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라반다

7. 사라반다

#183. 무대

by 조이진

무대

과달키비르강 둑에 서 있는 황금의 탑은 금은으로 찼다. 아메리카에서 다이노와 흑인들이 노역하여 채굴한 금은이다. 아메리카 정복으로 스페인은 일하지 않아도 부유했다. 

세비야 황금의 탑/위키피디아

유럽에서 스페인에 경쟁할 상대는 아직 없었다. 아직 오페라가 유행하지 않은 이 시기에 귀족 사회가 가장 즐기는 예술 장르는 연극이었다. 유럽 연극의 태두 격인 로페 데 베가도 셰익스피어도 사라반다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사라반다는 고상한 연극을 즐기던 귀족들의 오감을 자극했다. 예술은 주지 못한 쾌락. 사라반다는 그것을 처음 느끼게 했다. 엔터테인먼트였다. 일하지 않아도 부유해진 세상이 된 마당에 어찌 1년에 한 차례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흐르는 축제일에만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겠는가. 사라반다가 세비야의 연극 전용 오픈 극장Corral de comedias에서 공연되었다. 세르반테스와 로페 데 베가를 비롯해 위대한 문학가가 가장 많았던 근대문학의 전성기를 스페인은 황금 세기라고 한다. 스페인이 세계의 바다를 장악했고 광대한 식민지를 경영했다. 식민지와 노예들의 힘으로 부와 권력을 쥔 절대 군주와 귀족, 가톨릭교회들이 메세나가 되었다. 예술가들은 후원에 작품으로 보답했다. 군주와 귀족 체제가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찬양하고 고무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었고, 예술가들이 지향해야 할 작품의 방향이었다. 황금 세기에 문학, 음악, 미술, 건축에서 절정의 융성함을 보였다. 스페인의 황금시대는 아메리카의 다이노 원주민들을 노예로 착취해 채굴한 황금에 기반한 스페인 경제와 문화 융성의 시대를 말한다.

엘 에스코리알. 스페인 황금세기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세르반테스와 로페 데 베가, 엘 그레코와 마드리드의 스페인 왕궁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로 상징되는 건축물들을 스페인이 쏟아낸 시기가 황금 세기였다. 황금 세기에 스페인에서 공연된 기독교를 주제로 하지 않은 세속의 연극을 모두 코미디아comedias라 했다. 코미디라 하여 희극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극도, 드라마도 모두 코미디아였다. 그러므로 코미디아는 연극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이었다. 코랄corral은 16세기에 스페인에서 연극을 공연하는 가설극장을 말했다. 본디 목책이 둘린 목장이라는 말이기도 했지만, 저택의 안마당이나 마을 공터에 가설극장을 지어 공연하였는데 공연장을 나무로 둘러쌌으므로 극장도 코랄이었다. 황금 세기에는 코랄 즉 극장이 문화의 핵심 공간이었다. 이 극장은 지붕이 없고, 나무로 만든 높은 무대가 있었다. 이 무대는 종교재판에서 유대인을 심판하고 화형식을 할 때 관중들이 잘 보이도록 처음 고안된 발명품이었다. 극장에서는 사람을 불에 태우지는 않았어도 다양한 연극이 공연되어 종교재판에 못지않은 재미가 있었다. 연극에서는 여러 연기자가 등장해서 이야기 전개를 복잡하게 꾸몄다. 흥미가 배가되었다. 그런 형식이 또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느끼게 했다. 평지보다는 코랄이라는 높은 무대 공간,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이 나와서 상황을 이끌어가는 참신한 구도가 스페인의 문학과 극을 유럽 최고의 황금 세기로 끌어올렸다. 대중은 전환된 발상과 새로운 아이디어 그 자체를 소비한다. 새로운 전환이 성공의 관건이다. 그러므로 엔터테인먼트 상품을 만드는 창작자들은 늘 시대를 반 발짝 앞서가야 한다. 평지에서 무대로, 한 명의 이야기꾼을 여러 이야기꾼으로 전환한 새로운 발상. 그런 새로운 아이디어가 당대의 스페인 문학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황금 세기를 구가하게 했다. 많은 관객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이런 대형 목장 같은 극장은 두 가지 문제로 입방아에 올랐다. 우선 연극이 주는 감정이 그리 고아하지 못하다고 평가받았다. 두 번째는 남녀가 한 곳에 앉아 공연을 보았다. 남녀가 신체를 가까이하지 못한다는 규칙이 연극 극장에서 거침없이 부서졌다. 사라반다가 유행한 뒤로 신은 이런 현상을 더는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되돌게 할 수도 없었다. 사라반다가 남녀의 접촉, 살과 살의 더운 접촉을 촉진했다.

로페 데 베가. 셰익스피어와 함께 유럽 연극 문학을 발전시켰다./위키피디아


연극과 극장도 스페인이 발전했다. 1627년 세계 최초로 오페라라는 이름의 장르가 초연되었다. 마드리드 알카사르 대강당이었고, 스페인 국왕이 앉았으므로 로열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니까 최초로 로열석에 앉아 오페라를 본 사람은 스페인 국왕이었다. 이 공연이 이탈리아 최초의 오페라 공연보다 30년 앞섰다. 로페 데 베가가 쓴 연극 <사랑 없는 열대의 숲La selva sin amor>은 무대세트를 다층 구조로 만들었다. 배경 세트를 가변식으로 만들어 공연 중에 상황 전개에 맞춰 교체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공간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차원을 완전히 새롭게 했다. 작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크리에이티브를 표현할 수 있었다. 작가의 뇌 공간이 활짝 열렸다. 수시로 바뀌는 배경 무대는 그 시대 눈으로는 놀랍고 충격적인 무대 효과를 만들어냈다. 교체가 가능한 이동식 세트에서 파도와 물고기가 무대에서 움직였고, 무대 끝에는 항구와 도시의 위치를 알려주는 조명등, 그리고 비너스 여신과 마차가 백조에 이끌려 움직였다. 공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활용한 예술을 세비야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았다. 정교한 도르래들을 이용한 무대는 몇 초 만에 바뀌었다. 잠깐 사이에 정글에서 바다로 풍경이 바뀌었고, 그것을 바꾼다고 극이 중단되지도 않았다. 또 무대를 덮는 커튼과 인공조명 같은 무대 장치들이 설치되었다. 공연장에 처음으로 커튼을 설치한 작가도 로페 데 베가다. 이동식 세트와 조명, 특수효과 이것들을 위한 기계장치 같은 것들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진보된 무대 기술이었다. 이탈리아식과 경쟁하는 스페인식 연극의 경지를 열었다. 완전히 새로운 무대 효과를 만들어낸 스페인연극에 대중들은 환호했다. 이런 이유로 스페인에서 극장은 모든 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 되었다. 극장식 무대 공연의 시대가 마드리드에서 처음 활짝 열렸다.


17세기 세비야의 극장 문화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흑인과 물라토는 단지 엑스트라 배역에 머물지 않았다. 이들이 무대 위에서 직접 춤을 추고 노래했고, 희극을 연기하는 주인공 코미디언이 되기도 했고, 심지어 극작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코랄의 아래에서 배경음악을 연주한 자들의 대부분이 흑인이거나 물라토들이었다. 이사벨라 여왕 시절에 유대인이 쫓겨난 뒤로 음악은 피부 검은 자들이 맡았다. 이때 세비야의 코랄 아래서 연주하던 이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단의 조상이다. 코랄 위에서는 물라토들이 몸을 달구는 춤 사라반다를 추고 노래했다. 손으로는 성행위를 하는 듯 제스처를 하고 반라의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런 무대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주는 연예인을 무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자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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