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멜리스마
멜리스마
이집트에서 새로운 이슬람 왕조가 생겨났다. 새로운 왕조는 자신들만의 새로운 디나르를 만들었다. 남의 나라 화폐를 쓰는 것은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것으로 코르도바 왕조도 새로운 디나르를 만들었다. 이슬람 공동체가 분열되기 시작했다. 1009년부터 이베리아 이슬람 세력들끼리 내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우마야드 왕조가 멸망했다. 코르도바 이슬람 제국은 20여 작은 소왕국taifa으로 분해되었다. 중앙 권력이 무너진 이베리아는 힘의 공백 지대가 되었다. 소왕국 들은 각자 살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그러면서 독자적인 경제와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소왕국마다 음악은 여전히 꽃 피워가고 있었다. 음악의 중심은 가이나들이었다. 이베리아에서 자생한 가이나들은 이제는 궁정 음악 단원이 되어 연주하였고,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춤과 리듬을 없앤 체 오직 시어인 노랫말만을 단선율에 실어 읊기도 했다. 말 인형을 사용해서 말 탄 군인들의 전쟁 이야기를 안무해 공연하기도 했다. 물론 개중에는 여전히 몸을 내어 주인의 손님에게 잠자리 시중을 드는 가이나들도 있었다.
이슬람 세계가 분화하면서 이베리아 가이나들이 부른 노래는 아랍 가이나들이 부르는 노래와도 많이 달라졌다. 이베리아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병존하는 땅이었다. 이베리아 가이나들이 아랍 노래에 고트족의 기독교 찬트를 덧대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가이나들이 이슬람과 기독교를 음악으로 연결했다. 새로운 음악이 탄생했다. 멜리스마melisma는 기독교에서 찬송 시를 읊는 창법이다. 이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를 악보로 그린다면 한 음절마다 음표를 예닐곱 개는 그려야 한다. 이런 창법이 아랍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오래전부터 전통적으로 불렸는데, 기독교 의례에도 스몄다. 우리의 절집에서 승들이 염불 하듯이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에서도 수도승들이 검고 무거운 승복을 입고 성서의 시어를 암송하며 제의하는데 길게 늘여 빼 부르는 그 음은 매우 낮고 단조롭다. 그 단선율 찬송을 찬트chant라 하는데 이렇게 노래 부르는 창법이 멜리스마다. 멜리스마가 로마의 기독교를 따라 들어와 이베리아에서 아랍 노래와 결합하였고, 피레네 넘어 프랑크의 기독교 수도원에 전승되었다. 멜리스마는 낮은 저음으로 중얼거리는 듯하여 듣기에 단조롭고 멜로디와 리듬이 약하니 재미도 쾌락도 없다. 그런 멜리스마 창법이 모슬렘의 이베리아에서 아랍의 화려하고 세속적인 멜로디와 리듬에 착 달라붙었다. 멜리스마는 아랍 음악을 숙주 삼아 변이했다. 페르시아 전통의 아랍 음악과 분명히 다른 새로운 코르도바 스타일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지르얍이 유럽 음악의 기초를 만들어냈다. 이제 유럽 음악이 태어나려는 순간이다. 인류의 음악을 바꾼 위대한 크리에이티브는 그렇게 태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