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힙합
쿠로
세비야 같은 도시에서는 가축 도살이나 가죽 가공 같은 일을 처리할 계층이 필요했다. 흑인이나 물라토가 사회 밑바탕 일을 처리했다. 도시는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을 무시하여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이들을 아바나로 데려왔다. 이들은 세비야에서 왔다며 잔뜩 허세 부리고 치장했다. 허리춤은 꽉 달라붙고 아랫단은 통이 넓은 부츠컷 플레어 바지로 만들어 입었다. 인간의 패션 역사에서 플레어 바지를 처음 디자인해 입은 사람들이 이들이다. 그러니까 플레어 바지의 고향이 16세기 아바나다. 여러 번 주름을 잡은 소매는 통이 넓고 길었다. 맘보춤을 추는 댄서 의상이 바로 이런 스타일이다. 이런 복장을 한 자유 흑인 노예들을 네그로 쿠로라고 불렀다. 스페인어로 curro는 “과시하기 좋아하는, 허세 부리는, 촌스러운” 같은 의미를 담은 단어다. 그러니까 천한 신분에 멋을 잔뜩 부린 흑인을 야유하는 말이기도 했다. 네그로 쿠로들은 세비야에는 15세기 때부터 있었다. 포르투갈이 엘미나를 건설하고 엔히크가 노예무역을 개시하여 스페인에 흑인을 팔았을 때부터 있었다. 식민지 정복자 주인이 아바나로 올 때 데려왔다. 네그로 쿠로들은 음감이 좋았다. 특히 안달루시아에서 온 네그로 쿠로들은 세비야의 기타 음악을 잘 알고 있었다. 네그로 쿠로들이 가장 먼저 하바네로가 되었다. 아바나 골목 모퉁이에 하얀 플레어 바지와 긴소매 옷을 입고 차양 달린 모자를 쓴 흑인 멋쟁이들이 나타났다. 16세기에 아바나로 들어온 이들은 스페인에서 태어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대개 기독교를 믿었다. 피부색이 같은 것 말고는 갓 노예선에서 내린 흑인들과는 서로 매우 달랐다. 아바나 골목에서 스페인에서 온 흑인과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 마주쳤다. 새로운 음악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안달루시아의 비트와 아프리카의 소울이 처음 만나고 있었다.
힙합
아바나 비에하를 몰려다니는 흑인들이 블랙 스트리트 패션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엉덩이 부분이 축 처지고 자루처럼 헐렁하여 곧 벗겨질 것 같은 배기바지와 엉덩이 아래까지 흘러내린 윗옷을 입었다. 그리고 비틀비틀 춤을 추었다. 힙합 스타일이다. 패션계에서는 터그thug 스타일이라고 한다. 아바나에서는 17세기에 쿠로들이 입기 시작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도시 빈민가로 이주하여 범죄 집단화하면서 300년 전 아바나 쿠로들의 스타일을 갱단들이 입었다. 스킨헤드와 문신하고 앞니를 금으로 씌운 갱 단원들이 터그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뉴욕 빈민가에서 터그 스타일을 한 흑인과 히스패닉 청소년들이 힙합을 시작했다. 1990년부터 투팍 샤커Tupac Shakur와 에미넴Eminem같은 아티스트들로 힙합은 황금기를 이루었다. 잉카의 마지막 황제 이름을 딴 투팍이 기하학적인 무늬를 화려하게 물들인 반다나Bandanna를 목이나 손목에 두르거나 머리에 두건으로 썼다. 투팍과 에미넴의 것은 모두 힙한 것이 되었으므로 반다나는 힙합 패션을 상징하는 비주얼 요소가 되었다. 갱단 출신 갱스터 힙합퍼들이 반다나를 두르고 공연했다. 스트리트 패션에서 반다나는 힙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멋쟁이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그들은 과시적인 옷차림과 액세서리, 손가락마다 낀 반지와 금목걸이와 보석, 골드 크라운으로 치장했다. 빨간 손수건을 둘러 머리를 장식한 반다나도 17세기 아바나 흑인 여성들이 처음 시작한 스타일이다. 17세기 아바나 골목 모퉁이에서는 남녀 네그로 쿠로들이 그런 차림으로 만나 데이트했다.
이런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이 그 시절 아바나의 밤거리에서 비롯했다. 이때의 네그로 쿠로를 이렇게 기록했다. “이들은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들의 생김새도, 머리를 꼬아 장식하는 방법도, 걸음걸이도, 셔츠도 바지도 신발도 모자도 달랐다. 심지어 그들은 치아도 다르게 장식했다. 모든 장식을 써서 쿠로라는 표식으로 삼았다. 이들은 자신들을 다른 이들에게 맞추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타인과 분리하고 다르게 만들려고 필사적이었다. 남들이 자신을 식별하게끔 했다. 그래서 자기들을 선망하든지 아니면 무서워 피하든지 하게 했다.” 이들이 주로 아바나의 유흥업소에서 포주 역을 맡았다. 또 스스로 매춘하는 남창이기도 했고 때로는 여창이 되기도 했다. 아바나의 밤거리에서는 그들을 물라토 데 룸보mulata de rumbo라고 불렀다. 거리의 물라토 여자라는 뜻이다. 안달루시아에서 온 백인 꽃제비guapos들이 그렇듯이 이들도 힘들여 일하기를 꺼렸다. 이들이 아바나 성곽 바깥 습지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그곳에서 하급 선원들에게 싸구려 럼주를 팔았다. 옆방에서는 도박장을 운영했고, 또 다른 방에서는 매음했다. 자신의 성도 함께 팔았다. 쿠로들은 그들끼리만 통하는 은어로 말했다. 쌍소리와 욕이 양념처럼 섞이면서 독특한 억양과 리듬으로 말이 꾸려졌다. 잔뜩 허세를 부리고 꺼덕꺼덕 건들거리며 걸었다. 큰 보폭으로 양팔을 높이 흔들고 으스대면서 활보했다. 그렇게 걷는 모양새를 스왝거링한다고 한다. 활개 치며 걷는다는 뜻이다. 쿠로들이 스왝거링하며 아바나 거리를 걷던 때가 17세기의 일이다. 콜럼버스가 쿠바를 침공한 지 대략 100년 지났을 때 일이다. 예의와 지식을 갖춘 다이노가 떠난 쿠바는 100년 만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이것이 식민의 단면이다. 아이티도 푸에르토리코도 자메이카도 기독교 유럽인들의 식민지는 그렇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