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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바나

8. 아바나

#189. 플로리다

by 조이진

플로리다

폰세 데 레온Juan Ponce de León도 콜럼버스의 2차 항해 때 배를 탄 젊은 이달고였다. 폰세가 히스파니올라에서 식민지 정복 초기에 다이노 봉기를 진압하여 두각을 드러내더니 푸에르토리코를 정복해 1509년 초대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나 재임은 길지 못했다. 최고 권력을 지닌 콜럼버스 아들 디에고와 갈등 때문이었다. 푸에르토리코의 통치자를 임명할 권한을 누가 갖는가 하는 문제가 갈등의 원인이었다. 페르디난드 국왕과 콜럼버스의 계약서에는 콜럼버스가 발견한 모든 땅은 콜럼버스가 통치한다고 명시되었다. 그 권리는 상속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디에고는 국왕이 폰세를 푸에르토리코의 총독으로 지명한 일에 반발할 권리가 있었다.

후안 폰세 데 레온. 유럽인 최초로 플로리다에 상륙했다.

3년간의 법적 분쟁 끝에 국왕이 패했다. 국왕이 폰세에 다른 땅을 찾아보라고 했다. 푸에르토리코 다이노를 가이드 삼아 1513년 4월 2일에 그가 플로리다La Florida에 상륙했다. 스페인에서 4월 초는 부활절 축제가 한창인 때다. 4월의 이베리아는 봄꽃이 활짝 피기 시작할 때다. 꽃이 만발한 부활절이라 하여 스페인에서는 부활절 축제를 파스쿠 플로리다Pascua Florida라고 한다. 폰세가 4월 초 꽃 피는 부활절 기간에 땅을 밟았으므로 그 땅을 라 플로리다La Florida라고 이름 붙였다. 폰세가 플로리다의 섬들을 지나고 멕시코만의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그가 지나면서 플로리다 주변의 섬마다 ‘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이 항해에서 플로리다반도 전체를 돌아 애팔래치아만까지 항해했다. 그는 땅과 황금 말고 또 다른 욕망을 탐했다. 불로장생의 물이 솟는 샘을 찾았다. 유럽인들은 헤로도토스가 이런 불로장수의 물의 존재를 언급한 뒤로 16세기까지도 그런 물을 찾으러 다녔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은 지 1,800년이나 지났지만, 페르디난드 국왕도 불로의 샘을 찾았다. 곧 새로운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보좌하여 천년왕국의 주인이 되어 영원히 살 텐데도.

샘물은 찾지 못했어도 폰세는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찾아냈었다. 해류였다. 파피용의 바다에서 카리브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물은 유카탄반도를 지나 멕시코만에서 쿠바와 플로리다 사이 해협을 빠르고 강하게 빠져나간다. 어찌나 드셌는지 폰세는 화창하고 평온한 날씨에도 배 한 척을 일주일 가까이 잃은 적이 있었다. 해협을 빠져나온 이 해류를 멕시코 만류라 한다. 플로리다반도 해안선을 따라 북미 대륙 땅 뉴욕과 캐나다 동부 해안을 지나쳐 영국 앞바다에서 갈라진다. 북극 쪽으로 흘러 들어가면 북대서양 해류가 되고 아래 이베리아로 내려가면 서아프리카 앞에서 카나리아 해류가 되어 다시 북적도 해류에 합류한다. 그러니까 멕시코 만류에 올라타면 가만히 있어도 뉴욕을 지나 영국을 거쳐 스페인과 아프리카를 거쳐 다시 베네수엘라에서 쿠바 앞바다를 거쳐 플로리다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 시절 유럽인들이 지구가 편평하여 배를 타고 나아가면 절벽으로 추락한다는 우주의 끝은 이렇게 하나의 물 흐름으로 연결되어 순환하고 있었다. 만일 후안 폰세가 이 해류를 타고 세비야에 나타났다면 그는 지구가 정말로 둥글다는 것을 입증한 역사적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대륙의 발견자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콜럼버스 대신 진정한 미국의 아버지가 되었을 터다. 그러나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바닷물의 거대한 움직임을 간과하고 말았다. 후안 폰세보다 200년 뒤에 벤저민 프랭클린이 이 해류를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걸프 해류Gulf Stream 하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벤저민 프랭클린보다 먼저 이 해류를 주목한 자가 있었다.

멕시코 만류는 영국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로 흐른다.

항해에 능한 안톤도 콜럼버스의 2차 항해 때 배를 탔다. 코르테스가 아스텍을 정복했을 때 그는 항법사이며 정복자였다. 목테수마의 20만 대군을 산산이 흩어놓은 정복 군 중 한 명이었다. 코르테스는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멕시코를 정복하기 위해 떠났다.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정복한 뒤 세비야로 되돌아갔다. 스페인 국왕에게 자신이 찾아내고 또 정복한 이 땅을 보고하고 자신을 멕시코 통치 책임자로 지명에 달라고 청원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이 정복은 쿠바 총독이었던 벨라스케스에 의해 허락받지 않고 무단으로 행한 항해로 코르테스는 벨라스케스의 손에 처형당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뒷날 코르테스는 자신이 멕시코 총독으로 재임할 때 스페인에서 독립한 새로운 왕국을 세우고 스스로 제국의 왕이 될 계획을 시도했을 정도로 배짱이 좋은 인물이었다.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떠나면서 안톤에게 당부했다. 멕시코에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일행을 데리고 어디든 잘 숨어있으라고. 이때 안톤은 기억해 둔 해류를 떠올렸다. 후안 폰세와 함께 플로리다 주변을 항해할 때 만났던 그 강하고 뜨거운 해류가 큰 물길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가 멕시코를 떠나 쿠바섬 동쪽 끝 카리브 해협을 지나 쿠바와 플로리다 해협을 지나 멕시코만으로 들어섰다. 그가 쿠바섬 서쪽 끝을 항해했다. 쿠바섬 서쪽을 항해하던 콜럼버스가 이쯤 어디에서 항해를 멈추고 황금이 있는 히스파니올라로 되돌아가 버렸던 그곳이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이곳이 가타이와 연결된 반도, 한반도라고 확신한 채 죽었다. 콜럼버스가 반도라고 유럽에 알렸던 쿠바. 그 쿠바를 반도가 아닌 섬으로 처음 확인한 자가 안톤이다. 이 항해에서 안톤이 아바나만을 발견했다.


폰세가 처음 항해한 플로리다 땅에도 다이노들이 살고 있었다. 미국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미국 땅에서 가장 먼저 원주민이 살기 시작한 곳이 플로리다 땅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카리브의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쿠바섬에서 플로리다로 건너갔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퍼져 살았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플로리다 주변 원주민들을 플로리다 다이노라고 규정한다. 이들도 마을 주위에 우리를 세워 둘러 마을을 보호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모두 우리였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가시관의 집은 큰 직사각형으로 야자수 잎사귀를 엮은 초가지붕을 이었고, 마을 사람들의 집은 작고 동그란 초가지붕을 올렸다. 이들도 다박고tabacco를 했다. 플로리다 다이노 가운데서도 재미노리Seminole족들은 막 독립한 미합중국을 상대로 40년에 걸친 무장 전쟁을 벌였다. 플로리다 전쟁이라 부르는 이 전쟁은 미국의 아메리카 정복역사에서 가장 길고 강력한 인디언 저항 전쟁이다. 단일 전투에서 미군 2,000명이 몰살당하기도 했다. 이 전쟁이 신생 미합중국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한 최초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었다. 플로리다 다이노 민족으로서는 스페인 제국주의자의 침략 이후 다시 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다이노 민족의 역사로 보면 16세기 콜럼버스의 침공으로 시작된 카리브와 중남미에서 스페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었고, 북아메리카에서는 신생 미국 제국주의의 제물이 되었다. 그러니까 다이노 민족이 북미와 중미, 남미 전역에서 기독교 백인 세력에게 가장 치명적으로 희생된 민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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