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신코페이션
신코페이션
정기선이 대서양 양안을 매일 왕복하듯 했다. 출발역과 종착역은 아바나와 세비야였다. 카리브와 아메리카에서 새로 유행하는 것은 몇 달이면 세비야에 들어왔다. 카리브의 모든 것을 모아 녹이는 용광로인 아바나로 악기도 리듬도 가사도 춤도 무엇 하나 빠트리지 않고 실어 왔다. 아직은 작은 용광로였지만 아바나가 차츰 카디스의 딸로 성장하고 있었다. 아바나의 술집에서는 아바나다운, 원형의 사라반다가 춤춰지고 있었다. 굳이 아바나가 선택된 것은 아바나 만에서 시작하는 해류 때문이었다. 그 해류 때문에 아메리카의 모든 것이 아바나 항으로 모였고, 세비야로 향했다. 아메리카의 중심 항 아바나에 도착한 악기도 리듬도 음표도 다시 아메리카 여러 곳으로 실려 퍼져갔다.
1606년은 음악과 춤의 역사에서 중요한 해다. 이 해 아바나에서 발행된 악보에는 이전과는 다른 박자가 표시되어 있다. 6/8박자에서 3/4박자로 바뀌면서 앞 마디보다 반 박자가 빠르게 코드가 전환되었다. 이 작은 변화가 주는 효과는 컸다. 음악과 춤은 본디 하나다. 이 빨라진 반 박자가 세상의 음악을 바꿨다. 이전까지 팔과 발은 한 동작으로 한 번에 같이 움직였다. 그런 춤을 추다 반 박자가 앞당겨졌다. 반 박자 당김음은 발보다 팔을 먼저 움직이게 했다. 발과 팔의 움직임이 분리되었다. 발이 따르는 박자와 팔이 따르는 박자가 서로 달라졌다. 아랫몸 사위와 윗몸 사위가 나뉘었다. 온몸 사위가 달라졌고 다른 춤이 춰졌다. 춤이 달라지니 춤을 추는 사람들의 필feel이 달라졌다. 신코페이션이라는 개념이 악보에 표현되었다. 당김음 신코페이션이 처음 문자로 기록되었다. 신코페이션은 쉽게 우리의 ‘음빠 음빠 음빠빠’ 같은 느낌이다. 신코페이션이 아닌 정박이라면 ‘빠 빠 빠’다. 한 마디 안에서 강박과 약박의 위치가 바뀐 것이 신코페이션이다. 정박에 비해 신코페이션은 음악의 느낌을 다르게 만들어준다. 신코페이션은 노래할 때 박자를 마디 끝까지 밀고 가서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툭 끊어버려 여백을 만들어서 텅 빈 긴장감으로 채우기도 한다. 신코페이션은 정박 속에 섞여 이런 긴장들을 만들어 곡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음악을 듣는 이들은 몸이 들썩이게 되고 팔과 다리를 따로 움직이게 된다. 그루브라는 박자감이다. 신코페이션은 마디와 마디, 소리와 소리의 공간에서 단조로움을 벗어난 입체감을 주었다. 그림으로 치면 원근법과 같다. 원근감 없이 그려진 그림의 무미함과 원근법이 적용되어 공간감과 입체감이 느껴지는 그림이 주는 차이다. 원근법이 미술사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듯이 음악에서는 신코페이션이 그랬다. 음악 연구자들은 아프리카에서는 신코페이션을 찾아내지 못했다. 신코페이션은 아프리카인이라 천성적으로 아는 리듬 감각은 아니었다. 쿠바의 아프리카인 음악에서만 표현되는 박자감이었다. 그때까지 유럽 음악의 전통에 신코페이션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아프리카에도 유럽에도 없던 신코페이션이 유독 쿠바에서 나타났다. 다이노의 땅 쿠바에서 음악의 혁신이 일어났다.
그루브는 리듬을 이용해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리듬이라는 기술적 요소에 기반을 둔다. 그렇더라도 테크닉 요소를 집합한다고 그루브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세포를 숫자대로 모아놓았다 하여 생명이 되지 못하고, 단어를 조합했다 하여 시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는 단어와 운율로 조합되지만, 그 이상의 어떤 것, 감성과 공감, 시어의 아름다운 소리 같은 생명이 들어있다. 음악에서 그루브는 음표와 악기의 조합에서 느껴지는 공감이자 흥이다. 음악의 생명이고 혼이다. 우리 음악에서 흥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우리 음악에는 ‘소리를 밀고 당긴다’는 개념이 있다. 정규 박자에서 변형하여 박자를 앞으로 당기기도 하고 또 뒤로 밀기도 하여 자유자재로 즉흥적이고 비정형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앞으로 당기든 뒤로 밀든 그것은 다르기도 하고 또 같기도 한 말이다. 박자라는 틀은 정해져 있으니 당겼으면 밀어야 하고, 밀었으면 당겨야 박자를 지킬 수 있다. 밀고 당기는 엇박자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우리 음악의 흥이다. 우리 음악의 풍류다. 싱코페이션은 우리 음악의 밀고 당기는 박자와 같고, 그루브는 곧 흥과 같다. 그루브든 흥이든, 서양 음악이든 우리 판소리, 정가든 악보에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할아버지가 한 마리 백학이 되어 부르던 시조도 악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공간 속에서 날고 있었다. 누구도 글이나 악보로 가르쳐주지 못하고 스스로 터득해야만 알 수 있는 암묵 지식의 공간이었다. 쿠바에서 싱코페이션이 처음 나타났다. 아바나가 그루브를 탔다. 아프리카인들이 흥이 났다. 쿠바는 다이노가 살았던 땅이었다. 아랫몸 사위와 윗몸 사위를 나눠 춤을 추던 다이노의 흥이 그때까지 살아있었다.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싱코페이션도 깊은 산으로 들어간 씨마루아보들이 지켜낸 씨였다.
들어오고 나가는 물결이 한데 모여 한 줄의 파도가 되고 소리가 된다. 당기고 미는 소리의 박자감이 쿠바 음악의 그루브를 결정한다. 열쇠가 있어야 자물쇠를 풀 수 있다. 쿠바 사람들은 당김음 싱코페이션을 쿠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여겼다. 싱코페이션이 있어야 음악이라는 자물쇠를 풀어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쿠바 사람들은 앞당긴 반 박자를 스페인어로 클라베라고 했다. 그리고 쿠바 음악에서 밀고 당겨 박자를 지배하는 악기를 클라베라고도 부르기 시작했다. 클라베는 윷가락 같은 한 쌍의 나무 막대기다. 북채 두 개를 서로 때려 나는 소리다. 둘을 부딪쳐 오직 하나의 음, 소리만 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투박하며 기교를 부릴 수도 없는 단순한 악기다. 클라베는 마치 절집의 목탁 소리처럼 맑고 시원하여 청아하고 멀리 뻗는다. 강한 존재감으로 박자를 만들고 여러 악기를 장단이라는 소리틀에 가두어 곡 전체의 흐름을 지배한다. 쿠바 음악에서는 이 단순한 두 개의 나무 막대기가 장단을 결정하고 주도한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음악을 들어보자. 나무 부딪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한 반복에 싱코페이션이 들어있다. 앞으로 당기고 뒤로 미는 박자, 쿠바 음악이 흥겨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