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라반다

7. 사라반다

#187. 샤콘

by 조이진

샤콘

유럽 궁정이 사라방드에 빠져 있을 때 아바나에서는 벌써 다른 춤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아바나의 춤과 음악은 유행이 무척 빠르게 바뀌었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은 아바나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춤을 만들게 했다. 쿠바에서 차코나는 사라반다에 비해서도 훨씬 리듬이 빨랐다. 춤은 팔을 크게 움직여 성행위를 연상하게 하여 상대를 유혹하듯 했고 새가 재잘대듯 높은음으로 까불어 노랫말을 불렀다. 차코나는 같은 리듬 구간을 반복하기를 여러 번 거듭했다. 이 점이 차코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었다. 퍼커션 악기인 듯 기타를 두드리고 탬버린과 캐스터네츠를 흔들어댔다. 오래전 페니키아 시절부터 카디스의 딸들이 요염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며 흔들던 캐스터네츠와 탬버린이 이제 기타를 만났다. 여기다 다이노의 악기 기러가 가세했다. 단순한 마찰 소리를 똑같이 수십 번 반복하는 단순하고 명쾌한 장단은 최고의 후크 사운드였다.

다이노 악기 기러guiro. 긴 박을 말려 속을 비운 뒤 홈을 파 악기로 사용했다. 클라베와 함께 쿠바 음악의 리듬을 끌어가는 중요한 악기다.

기러가 아니라면 다이노 악기 클라베가 기러를 대신했다. 클라베가 ‘딱-딱-’ 나무 막대 부딪는 소리로 곡의 장단을 진두지휘했다. 아랍과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카리브의 다이노 음악들이 아바나에서 차코나로 한 자리에 모였다. 4대륙의 악기와 음표와 생명이 만났다. 그러므로 차코나는 이전까지 있었던 어떤 음악과도 완전히 다른 생명을 가진 음악으로 탄생했다. 차코나는 똑같은 리듬을 수십 번씩 반복했다. 그 단순한 구간을 여러 번 반복하면 사람들의 귀를 파고들기 쉬웠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후크는 리듬을 기억하는 데 좋았다. 리듬이 기억되면 춤을 추는 이들에게 단순하게 반복되는 구간은 큰 장점이 되었다. 춤을 추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에도 좋았다. 궁정 귀족이든 부르주아든 길거리의 하층민이든 노예든 춤에 빠져들었다. 사라반다에 이어 아바나에서 대서양을 건너온 차코나에 스페인이 또 새로운 춤과 음악에 빠졌다. 교황마저도 문란한 섹스에 탐닉하다 매독에 걸려 죽었던 시절. 가톨릭 성직자들이라고 이 춤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악마가 만들어낸 춤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로페 데 베가가 ‘인디아에서 차코나chacona가 세비야로 배에 실려 왔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인디아는 카리브 중에서도 카디스의 딸 아바나를 가리켰다. 16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비야는 차코나라는 새로운 춤과 음악에 열광했다. 스페인 바로크 시대 작곡가 후안 아라녜스Juan Arañés가 <차코나 추는 밤 무도회Un sarao de la chacona>(1624?)를 작곡했다. 유럽에서 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차코나 곡이다. “인생, 지금 좋은 것이 좋은 인생이야¡Vida, vida, a la vida bona! 인생 무엇 있나. 차코나나 한번 추자 꾸나Vida, vámonos a chacona.”라는 가사는 당대에 유행한 스페인 바로크 문학 최후의 대문호 칼데론의 <인생은 덧없는 꿈La vida es sueño>과 카르페디엠 사상에 영향을 받은 노랫말이다. 인생은 뜨거움이라지만 그것은 허상이요 그림자로 채워진 한순간의 무대일 뿐이니 차코나 춤이나 추다 가는 것이 좋은 인생이리라 하는 노랫말이다. 

차코나 추는 황금시대의 스페인 사람


차코나는 스페인을 떠나 유럽을 두루 섭렵했다. 바흐보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난 독일 음악의 아버지 하인리히 쉬츠Schütz는 바로크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차코나 <제피로가 돌아온다Zefiro Torna>(1632)를 작곡하기도 했던 이탈리아의 몬테 베르디를 사사한 후 차코나로 교회 음악 <신이 일어나다Es steh Gott auf>을 만들었다. 차코나의 특징인 반복이 잘 반영된 곡이다. 신을 찬양하는 노래에서도 후크가 있는 음악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라마다 작곡하는 사람마다 차코나는 변화했다. 카디스가 있는 안달루시아와 재잘을 곧잘 부른 바스크가 있는 격정 넘치는 이베리아인 아라녜스가 작곡한 차코나와 춥고 엄격한 독일인 바흐의 파르티타 속 차코나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이베리아의 뜨거움이 차가운 독일로 건너오는 동안 차코나 춤곡의 생명인 이교도적 ‘악마성’은 사라지고 음악은 신을 경외하는 엄숙미와 ‘신성’으로 채워져 무거웠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No.2 D단조 파르티타 샤콘과 이탈리아 작곡가 비탈리Vitali의 샤콘Chaconne in G Minor. 두 곡은 차코나를 대표한다. 가난한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바흐가 비극일지 희망일지 알 수 없는 절제를 엄격하게 표현한 15분간의 샤콘은 그의 바이올린곡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곡이자 바이올린 음악의 정수라고 평가받는다. 비탈리의 샤콘은 비통하다. 8마디 정도의 기본 화음 주제부phrase를 변주해 느리게 반복을 거듭하고 팽팽한 높은 음역의 화음 주제 선율을 변형하다 낮게 가라앉혀 고요해지기를 반복한다. 차코나의 특징인 구간 반복성이 충실히 강조되었다. 화가가 여러 물감을 섞은 색으로 넓은 벽을 한 붓 한 붓 그려가듯 음표를 수 백만 개로 나누고 다시 하나하나를 차곡차곡 덧붙여가며 인간의 여러 감정을 꿰어가는 감정의 곡선들은 비극을 딛고 일어나려는 인간의 강인함과 고통으로 절절하다. 바흐와 비탈리의 샤콘은 3박자의 느린 춤곡의 일부였다.

Tomaso_Antonio_Vitali.jpg 안토니오 비탈리. 바흐보다 앞선 바로크 중기 이탈리아 음악가. 그가 작곡한 샤콘은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음악'이라고 평가받는다.


차코나와 비슷한 장르가 파사카예passacaille다. 파사카예는 차코나와 더불어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변주곡 형식이었다. 파사카예도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 두 형식은 명확히 구분할만한 특징이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파사칼리아도 화음 주제를 연속적으로 변주하지만 차코나와 달리 8마디 정도의 선율 주제로 된 바소 오스티나도basso ostinato를 가진다. 바소 오스티나도는 4~8마디 정도로 이루어진 짧은 베이스 주제부를 고집스럽게 반복한다. 느린 3박자로 차코나와 비슷하다. 바흐도 파사칼리아를 작곡했다. <파사칼리아와 푸가 C단조 Passacaglia in C minor>가 그것이다. 감상용이거나 연주용이었을 것이다. 베이스라인을 반복하여 차코나의 장르적 특징을 선명하게 보였다. 헨델의 파사칼리아도 마찬가지로 주제부를 고집스럽게 반복했다. 반복성은 아바나 음악이 갖은 가장 큰 특징이다.  바흐와 헨델이 차코나와 파사칼리아에 담은 고집스럽되 아름다운 반복성은 쿠바 노예들의 춤과 음악에서 발원하였다. 차코나와 파사칼리아의 반복성은 19세기와 20세기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 대중음악은 같은 주제의 리듬을 반복해 연주하는 구간을 리프riff라고 한다. 바로크 시대 오스티나토가 오늘날의 리프다. 리프를 활용하는 기법이 1600년대 아바나에서 차코나에 등장했었다. 반복성은 바스크 음악 재잘과 모슬렘의 무왓샤샤가 유행했던 중세 이베리아 음악의 강한 특징이었다. 유라시아의 반도 이베리아와 아메리카의 반도라 할 수 있는 쿠바가 두 대륙을 연결했고 춤과 음악을 교환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음표가 이베리아와 쿠바에서 만나기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화음이 일어났다. 유럽의 음악도 쿠바의 음악도 단지 하나의 음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이 창조해낸 화음도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낸 리듬이고 생명의 화음이었다.

비베르의 파사갈리아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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