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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바나

8. 아바나

#192. 아르마다

by 조이진

아르마다

1551년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과 신세계로 다니는 모든 배는 최소 100t이 넘어야 하고 또 한 번에 10대 이상 무리 지어서만 항해하라고 명령했다. 반드시 무장한 함선이 선단을 호위하게끔 했다. 해적의 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스페인 무적함대는 아바나와 세비야를 오가는 보물선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신세계에서는 오직 아바나에 집결하게 했다. 카리브해는 동지부터 건기고 5월이 되면 허리케인이 몰려오고 우기가 11월까지 계속된다. 그러므로 아바나 항에는 건기 한철 4개월가량 스페인으로 가려는 배들이 신세계 전역에서 몰려들고 머물렀다. 아르마다가 조직된 첫해에 벌써 대형 상선 30척이 넘는 함대가 형성되었다. 몇 해 전까지 몇 십 채의 집뿐이었던 작은 항구 마을이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항구가 되었다. 또 세계 최대의 보물 터미널이 되었다. 1,560년 무렵에는 남미까지 신세계 정복 전선이 확대되었다. 중미와 남미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보물선이 60척도 넘었다. 배들은 허리케인이 오기 직전에 카리브를 떠났다. 아르마다가 아바나와 마드리드의 운명을 지켰다.

지구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카를로스 1세와 무적함대

지금도 우기에는 아바나에 외지인이 오지 않는다. 500년 동안 아바나는 그랬다. 건기가 시작되는 12월이 되면 활기를 되찾는다. 여관과 술집은 거미줄을 걷고 먼지를 털고 침대와 테이블을 수리하고 닦았다. 보물을 가득 실은 배를 몰고 올 건기 한철 손님을 맞을 준비는 잘 되었다. 아바나 외곽에서는 농부들이 먹을 것을 생산했다. 아바나에 머무는 선원들이 먹을 양식을 농사지었다. 항해할 때 필요한 먹거리와 술을 배에 실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먹을 돼지가 대량 방목되었다. 선원들이 항해하는 동안 먹을 돼지고기를 자르기Ch'arki로 만들어서 햇볕에 말려 배에 실었다. 배를 손보고 세관에 보물의 양을 신고하고 세비야까지 가는 긴 항해에 필요한 물품을 사 실었다. 아바나는 골목마다 뱃사람들로 꽉 찼다. 이때 한 철만 문을 여는 술집이 살림집보다 더 많았다. 술집은 왁자지껄 질펀했다. 여관은 방이 부족했으니 다이노가 쓰는 아마까를 방 대신 임대했다. 아마까는 쥐와 벌레, 뱀으로부터 보호하기에 좋았다. 아마까를 써 본 선원들이 이것을 배에 싣고 걸어 잠자리로 썼다. 배에 몸을 싣기 전에 선원들은 술집의 기억을 뇌에 먼저 실었다. 두어 달 동안 질펀하게 술을 마셨다. 이 기억이 긴 항해의 시간을 버티게 해 줄 것이었다. 술과 가장 가까운 벗은 도박이다. 술과 도박장은 이웃집으로 낸 문이 있기 마련이다. 이웃집으로 가는 문은 매음 방으로 이어졌다. 선원들 가운데는 가톨릭 교황 폐하의 물건을 빼앗으려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해적으로부터 부디 금은보화를 지켜주십사 하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자들도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군이 아바나를 점령하는 전날 밤 자정까지 아바나의 이런 풍경은 500년 동안 그대로였다. 보다디야가 총독이었을 때와 피델이 왔을 때를 비교해 다른 것이 있다면 마약이 추가되었다는 정도다. 아바나는 그때부터 스스로 생존할 수 없었다. 풍향계가 된 보다디야는 늘 아바나만 바깥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아바나는 외부에서 누군가가 들어와야 도시가 되었다. 배가 아바나 만에 가득 차 있어야 아바나가 되었다. 보다디야 풍향계는 늘 보물을 실은 배와 낯선 남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술집과 여관에도 여자들이 낯선 남자들을 기다렸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공해 주었다.

카를로스 1세의 문장. '세상 밖으로'라는 뜻의 플루스 울트라를 선언했다.

아바나에는 무엇이든 밖에서 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바나를 공격하는 해적도 아바나만 바깥에서 왔다. 관료는 스페인 국왕에게 여러 차례 상소했다. 아바나가 해적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과 또 약탈당하면 스페인 왕실 재정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지 호소했다. 아바나에는 스페인 사람이라고는 30명뿐인데 그마저도 대개 나이 들거나 병들어 칼을 들 수 없는 형편이라 방비가 없는 것과 다름없다 했다. 스페인처럼 아바나도 외부에서 착취한 것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영국, 프랑스 등이 그런 스페인을 시샘하여 또 다른 약탈자가 되고자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콜럼버스의 배들이 수평선 너머에서 들어와 다이노 사회를 파멸했듯이 다른 기독교도들이 저 바다 너머에서 조각구름처럼 둥둥 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콜럼버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아바나 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스페인의 것을 마음껏 약탈할 것이다. 전략은 적과 어디서 싸울지 그 길목을 정하는 일이다. 보다디야가 건설한 레알 푸에르사는 만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있었다. 요새는 적을 못 들어오게 하는 길목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적을 초대하고 있었다. 잘못된 위치의 요새는 방어할 수 없었다. 레알 푸에르사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 바다를 바라다 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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