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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바나

8. 아바나

#191. 블루오션

by 조이진

블루오션

신세계에서 오는 보물선이 수시로 스페인에 드나들었다. 주변국들이 보물선을 탐했다. 항해에 뒤늦게 뛰어든 영국과 프랑스가 가장 부러워했다. 두 나라 왕실은 스페인 보물선을 약탈해도 좋다는 해적 면허를 팔았다. 카리브해에는 사냥할 스페인 보물선이 많았다. 지중해와 비교해 넓은 카리브해에는 보물을 지킬 스페인의 대포도 요새도 군인도 충분하지 않았다. 카리브 바다는 위험은 낮고 보상은 큰 블루오션이었다.

소토의 정복경로. 북미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플로리다와 미시시피 일대에서 다이노 사회를 철저히 파괴했다./위키피디아


아바나는 그때 아메리카의 터미널이었다. 콜럼버스가 카나리아섬에 기항해서 마지막 출항 준비를 마쳤듯이 스페인으로 가는 배는 아바나에서 화물을 정리해 적재하고 항해에 필요한 음식과 물 따위를 실었다. 배에 짐을 싣는 동안 아스텍과 히스파니올라 등에서 온 선원들에게 기항지 아바나는 긴 항해를 위해 쉬는 곳이기도 했다. 1538년에도 아바나 만에는 집이라고는 40여 채뿐이었다. 그마저도 허름했다. 아바나에 집이 몇 채였는지 기록된 것도 이 해에 아바나가 프랑스 해적에게 약탈당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해적은 3종류가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국왕이 승인하고 파견한 사략 해적, 왕실과 무관하게 떠다니는 자유 해적, 북아프리카계 모슬렘 해적들로 나뉘었다. 1538년에 첫 번째로 아바나를 약탈한 해적은 프랑스 사략 해적단이었다. 모아둔 보물을 몽땅 빼앗기고서야 아바나의 허술한 방비 실상이 스페인 왕실에 보고되었다. 스페인 제국은 운영 예산의 많은 비중을 아바나에서 들여오는 보물에 의존했다. 약탈경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카를로스 1세는 아바나에 첫 번째 요새를 건설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 아메리카에서 세비야로 출항하는 모든 선박은 아바나에 정박해 집결한 뒤에 선단을 이뤄 항해하라 명했다. 이로써 아바나 항이 500년 동안 두 대륙 사이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항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에르단도 데 소토. 플로리다와 미국 동남부에 상륙해 원주민을 몰살하고 정복했다.


보다디야Bodadilla라는 여성이 아바나 요새를 건설할 책임자였다. 콜럼버스를 체포해 세비야로 압송하고 식민지 총독을 지냈을 만큼 정치적으로도 유력한 가문 출생인 보다디야는 1538년에 처음 아바나에 왔다. 남편 소토는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된 아메리카 정복자였다. 소토는 쿠스코에서 잉카 왕의 목을 자르고 엄청난 금은을 싣고 쿠바로 돌아왔다. 당시 잉카는 에콰도르, 페루에서 칠레 일부를 아우른 거대한 대제국이었다. 그 큰 제국을 무너뜨린 데는 스페인 사람으로 숙주 삼아 밀항한 천연두도 큰 공을 세웠다. 쿠바로 들어오기 전에 소토는 니카라과 총독이기도 했다. 이 모든 땅이 니가라오Nicarao라는 이름의 다이노 가시관의 영토였다. 미국 폭포 나이아가라Niagara처럼 니가라오도 네 갈래 물줄기라는 원주민 말이다. 그래서 니가라오 땅에도 큰 강과 물줄기들이 많다. 초기 정복자들의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니카라과에서도 원주민들이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무판자 두 쪽을 머리 앞뒤에 대고 무거운 돌로 올려 편두로 만들었다. 이들이 잉카문명을 건설했다. 소토가 그 많은 황금을 스페인으로 보내자 스페인 국왕은 그를 쿠바 총독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플로리다 식민지 정복권도 부여했다. 또 다른 잉카의 황금을 기대했다. 그때 스페인 왕실은 플로리다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식민지로 개발할 여유까지는 없었다. 신임 총독 소토는 쿠바에 도착한 지 1년도 안 된 1539년 플로리다로 떠났다. 단지 600명의 스페인 군인으로 북아메리카 대륙 원정을 시작했다. 소토가 플로리다, 조지아, 미시시피 일대를 스페인 식민지로 정복했다. 미국 남동부의 많은 원주민을 몰살한 소토의 정복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군사는 600명의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소토가 데리고 간 200마리의 돼지였다. 돼지 속에도 정복자가 잠복해 있었다. 노아의 방주에 탄 바이러스들이 뭍에 올라 다이노들을 몰살했다. 역사적으로 미국 의회 의사당 로톤다 홀에 걸려있는 그림 속 영웅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소토여야 마땅하다. 그리고 정복자 소토 곁에는 그를 따르는 돼지들이 있어야 한다. 소토는 자기가 없는 동안 쿠바를 아내 보다디야에게 통치하게 위임했다. 이 시기는 침략전이 아메리카 전역에서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고, 혁혁한 공을 세운 정복 영웅들이 넘쳐나는 때였다. 그렇더라도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던 아바나 총독에 보다디야가 임명된 것은 그녀가 매우 정치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스페인에서도 여성이 고위직에 진출하는 일은 아직 없었던 때 보다디야가 스페인의 서쪽의 대륙 영토 전체에서 최초의 여성 총독이 되었다. 소토는 아바나를 떠난 4년 동안 현재의 플로리다와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등 미국 남동부 땅을 탐사했다. 정복은 실패했다. 다이노 원주민들의 강력한 저항과 전투, 식량부족 때문이었다. 소토는 4년 만에 미시시피강 서쪽 언덕에서 전염병으로 죽었다.

소토는 깊은 밤에 수장되었다. 원주민들이 백인들을 죽지 않는 저승사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도, 사체도, 묘지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시시피강을 정복한 데 소토. 미국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 걸려있다. 미국은 데 소토를 초기 미국 개척자로 추존한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가슴 저미는 망부석 전설이 만들어졌다. 아바나에 있는 레알 푸에르사 요새는 스페인 국왕의 힘을 보여주는 요새라는 뜻을 지녔다. 아바나에서는 물론이고 카리브와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지어진 요새이자 석조건축물이다. 아바나 비에하에서 중심에 있다. 깊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고 대포들이 항구를 향해 일렬로 길게 배치되어 있다. 요새 바로 옆 아르마스 광장 앞에 총독부가 있다. 레알 푸에르사는 얼핏 보아도 아주 단단하고 튼튼해 보이는 석회암 건축물이다. 그 안에 스페인 왕에게 보낼 재화를 모아 보관했다. 이 요새 꼭대기에 작은 동상이 풍향계로 서 있다. 풍향계 동상의 모델은 보다디야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아바나 앞바다에 침몰했을 것으로 짐작하여 아바나 앞바다를 몇 년간 수색했다. 풍향계는 늘 바람의 방향을 가리킨다. 보다디야도 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아바나로 바람이 불어오면 떠난 남편도 되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보다디야는 지금도 요새 가장 높은 곳에 망부석으로 서서 아바나만 앞바다를 응시하며 일편단심 오매불망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보다디야는 무척 바쁜 여인이었다. 남편을 기다린다며 한가하게 플로리다의 바람을 살피지도 못했고, 아바나 앞바다를 바라보며 옷고름 적시며 남편을 기다릴 여유도 없었다. 아바나로 쏟아져 들어오는 재물을 잘 챙겨야 했고, 들끓는 해적들을 경계해야 했다. 이 항구의 요새도 건설해야 했다. 보다디야는 사적으로는 아바나 일대에 4개가 넘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소유주였다. 그녀의 가장 큰 플랜테이션은 과나바코아에 있었다. 플랜테이션이 들어섰다는 말은 과나바코아 다이노 사회도 무너졌다는 뜻이다. 또 다이노들은 죽었거나 살아남은 자들은 스페인인들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레알 푸에르사는 아바나 인근 해안의 석회암으로 지어졌다. 나무 삽으로 땅을 파고 손도끼로 돌을 깨고 나무 연장으로 석회암을 잘라냈다. 과나바코아의 다이노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아바나항의 풍향계 보다디야 히랄다. 청동풍향계는 늘 플로리다의 바람을 보며 남편을 기다린다는 순애보를 담고 있지만 실제로 보다디야는 남편을 기다릴 여유도 없을 만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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