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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바나

8. 아바나

#199 카빌도

by 조이진

카빌도

중세 스페인 시절 영주가 새로 영지를 확보하면 토지주들은 협의체를 이뤄 새로운 영주와 협상했다. 그것이 카빌도Cabildo다. 카리브와 아메리카에서도 그 관행은 이어졌다. 카빌도는 식민지 총독에 대응하여 토지 소유주들이 모여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였다. 큰 도시든 작은 도시든 조직되어 활동하는 단체였다. 멕시코를 정복한 코르테스는 토지소유자들과 함께 카빌도를 직접 조직했다. 그렇게 하여 스페인 국왕과 본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궁극적으로 독립 국가의 국왕이 되는 시도를 했다. 그러니까 땅이 넓은 곳이라면 카빌도는 연방제로 가는 과정이었다. 미국의 연방제가 이런 개념에서 파생하였고 결과적으로 영국에서 독립을 이루었다.

스페인의 카빌도. 아메리카 식민지 전역에서 카빌도가 운영되었다.

쿠바의 흑인 노예들도 카빌도를 모방했다. 아프리카는 넓고 종족은 다양하다. 여러 곳에서 끌려온 흑인들이 돕고 살자면서 하나의 기구를 만들었다. 대표기구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들이 넓은 의미에서 같은 출신, 같은 에스닉 집단이라고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흑인 카빌도는 콜럼버스가 출항하기 전의 세비야에도 있었다. 스페인 국왕도 흑인 카빌도를 인정했다. 그러므로 스페인의 정복지가 넓어질 때마다 흑인 카빌도가 확산하였다. 플랜테이션에서 노예들은 대개 혼자 살았고 숱하게 죽어 나갔으므로 죽은 노예를 장례 치러주는 일이 흑인 카빌도의 주요 역할이었다. 노예 주인으로서도 사체 처리는 중요했다. 특히 사람이 죽으면 그 동료들이 동요하기 마련이었다. 장례만큼은 아프리카식으로 치르게 해 주었다. 장례에는 여러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비용을 줄이려는 노예주를 상대로 카빌도가 협상하여 장례를 주도했다. 그러다 보니 카빌도가 흑인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카빌도가 전통 관습이나 풍속을 유지하고 또 아프로쿠바인들의 역사와 신앙, 제례와 무의 소품 같은 것들을 보존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음악과 춤은 물론이었다.

쿠바 흑인들의 카빌도. 흑인들끼리 카빌도를 조직해 스스로 왕이 되고 신하가 되어 집회를 조직하고 한껏 치장해 축제를 운영했다. 카빌도 축제가 아프리카의 음악 전통을 지켰다.

카빌도도 조직이니 의장이 있었다. 중세 스페인에서는 영주가 의장이었다. 아프로쿠바인들은 아프리카적인 전통을 활용하여 카빌도 조직을 응용했다. 흑인 카빌도 의장은 스스로 왕과 왕비라고 자처했다. 그리고 집회를 조직하고 축제를 운영했다. 스페인에서 드럼은 사탄의 악기였으므로 금지되었다. 쿠바에서는 드럼이 사탄의 악기가 아니었다. 드럼이 축제에서 연주되었다. 말은 한 세대가 지나면 잊혔어도 노랫말로 된 아프리카 말은 지워지지 않았다. 카빌도 축제에서 아프리카 말로 된 노래를 드럼 사운드에 맞춰 불렸다. 세대가 바뀌어도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리듬과 사운드는 축제에서 원형대로 재현되어 기억되었다. 음악은 문화를 담는 큰 항아리다. 쿠바에서는 아프리카의 문화를 담아 보존했다. 카빌도가 그 항아리를 지켰다. 카빌도 만이 아프리카의 음악과 문화를 지킨 것은 아니었다. 노예로 팔려 온 자들은 대개 10대, 20대들이었다. 아프리카 문화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기들의 신과 종교 행사 때 연주하는 악기와 리듬 같은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젊은 그들도 카빌도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종교 행사와 음악과 춤과 리듬과 언어를 재현하고 보존했다. 또 새롭게 만들었다. 쿠바는 아프리카 음악을 보존하고 숙성하여 새로운 맛을 만드는 새로운 항아리가 되었다. 쿠바의 카빌도가 아프로쿠바인의 음악을 새롭게 만드는 축제의 주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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