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기타
기타
그때 무대 아래서 사라반다를 연주했던 리드 악기가 기타였다. 기타의 뿌리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많다. 기억할 것은 8세기에 모슬렘이 이베리아의 남문을 통해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다. 레콘키스타가 한창이던 현명한 왕 엘 사비오El Sabio 알폰소 10세가 칸티가 시리즈를 정리할 때 기타라 연주가 들어있었다. 기타라가 분화하면서 안달루시아의 모리스카 기타라와 그리스 기타라로 나뉘었다. 모리스카 기타라가 우리가 아는 기타의 모태였다. 그러므로 기타의 고향은 아랍 영향이 짙은 안달루시아다. 기타는 처음에는 외줄 4코스의 4줄이었다. 소리도 지금보다 고음이 더 높았다. 크기는 지금의 기타보다 작고 고음이 더 높았다. 스페인이 사라반다에 빠졌을 무렵 기타에 5번째 코스가 추가되었다. 그런 기타가 다루기가 더 편해졌고 대중적인 악기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라반다가 유행하던 이 시기에는 대부분 악기를 흑인 노예들이 연주했다. 지르얍 시절에 이미 기타를 뜯고, 훑는 연주법이 안달루시아에 도입되었다. 기타는 뜯고 훑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두드리는 주법을 가미할 수 있었다. 흑인들의 퍼커션 감각은 기타에 빛을 더 했다. 퍼커션 주법이 야한 춤 사라반드의 격정을 돋우었다. 단지 한 줄이 더 늘어났을 뿐이지만 4줄 기타와 5줄 기타 사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5줄 기타가 16세기 음악을 혁신했다. 스페인의 춤판과 음악, 노래가 완전히 달라졌다. 유럽에 널리 퍼진 흑인들의 기타 연주는 너무 짜릿해서 가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제 기타는 독주용 악기로도 충분히 사용되었다. 5줄 기타가 등장한 뒤로 노랫말을 전하기 위해 기타를 연주했던 시대는 철 지난 옛 스타일의 음악이 되었다. 5줄 기타가 사라반다와 한 묶음 되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1606년에 이탈리아에서 기타 연주곡이 처음 작곡되었다. 영국으로도 건너갔다. 영국에서는 사라밴드saraband라는 단어가 1616년에 처음 기록되었다. 1595년경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초연되었다. 만일 기타가 조금 더 빨리 5줄로 바뀌었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리스카 댄스가 아니라 사라반다 춤을 추면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사라반다가 피레네를 넘어 유행하자 기타도 사라반다를 따라 유럽으로 빠르게 북상했다. 어쩌면 기타가 있어 사라반다가 그렇게 빨리 유럽으로 전파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페인에서 기타라guitarra는 하급 계층이 쓰는 조잡한 악기로 취급되었다. 상류층은 비엘라vihuela를 연주했다. 비엘라는 본디 아랍 악기 알 우드Al Ud를 이탈리아가 뒷면을 판판하게 바꿔 엘 우드El-Ud라고 부르다 류트Lute라고 줄여 부른 악기에 뿌리를 둔 악기다. 15세기에 아라곤에서 개조되었다. 비엘라는 기타와 비슷한 생김에 한 코스에 2개의 현으로 짝을 이뤄 6개 코스를 가진 다성polyphony 악기다. 12개의 현을 손가락을 튕겨 연주한다. 1개 코스가 두 줄인 비엘라는 음역을 동시에 결합할 수 있었다. 외줄 코스인 기타는 비엘라처럼 두 개 이상의 음역을 동시에 낼 수 없었다. 4줄의 기타는 하나의 선율로 하나의 음만 낼 수 있는 단선율 악기였다. 그러다 비엘라 연주자들이 활을 사용하여 켜기 시작했다. 활 연주에 적합하게 현의 숫자도 단순화했다. 그리고 이름을 비올라vihola라고 바꿔 불렀다.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형제가 아니고, 기타와 사촌 간이다. 비엘라는 현재의 개념으로는 12줄 달린 기타라고 볼 수 있다. 위 3쌍은 화음을, 아래 3쌍은 옥타브를 맡는다. 그러니까 화음으로 멜로디를 받쳐줄 수 있었고 코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비엘라의 전성기는 무척 짧았다. 아라곤이 이탈리아 일부를 지배할 때 잠깐 사용되었다. 비엘라 작곡자들은 이 곡들을 작곡할 때 처음부터 감상용으로 만들었다. 춤을 추기 위해 만든 곡이 아니었다. 게다가 12줄이나 되는 줄은 작곡자에게는 편곡을 어렵게 했고, 연주자들도 다루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음악의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감상용 12줄의 악곡은 약점이 되었다. 콜럼버스 선원을 따라간 비엘라는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오늘날에는 멕시코 민중음악 마리아치를 노래하는 밴드에서만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