍼트려 놓았기 때문이다. 같은 기독교인을 노예로 삼지 않는다는 생각은 낡은 것이었다. 오히려 노예수요처인 기독교 국가들이 이슬람 흑인보다는 기독교가 스민 흑인 노예를 더 선호했다. 16세기 포르투갈이 독점한 아프리카 노예무역으로 유럽에 들어온 노예들 대다수는 세네감비아와 콩고 출신이었다. 스페인은 이때부터 영국이 노예 사업을 독점할 때까지 카리브해에 필요한 노예를 포르투갈 노예선에서 공급받았다. 스페인 왕실은 포르투갈 노예상들이 데려오는 노예를 카리브에서 값을 치른 다음 메소아메리카에 있는 스페인 식민지 아시엔다에게 이윤을 덧붙여 되팔았다. 아바나 항에서는 많은 수의 흑인이 매매되었다.
+ 메소아메리카는 중앙아메리카를 뜻한다.
+ 아시엔다는 식민지 중남미의 대토지 소유제도가 부여한 대농장을 말한다. 초기에는 정복군인들이 원주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아시엔다를 형성한 뒤 차차 가톨릭 사제와 교회에 되팔았다. 교회 소유의 아시엔다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노예 약탈에 의존한 플랜테이션의 모델이 되었다. 아시엔다가 아메리카 식민지 침략을 촉진했다. 아시엔토는 아시엔다에 공급하는 노예를 무역하는 권리를 말했다. 해상을 장악한 영국은 1713년 스페인에 타격을 줄 목적으로 식민지에 공급할 노예무역 독점권리 아시엔토를 빼앗아 노예무역을 독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