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마룬
마룬
1521년. 크리스마스. 카리브의 밤하늘 달빛이 풀을 엮은 지붕에 빛을 쏟았다. 히스파니올라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일으킨 첫 번째 폭동이었다. 스페인 기록에 의하면 무척 계획되고 조직된 봉기였다. 월로프가 먼저 횃불을 들었다. 사하라 주변 세네감비아는 사막에 사는 사람과 원시림에 사는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세계였다. 사하라사막 위 북아프리카 상인과 종교가 내려와 수 세기 동안 이곳에서 뒤섞였다. 이슬람화된 세네감비아계 아프리카인을 사막 아프리카인이라 한다. 이들의 조상이 이베리아를 건너와 무어가 된 알모라비데다. 이들은 히스파니올라의 봉기에서도 사납게 스페인 노예주들에게 저항했다. 모슬렘 월로프가 횃불을 들었을 때 기독교화된 콩고계 흑인들도 동참했다. 아직 살아남은 다이노 원주민들도 가세했다. 그들 모두 잔인하게 혹사당했던 터라 반란의 횃불은 뜨거웠다. 이 농장과 제당소의 주인이 콜럼버스가 팔로스항에서 어린 손목을 잡고 걸었던 아들 디에고 콜론이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그 역시 황금에 눈을 붉혔다. 횃불은 총과 말, 그리고 쇠갑옷을 태우지 못했고 폭동은 진압되었다. 기독교도에 덤빈 노예들에게 잔인한 보복 대량 학살이 뒤따랐다. 상당수 노예가 학살을 피해 산으로 숨어들었다. 쫓긴 흑인 노예들이 산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은 산마루턱에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작은 마을을 이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에 저항하고 투쟁하다 산으로 쫓겨 들어간 다이노들이 산중에 들어가 먼저 살고 있었다. 1521년 크리스마스에 기독교도에 저항한 흑인 노예들이 도망자가 되어 다이노들의 산으로 들었다. 콜럼버스가 크리스마스에 다이노들에 의해 구조되고 라 나비나드를 지은 지 30년 만의 일이다. 콜럼버스가 이보다 더 좋은 천국은 없다고 했던 카리브가 30년 만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살아남은 다이노들은 돼지도, 도고 프레사도 쫓아오지 못할 만큼 깊고 높은 산에서 공동체 마을을 이루어 농사지으며 얼마 남지 않은 민족의 씨를 보존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그들을 씨마론cimarró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스페인어에는 그런 단어가 없었다. 쿠바 역사학자 호세 아롬José Juan Arrom은 이 단어는 다이노 말 씨마루아보símarahabo에서 파생되었다고 했다. 산마루 깊숙이 들어가 다이노 씨를 지키는 도망자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 말을 씨마론이라 줄이고 ‘도망친 야생동물’이라는 뜻으로 썼다. 목장에서 키우던 다이노라는 가축이 울타리 밖으로 도망쳐 잃어버렸으므로 그것들은 야생화된 가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씨마루아보와 씨마론. 발성은 비슷한 단어였지만 마음의 씨에 따라 그 뜻은 달랐다. 씨마론은 정복당한 다이노의 말과 정복한 스페인 사람의 말이 뒤섞여 크레올화creolized한 단어로 마룬maroons이라는 영어 단어로 한 번 더 크레올화했다. 콜럼버스의 카리브해 침략으로 유럽은 근대로 전환되었다. 반대로 카리브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 전환기에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사슬을 끊어 자유를 찾아 떠난 첫 인류가 다이노 씨마루아보다. 이들이 산으로 올라온 흑인들을 품어주었다. 다이노 민족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피부 검은자들과 혼혈했다. 이들이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1959년까지 500년간 씨를 지켰다. 그 무렵 산으로 들어온 자들이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그들이다. 씨마루아보들이 쿠바 혁명군과 함께 500년 만에 산에서 내려왔다. 20세기에 내려올 때는 죽창과 부뚜가 아니라 총을 들고 내려왔다. 쿠바의 깊은 산에서는 씨마루아보 공동체가 발견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2006년 비냘레스Viñales의 맹그로브 정글에서 발견되었다. 2017년에 쿠바 정부는 산속에 숨어 사는 이들을 대상으로 유전자를 검사했다. 샘플로 채취된 여성들의 유전자 중 35%가 다이노의 유전자였다.
크리스마스 날 횃불에 불을 붙여 산에서 내려온 씨마루아보들은 피부 검은 그들이 이슬람을 믿는 흑인인지 기독교를 믿는 흑인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고, 구분할 이유도 없었다. 다이노와 월로프 그리고 앙골라 흑인들까지 연대하여 스페인 착취자들을 공격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알모라비데가 이베리아를 건너왔을 때를 기억했다. 피부 검은 모슬렘들을 이베리아에서 몰아내기 위해 800년이나 싸웠던 그들이다. 그리고 그 무렵에도 오스만튀르크와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일진일퇴 전쟁 중이었다. 스페인은 이슬람교도를 또다시 마주쳤다. 순수한 백인 기독교도들로만 새 천년왕국을 건설하려 했지만, 이슬람교도가 섞여 들어왔으니 승냥이 떼를 카리브에서 다시 만난 셈이었다. 1526년에 스페인 카를로스 1세 황제는 당시에 신성로마제국 황제이기도 했다. 황제가 칙령을 발표했다. “앞으로 노예거래소는 월로프라고 부르는 피부 검은 노예들은 단 한 놈도 내 인디아 땅에 들이지 말라. 그 어떤 곳에서 끌고 온 놈들이든 무어 놈들이 있는 땅에서 살았던 것들은 단 한 놈도 들이지 말라. 명심하라.” 그가 말한 인디아 땅은 아메리카를 말한다. 이 칙령은 18세기 후반에 폐지되었다. 스페인은 노예도 종교를 구분했다. 그래서 중남미 대륙에는 오늘날에도 모슬렘이 거의 없다.
+ Wolofs 월로프 왕가가 이끄는 제국의 백성이라는 뜻으로 세네감비아에서 끌려온 모슬렘 흑인 노예 집단이다. 세네갈은 포르투갈이 붙인 지역 이름이고, 노예 역사가 없었다면 어쩌면 세네갈은 지금 월로프 공화국이라고 불렸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