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라반다

7. 사라반다

#181. 사라반다

by 조이진

사라반다

카스티야에서 주인을 따라온 흑인 노예들이 쿠바에서 춤을 추었다. 흑인들은 스페인에서 유행한 파란둘라를 추었다. 스페인 악기 캐스터네츠를 놀리며 추었다. 스페인에서 온 흑인과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반투족 노예들이 카리브에서 만났다. 반투족은 중앙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광대하게 퍼져 살았다. 반투족 영역 한가운데 콩고가 넓게 자리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음과 음이 만났다. 아프리카인들이 만나면 춤과 춤도 만났다. 카스티야 노예들이 추는 파란둘라를 반투족 노예들이 따라 추었다. 쿠바에서는 드럼을 두드려도 스페인 사람들이 노예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철의 신 은살라반다에 제의 춤을 추는 반투족

두 지역에서 온 아프리카인들은 드럼을 만들어 두드리며 춤을 추었다. 같은 춤이라도 아프리카인이 추면 새로운 춤이 되었다. 파란둘라도 그랬다. 이제 카리브에서는 다이노 대신 콩고계 아프리카인들이 춤을 추었다. 콜럼버스가 카리브를 침략한 지 약 50년 지난 1540년 경이다. 반투족들에게도 늘 함께 있는 신이 있었다. 흑인들이 사슬에 묶여 노예선에 태워질 때 철의 신이자 아프리카 칼 마체테machete의 신이기도 한 반투의 신 은살라반다Nsalabanda도 함께 노예선을 탔다. 반투족은 쿠바에 함께 온 은살라반다에게 제를 지내는 춤을 추었다. 드럼을 두드리며 춤을 추었다. 스페인인들은 쿠바에서 반투족 아프리카인들이 이때 추던 춤과 음악을 사라반다Zarabanda라고 했다. 파나마에 살았던 스페인 출신 시인 페르난도 메이아Fernando de Guzmán Mejía는 자작시에 노예들이 사라반다를 추기 위해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다고 기록했다. 또 1572년 멕시코에서 있은 종교재판의 심문 기록에서도 사라반다가 언급되었다. 아프리카의 드럼과 춤과 파란둘라가 결합한 사라반다는 모리스카는 물론이고 파란둘라에 비해서도 리듬이 빨랐다. 아랍의 음악과 춤이 이베리아에서 모리스카가 되고, 바스크 극단의 춤 파란둘라가 되더니 카리브에서 반투족 아프리카인을 만나 사라반다가 되었다. 사라반다의 노랫말도 카디스의 딸들이 부르던 가사처럼 음란했고 금기를 넘나들었다. 바스크의 재잘에 기반을 두어 노랫말에 운과 률에 규칙이 있었고, 아랍의 무왓샤샤처럼 후렴이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춤이 된 사라반다의 박자는 쿠바에서 검은 노예들이 추던 사라반다에 비해 현저히 느려졌다. 바로크 시대 유럽의 궁정이 스페인식의 느린 사라반다를 추었다. 피레네를 넘은 사라반다는 스페인보다 더 느린 춤으로 변했다. 차라리 아장아장 걸음마에 가까웠다.

반투족은 콩고를 중심으로 중앙아프리카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카리브에서 시작된 사라반다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유행했다. 식민지 정복자들이 세비야로 오가는 연락선에 사라반다 춤과 무희도 함께 들어왔다. 첫 번째 카리브 스타일의 춤과 음악이 대서양을 건넜다. 아바나의 사라반다는 16세기, 17세기에 스페인에서 크게 유행하여 세르반테스는 사라방드에 대해 그 외설과 음란함이 ‘지옥의 어미들이 낳아 키운 춤’이라는 희곡 대사를 넣기도 했다. 여기서 ‘지옥’은 쿠바를, ‘어미’들이란 흑인 노예들을 가리켰다. 어느 가톨릭 수도사는 ‘그 춤과 노래가 어찌나 지저분한지 사라반다를 추면 지체 높고 품위 있는 사람일지라도 더러운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파란둘라처럼 사라반다도 세비야의 길거리에서 유행한 춤이었다. 하층민들의 춤을 부르주아가 먼저 받아들인 사라반다는 고상하고 지체 높은 귀족과 성직자들도 금세 사라반다를 추고 노래했다. 이 시기는 절대 군주를 떠받치는 힘이 교회에서 금권을 지닌 부르주아에게 이동하고 있었다. 권력의 지지 기반이 바뀌면서 춤과 음악을 대하는 생각도 달라졌다. 느리고 단조로운 교회 음악보다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세간의 음악이 더 널리 퍼졌다.

새로운 스타일의 쿠바 음악 사라반다는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식민 정복하고 항해술을 비롯해 자연과학, 인쇄술 등이 크게 발전했던 시기에 시작되었다. 아메리카를 손에 넣어 강력해진 스페인이 이탈리아를 침략했다. 스페인 왕실과 스페인이 수호하는 기독교는 이탈리아에서 밀려오는 르네상스를 가로막고 억압했다. 넓어진 세상이 가져온 복잡성과 확장된 세계와 가치에 관한 생각들은 그것을 드러내는 건축과 미술, 음악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이것들은 과거의 교회 음악과도, 르네상스 시대 문학과도 비하면 뭔가 불규칙하고 낯선 것들이었다.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였다. 중세적인 트로바도르도 아니고, 모슬렘의 모리스카도 아니고, 거룩하나 단조로운 성가 음악도 아닌 세속과 감각의 새로운 것이었다. 사라반다 같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과 춤이 변화하는 시대와 그것을 주도하는 새로운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정치와 시대를 바꾸는 에너지가 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 사라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