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카리다드

10. 카리다드

#229 엘 코브레

by 조이진

엘 코브레

커피 플랜테이션이나 산티아고의 흑인 밀집 지역에서 툼바는 흔하게 연주되었다. 툼바는 깊은 산 팔렌케palenque에서도 울려 퍼졌다. 콜럼버스가 침략했을 때부터 다이노 씨마루아보들은 기독교도들을 피해 산속 깊은 곳으로 숨어 움막을 짓고 마을을 만들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씨마루아보들이 모여 살았던 산중 마을을 팔렌케라고 했다. 다이노들이 숨었던 곳에 흑인들도 숨어들었다. 팔렌케에서 다이노와 흑인들의 피가 섞였다. 해발 2,000m가 넘는 높고 긴 산맥은 숨고 싶은 사람들을 품어주고 지켜주었다.


아바나가 스페인의 보물 터미널이었을 때 이 산맥은 스페인의 또 하나의 보물 창고였다. 성당의 종도, 대포나 총도 구리로 만들었다. 구리는 17세기에 가장 중요한 전략 광물이었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18km 떨어진 가까운 곳에 엘 코브레El Cobre라는 광산마을이 있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산맥 끝자락에 있는 큰 노천 구리광산이다. 쿠바 최초의 노천 구리광산이다. 이 광산마을의 맨 처음 이름은 산티아고 델 프라도 왕립 광산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산티아고 성인에게 구리를 지켜줄 것을 기도했다. 구리는 곧 스페인 왕실과 기독교 세계를 지켜주는 데 쓰일 것들이었다. 이 거룩하고 긴 이름은 금세 엘 코브레El Cobre로 바뀌었다. 그랜드 캐니언처럼 넓게 펼쳐진 이 산자락은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수십 미터 높이 경사면으로 잘려있다. 스페인 왕을 위해 노예들은 점점이 바닥에 달라붙어 붉은 흙을 긁어내고 돌을 깼다. 오직 사람의 손으로 흙을 파헤치고 돌을 깨고 부수고 원석을 녹여 구리를 얻었다. 그 땅은 기독교인들이 오기 전에는 다이노들이 대대로 화전을 갈아 살아온 땅이었다. 이제는 채찍과 몽둥이를 맞으며 기독교인들을 위해 산을 태우고 맨손으로 흙을 파내야 했다. 콜럼버스 침공 직후 1532년부터 구리 채굴이 시작되었고, 여기서 채취한 구리로 스페인 함대의 대포를 만들었고, 그 대포가 아메리카의 다른 다이노 고을을 포격하여 또 식민지 삼았다. 스페인은 가시관들이 태양을 향해 제를 올리던 지바우를 허물고 그 돌로 세운 교회당에 걸 종,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상도 엘 코브레의 구리로 만들었다.


이 마을을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산봉우리에 작은 마을에 비해 꽤 큰 가톨릭교회가 있다.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카리다드La Caridad라는 교회당이다. 이 예배당은 중요한 성지로 일 년 내내 섬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줄을 잇는다. 이 성당 옆 언덕 높은 곳에는 구리로 만든 씨마론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는 17세기에 구리광산에서 탈출한 노예들이 스페인의 폭정과 수탈에 대항하여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쿠바 정부가 세웠다. 교회당 앞으로는 산비탈을 따라 넓은 땅이 펼쳐져 있다. 이 땅에서 다이노 사람들은 유카와 옥수수, 바나나를 키웠고,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온 뒤로 아프리카 흑인들과 함께 섞여 살면서 소와 돼지, 닭 같은 가축도 키웠다. 그리고 북쪽 해안에서 소금을 말려 실어 왔다. 쿠바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지만 산티아고 데 쿠바 주변 바다는 모두 절벽이다. 그러므로 대서양 바다 만까지 가야 소금을 구할 수 있었다. 다이노와 흑인들은 수확한 농작물과 가축의 고기를 잘라 자르기ch’arki로 만들어 소금에 절여 보존했다. 자르기를 따뜻한 국물 요리인 따스오tasao로 끓여 엘 코브레 광산에서 다이노들과 흑인들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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