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라반다

7. 사라반다

#185. 사라방드

by 조이진

사라방드

쿠바라는 ‘지옥’이 잉태하고 흑인이라는 ‘사탄’이 키워낸 관능적인 춤과 빠른 음악 사라반다가 피레네를 넘었다. 기타와 함께 간 사라반다가 르네상스 음악의 유럽에서 바로크 음악을 촉발했다. 외설의 경계를 넘어선 사라반다였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건너가니 춤은 정숙해졌다. 스페인에는 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는 없는 카디스와 안달루시아의 아랍문화가 그 차이를 만들었다. 카디스가 없는 유럽에서는 스페인에서 유행한 사라반다 댄스와 리듬을 온전히 받아낼 수 없었다. 사라반다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형편에 맞게 변형되었다. 프랑스에서 사라방드로 이름을 바꾼 것처럼 바세 단자만큼이나 템포도 느려졌다. 은살라반다를 경배하던 주술적 노래도, 저속하고 역겨운 노랫말도, 관능적인 몸 사위도 걸러졌다. 아바나에서 시작된 사라반다가 스페인을 지나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의 궁정에서는 그렇게 변했다. 아프리카의 드럼이 빠진 자리는 류트와 기타라guitarra가 대신했다. 1천 년 중세 동안 궁정의 유희를 도맡았던 후글라르와 트로바도르도 소임을 마쳤다. 사라방드가 유행하여 르네상스 음악은 옛것이 되었고 비로소 바로크 음악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유럽 음악사는 장 마리 르클레르Jean-Marie LeClair가 작곡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부터 바로크 음악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곡이 사라방드다. 파나마 시인 메이야가 사라반다를 언급한 지 150년가량 세월이 지났다. 바로크를 전성기로 이끈 바흐는 39개의 사라방드를 작곡했다. 바흐의 사라방드는 애련하면서도 풍부하고 사색적이면서도 우아했다. 바흐는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춤곡 사라방드를 작곡했다고 했다. 쿠바라는 ‘지옥’에서 태어난 음악이 스페인을 거쳐 독일 스타일로 엄숙하고 장엄한 무용곡으로 재탄생했다. 바로크 시대 궁중 댄스는 2박자 또는 3박자로 된 춤이 몇 가지 단계로 진행되었다. 그 형식들을 공식처럼 모아 하나의 무용 모음곡을 구성했다. 음악은 4박자 알르망드allemande로 천천히 춤을 시작하여 조금 빨라진 3박자 쿠랑트courante, 느린 3박자의 사라방드 그리고 활기찬 겹박자의 빠른 춤곡 지그gigue로 4개 악장을 기본으로 구성했다. 이 짜임이 바로크 음악의 대표적인 조곡의 형식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파트인 3악장이 사라방드였다. 

바로크시대 마지막 세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바흐도 자신의 조곡 중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에 첼로나 키보드로 연주하는 사라방드를 넣었다. 바로크 작곡자들이 사라방드를 댄스를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감상용으로 만들었는지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 모음곡들이 차츰 독립적인 형식으로 발전하면서 점점 춤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바흐는 4개 악장 사이에 미뉴에트minuet 등 짧은 춤곡을 삽입해 변화를 주었고, 어떤 작곡가들은 아예 서곡overture, 신포니아sinfonia 같은 새로운 형식을 곡 머리 앞에 두기도 했다. 사라방드도 댄스 조곡에서 이탈해 별도의 독립된 장르로 발전했다. 동갑내기면서도 바흐가 존경했다는 헨델도 그 유명한 <하프시코드를 위한 사라방드>를 남겼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18세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베리 린든Berry Lyndon>(1975)에서 신분 상승을 꾀하던 주인공이 총에 맞아 죽는 비극적인 장면에 헨델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사라방드>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1703년에 작곡된 이 곡은 큐브릭의 영화 탓인지 비통함을 상징하는 곡으로 각인되었다. 이런 곡에도 춤을 췄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해도 그 시절 유럽 사람들은 이런 곡에 맞춰 남녀가 짝을 이뤄 더블 파일 댄스를 추었다. 스페인의 사라반다에 비해 프랑스의 사라방드는 시기로 100년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춤과 음악은 더 큰 차이가 있었다. 스페인의 사라반다와 달리 프랑스의 사라방드는 남녀가 둘이 마주 보고 서서 짝 맞추는 모리스카 같은 올드한 스타일의 춤이었다. 두 음악이 서로 다르기에 사라반다는 스페인과 쿠바에서 유행한 춤과 음악을, 사라방드는 피레네 너머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유행한 춤과 음악을 일컫는 용어로 발전했다. 사라반다를 시작으로 이제 유럽 음악은 쿠바 음악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스페인이 카리브를 침공한 지 100여 년만이다. 바흐와 헨델의 사라방드의 뿌리는 세비야 길거리의 사라반다. 세비야의 사라반다는 콩고에서 붙잡혀온 반투족 노예들이 쿠바에서 추던 춤이 또 한쪽의 뿌리다. 반투족 노예들은 카스티야의 노예들과 만나 파란둘라를 추었다. 파란둘라는 모리스카가 뿌리다. 파란둘라 가사의 운율과 선창-후창 방식은 재잘에 뿌리를 둔 바스크 음악에 닿아 있다. 음표와 음표가 만났다. 바흐와 헨델이 사랑한 사라방드에는 바스크와 모슬렘과 카디스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음표가 섞여 있었다. 서로 다른 음표들이 겹치고 겹쳐 새로운 화음과 리듬이 탄생했다. 바흐와 헨델의 음악을 낳았다. 유럽의 클래식 시대가 바로크의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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