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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바나

8. 아바나

#201 과히로

by 조이진

과히로

컬럼비아 최북단과 베네수엘라 북부의 카리브 해안 일대에 거주하는 다이노 민족은 스스로 와유Wayúu족이라 했다. 와유족은 자신들을 ‘우리we’, ‘사람들people’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굴종하지 않고 18세기말까지 300년 이상 스페인군에 무장 항쟁했으므로 스페인은 이들을 정복하지 못했다. 와유족은 스페인을 상대로 18세기말까지 300년 이상 스페인군에 무장 항쟁했다. 그들의 무장 항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20,000명이 넘는 저항군이 한 지도자의 휘하에 소속되었다. 이들이 스페인인들을 습격하고 총을 빼앗았고 말도 탔다. 다이노가 말과 총을 손에 넣자 그때부터 전투 양상은 백중세로 변했다. 한 번에 스페인군 100명 이상을 몰살한 전투도 있었다. 이들이 아메리카 전체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무장 독립투쟁을 벌인 다이노 집단이었다.

콜럼비아에 사는 다이노 와유족들.

굴종하지 않는 이들의 항쟁을 스페인은 반란이라고 했고 반도 또는 폭도라고 했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라틴 아메리카 저항의 역사는 길다. 강인한 반군의 역사가 이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와유족이 사는 지역은 컬럼비아 과히로 반도다. 열대우림의 중앙아메리카에 큰 사막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적도 이북 아메리카에서 가장 넓은 사막지대다. 처음에 스페인인들은 와유족을 와이로Wahiro라고 불렀다. 다이노 가시관의 직책 이름에는 ‘과-’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았다. 다이노족을 멸시하고 비하하는 의미로 ‘과-’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오늘날 스페인어 사전에는 올라가 있지도 않지만, 쿠바에서는 많이 쓰이는 쿠바식 스페인어 단어 ‘과히로guajiro’라는 말은 ‘촌놈, 시골뜨기, 농사꾼’이라는 뜻이 되었다. 반면 쿠바 사람들은 반도인과 다른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겨 스스로 과히로라고 말한다. 다이노를 비하하여 만들어진 그 단어가 뜻이 바뀌어 쿠바에서 태어난 백인 크리오요를 낮춰 부르는 말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라토, 흑인들을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그러니까 쿠바 사람 전체가 다 과히로였다. 스페인인들이 식민지 쿠바 촌뜨기라는 뜻으로 쿠바인을 그렇게 불렀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멤버 엘리아데스 오초아는 과히로 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이다.


푼토 과히로

칼데론Calderón은 로페 데 베가를 뒤이은 17세기 스페인 황금 세기 문학 작가다. 그의 대표작은 “인생은 한 번의 꿈이다La Vida es Sueño”로 유명하다. 칼데론이 연을 10줄로 구성한 시 데시마를 유행시켰다. 시는 대체로 4연과 후렴 4줄을 더해 44줄이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8줄로 변형되어 크게 유행했다. 데시마 시가 다루는 주제도 철학, 종교, 시, 정치 등으로 폭이 넓었다. 풍자도 있었다. 특히 상대방과 문장을 주고받으며 운이라는 틀과 율이라는 짜임에 맞춰 창의성과 즉흥성을 경쟁하기도 하였다. 크리에이티브를 경쟁하는 바스크의 문학 장르 재잘의 전통이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이어졌다. 데시마는 음악성보다는 시의 문학성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읊조리는 단조로운 멜리스마로 멜로디는 반복되었다.


18세기에 쿠바 과히로들이 스페인의 전통 가요 데시마를 쿠바식으로 현지화해 부른 노래가 푼토 과히로punto guajiro다. 스페인에서 기타가 만들어졌으니 기타 연주법 관련한 단어도 스페인어가 많다. 스트리밍 하지 않고 점묘적으로 뜯는 주법을 스페인 말로 푼토라 한다. 푼토 과히로는 노래라기보다는 시를 읊조리는 멜리스마에 가까웠다. 하지만 쿠바의 본성은 문학보다는 춤과 음악이다. 그러므로 푼토 과히로는 초기에는 단조로운 멜리스마였지만,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창의적이면서 순발력 있는 노랫말이 차차 중시되었다. 44줄이나 되는 긴 시를 노래하기 위해서 단순한 악기의 협조가 필요했다. 아니 노래를 이끌어줄 지배력 강한 악기의 역할이 필요했다. 푼토 과히로 장르에는 기타나 트레스 같은 기타류 악기와 2가지의 퍼커션 악기가 사용되었다. 2개의 퍼커션 악기는 다이노 민속악기 클라베와 기러다. 이 둘은 다이노가 밭에batey에서 하늘의 조상신에 제를 지내며 노래하고 춤출 때 쓰던 쿠바 전통 악기다. 스페인 악기 기타와 쿠바 다이노의 악기가 푼토 과히로에서 만나 새로운 음표와 화음을 일으켰다. 푼토 과히로에서는 다이노 악기 클라베를 똑딱거렸고, 기러를 긁어 마찰하는 소리를 만들었다. 이런 음악적 특징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이 많지 않은 곳에서 지배적이었다. 쿠바 섬 동쪽 지방 오리엔테는 산악지대이자 건조하여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바나와 비교해 흑인이 적었다. 그래서 산티아고 데 쿠바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 오리엔테 지역에서 푼타 과히로가 발달했다. 멕시코는 고산지대이므로 사탕수수 농사에 아예 부적합했다. 그러므로 흑인 노예들이 카리브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게 유입되었다. 흑인이 많지 않았던 멕시코에서도 푼토 과히로가 발달했다. 푼토 과히로는 하나의 후렴 연을 반복했고 높은음을 길게 늘여 빼서 천천히 노래 부르는 멜리스마 스타일로 노래 불렀다. 그리고 각 연과 연 사이를 클라베와 기로가 들어가 구분하고 연결했다.


푼토 과히로는 즉흥성을 요구하는 장르다. 쿠바 음악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곡 <관타나메라Guantanamera>는 쿠바 독립의 아버지 호세 마르티의 44줄 시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그러므로 이 곡을 부르는 가수마다 그 시에서 인용하는 가사가 다 다르다. 또 즉흥적으로 운과 율에 맞춰 가사를 지어내므로 끝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푼토 과히로는 12줄 현악기 반두리아나 티플레처럼 플러킹 하는 악기로 멜로디를 받쳤다. 플러킹은 검은 새 지르얍이 이베리아로 날아오기 전에 아랍이 이베리아를 지배한 초기부터 가이나들이 현악기 우드ûd를 연주했던 그 기법이다. 쿠바에서 코르도바 시절의 아랍 음악이 재현된 것은 플러킹 같은 연주법만이 아니다. 이베리아에서 가이나들은 하나의 멜로디를 반복해서 후렴 무왓샤샤를 불렀다. 쿠바에서도 후렴구를 불렀다. 44줄의 긴 데시마의 연과 연을 후렴구를 넣어서 나누고, 연과 연의 사이에서 후렴구는 음악의 흥과 맛을 돋우었다. 무왓샤샤와 같았다. 그리고 후렴구를 함께 부름으로써 듣는 이들을 음악에 참여시켜 시문 전체의 통일성을 갖추는 틀로 사용했다. 가이나들이 우드를 플러킹하고, 우리 조상들이 북을 다스리듯이 쿠바의 크리오요와 과히로들은 류트를 플러킹하고 클라베를 다스리고 기러를 스크래핑했다. 로페 데 베가, 칼데론 같은 위대한 극작가들은 쿠바에 가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창안해 낸 스페인 데시마가 쿠바와 카리브 연안 촌뜨기 과히로들의 음악으로 이렇게 변하고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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