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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바나

8. 아바나

#198. 룸바

by 조이진

룸바

중앙아프리카 콩고 지역의 반투족 남자와 여자들은 야자수 잎을 말려 만든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수건 같은 천을 허리에 묶고 몸을 흔든다. 이 치마를 입고 격렬하게 춤을 추면 남자든 여자든 그 깊은 속까지 보이기도 한다. 춤이 무르익다 눈이 맞는 이성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럴 때면 남자든 여자든 이성 상대를 향해 자기의 발을 하늘로 들어차 올린다. 치마는 하늘을 향해 열린다. 치마는 이렇게 서로 짝을 찾는 도구가 된다.

춤추는 우간다 반투인. 아프리카인들은 짝짓기를 위해 춤을 추었다.

마침내 허리춤에 찬 수건을 마음에 둔 상대에게 던지고, 상대가 이를 받아주면 짝은 맺어진다. 끝내 짝을 맺지 못한 사람은 그 수건을 다음 차례에 춤추는 사람에게 넘겨 춤을 뽐내게 한다. 쿠바 사람들은 그런 춤을 반투댄스라고 부른다. 반투 댄스는 반투에서 노예로 팔려 간 쿠바의 룸바와 브라질 노예들의 삼바 춤의 뿌리가 되었다. 룸바든 삼바든 춤을 뽐내 짝짓기 하려는 아프리카 초원의 퍼포먼스였다. 중앙아프리카 사람들은 지금도 짝을 짓기 위해 춤을 춘다. 한 줄로 선 소녀들 앞에 한 줄로 선 남자아이들이 마주 서서 춤을 추는데 처음에는 손과 손을 마주치다가 차츰 신체를 접촉하다 가장 가깝게는 대개 여자들이 엉덩이를 상대의 성기 주변에 닿도록 흔드는 정도까지 접촉한다. 야하고 음란해 보이는 동작까지 순서에 따라 마친 뒤에야 짝을 찾은 남녀는 초원으로 사라진다. 이들이 이 춤을 추었다 하여 꼭 짝짓기 하는 것은 아니고 춤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춤은 부족사회가 남녀의 짝짓기에 대해 동의하고 인정해 주는 절차이기도 하다. 룸바의 노래와 스텝은 적도 이남의 탄자니아와 남아프리카 일대의 아프리카 출신들이 기억으로 되살려낸 춤이다. 반투족의 춤이 아바나로 건너와서 룸바가 되었고, 춤의 꽃이 되었다. 쿠바 인류학자 페르난도 오르티스는 룸바는 함께 모여 춤추는 파티라는 뜻으로 쓰는 아프로쿠바인들의 말이자 쿠바 고유의 춤의 형식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1860년 무렵에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처음 나타난 룸바는 여러 지역과 민족 출신의 아프리카인들이 쿠바의 노예 움막촌에서 만나 춤추다 서로 다른 요소들을 주고받아 융합한 음악과 춤이다. 아프리카 음악은 대개 리듬과 춤으로 이루어졌고,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흑인들이 시의 문학적 형식을 띤 가사를 붙여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문학적 전통을 받아들여 아프리카의 음악적 전통과 결합했다. 그래서 룸바는 아프리카의 춤이 아니라 쿠바 고유의 춤과 음악 형식이다.


19세기 아바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흑인 노예 움막 집합지였다. 바라카라는 비위생적인 움막은 인종적 차별과 착취에 시달리는 그들끼리 위로하고 그들의 문화를 생산하고 경험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분노와 갈등으로 끓는 노예들이 움막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춤과 노래뿐이었다. 그들은 항구 하역 노역장에서도 일을 하다 말고 틈만 나면 공터에 모여 춤을 추었다. 둘러서 드럼 대신 네모난 나무 상자든 의자 든 무엇이든 두드려 리듬을 만들었다. 그마저도 없으면 손뼉을 마주쳐 박자 삼았다. 비좁은 집안이라도 이웃들이 가득 모여 룸바를 추고 노래를 불렀다. 자유 흑인을 부러워한 노예 흑인들도 움막촌 어귀에 모여 룸바를 추었다. 룸바는 시골 구석구석까지도 파고들었다. 1886년에 노예제가 쿠바에서 공식적으로 철폐되었다. 설탕과 커피, 담배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되는 것들을 수출하기 위해 항구에는 일거리가 많았다.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시골 플랜테이션에서 산티아고 시내로 이주했다. 자유가 된 가난한 흑인들과 가난한 백인들이 일터에서 함께 섞이기 시작했다.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노예 주인들도 그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들의 춤사위는 자유와 즐거움을 느끼고 사랑을 구애하기도 하고 삶을 위로받는 수단이자 지배층을 비판하고 비웃는 항의의 몸짓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룸바는 단지 춤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기도 했다. 룸바는 춤이자 음악이었지만 또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해방이요 그들이 맞이하고픈 자유였다.


룸바는 쿠바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룸바는 콜롬비아처럼 쿠바와 가까운 카리브해 국가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행했다. 그리고 스페인 플라멩코에 스며들었고 룸바의 영향으로 플라멩코는 템포가 빨라졌다. 1920~30년에 뉴욕 흑인과 히스패닉 사회에 룸바가 전파되어 힙합의 뿌리가 되었고, 1940~1950년에는 아프리카에 상륙해 콩고룸바를 만들었다. 쿠바의 룸바가 유럽, 북미, 중남미, 아프리카로 퍼져 나갔다. 특히 미국에서 룸바는 뒷날 맘보mambo, 파창가pachanga, 살사salsa 같은 쿠바의 새로운 장르가 미국에서 유행하기 전까지 쿠바 음악을 상징하는 용어로 통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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