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검은 새
검은 새
822년에 바그다드에서 도망한 한 피부 검은 새가 코르도바에 날아들었다. 그는 노예였지만 돈으로 자유를 샀을 만큼 성공한 자였고 바그다드의 아바스 궁정에서 왕과 함께 시를 읊었을 만큼 페르시아 세계에서 크게 인정받았던 예인이었다. 본명은 아불 하산Abul-Hasan, 스페인 문학사에서는 지르얍Ziryãb이라는 예명으로 등장한다. 노래하는 가수이자 우드 연주자이며, 작곡자이자 시인이며, 후학들의 명망 높은 스승이었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영역뿐만 아니라 수학과 천문학, 지질학, 기상학, 식물학에서 화장술과 요리까지도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지르얍은 음악 분야에서도 신화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코르도바에 날아왔을 때 코르도바는 음악적으로도 모슬렘과 아랍의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도입하여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코르도바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세계 음악이 융합되는 문화의 수도였다. 많은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이 이베리아로 향했지만, 여럿 가운데서도 지르얍이야말로 군계일학이요 백미였다. 검은 새는 그런 코르도바를 더욱 빛나게 장식했고, 지중해의 문화 수도라는 위상을 상징하는 코르도바의 아이콘이 되었다.
청어람 하는 제자의 소울 가득한 노래는 바그다드의 왕을 완전히 매료시켰고, 그런 제자의 능력을 스승은 견디지 못했다. 둘은 결국 부딪혔고, 제자는 스승의 권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바그다드를 도망쳐야 했다. 대 뮤지션 지르얍이 바그다드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코르도바 왕이 그를 초빙했다. 검은 새가 이베리아로 날아올 무렵은 코르도바의 우마야드 왕조와 바드다드의 아바스 왕조가 서로 적대적인 관계인 때였다. 그런 경쟁심에 우마야드 왕들은 코르도바를 아바스 왕조의 바그다드보다 더 뛰어난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던 차에 검은 새가 이베리아로 날아왔다. 이베리아는 그를 ‘노래하는 검은 새’라 불렸다. 달콤한 노래를 잘하는 피부 검은 자라는 뜻이었다. 지르얍은 4현의 우드를 5현으로 개조하여 연주하기도 한 천재 우드 연주자였고, 나무 플렉트럼으로 현을 튕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독수리 깃털을 이용해 튕겨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연주법을 창안하는 등 류트 연주에 큰 혁신을 이루었다. 지르얍이 부른 노래가 1만여 곡이 넘었다고 한다. 이 무렵에 류트를 포함한 여러 아시아 악기가 유럽에 지르얍과 함께 날아 들어왔다. 이베리아에서 지르얍은 가성을 사용한 카운터테너의 발성법을 개발해 불렀다. 뒷날 트로바도르들이 이 발성법으로 노래를 불렀고, 카운터테너 발성법은 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 유럽 성악의 기초가 되었다. 코르도바의 왕은 지르얍을 믿었고 여러 음악 학교를 세워 음악가를 양성했고 이것이 여러 유럽 음악 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지르얍이 처음으로 전문적으로 음악가들을 양성했고, 유럽 음악에는 지르얍과 코르도바, 바그다드 음악의 유전자가 섞였다.
지르얍이 문학과 노래, 류트 연주 같은 예술 분야에만 재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베리아에 아스파라거스를 소개했고, 아랍처럼 포도주를 일상적인 음료로 대중화했다. 서양 코스 요리의 식사 방식인 앙트레-메인-디저트 순서 구조도 식문화의 대가인 지르얍이 창안한 방식이었다. 그는 획기적인 드레스 스타일로 아주 유명했다. 겨울옷과 여름옷이라는 개념만 있던 그때 지르얍은 봄옷과 가을옷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옷은 사람과 도시를 변화시키고 생기를 불어넣었다. 코르도바 궁정에 새바람이 불었다. 그의 스타일은 코르도바를 사로잡았고, 코르도바 패션은 유럽에 ‘멋’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해주었다. 그는 노래할 때 감각적인 의상으로 코디했다. 특히 그의 헤어 스타일은 아주 센세이셔널했다. 지르얍은 페르시아와 아랍 지역의 많은 곡조와 무용을 이베리아에 소개했다. 그가 도입한 춤을 집시들이 추면서 플라멩코가 되었다. 그의 모범적인 예의와 행동은 궁정 대신들의 예의의 표준이 되었고, 전 유럽의 궁정들이 앞다투어 코르도바 스타일의 궁중 매너를 배워갔다. 체스와 폴로 같은 게임도 그가 유럽에 소개했다. 그는 처음으로 면도해서 유명해지기도 했고, 치약을 유럽에 도입했다. 옷 세탁을 위해 소금을 사용했고, 데오도란트를 썼다. 유럽인들에게는 다 놀라운 것들이었다. 그는 많은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 코르도바뿐 아니라 세비야, 톨레도, 발렌시아, 그라나다 등 이베리아 전역에서 그의 스타일이 유행했고, 어둡던 피레네 북녘 유럽도 자극했다. 우마야드의 왕은 그를 총애했다. 엄청난 부를 주었고, 저택과 많은 선물을 그에게 쏟았다. 왕을 알현하기 위해 궁에 들어올 때 지르얍만 사용하는 전용 출입문을 만들어주었을 정도였다. 그 문은 지르얍의 개인 저택과 왕의 사적인 공간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의 출입을 알 수 없었다. 세우타의 성문을 열었던 돈 훌리안도 그 성문으로 지르얍까지 날아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영어로 번역된 지르얍의 시가 1,840편이나 된다.
+ 지르얍이 이베리아로 날아오던 무렵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는 사상과 상품과 돈이 흐르는 중심이었다. 이 중심지의 배후는 실크로드를 관통하는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 부하라 같은 도시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