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카리다드
카리다드
1612년 엘 코브레의 자비의 성녀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이 마을에는 로드리고와 후안이라는 두 다이노 형제가 살았다. 그들은 10살짜리 흑인 노예 후안 모레노Juan Moreno와 함께 소금을 구해오라는 스페인 정복군의 명령을 받아 작은 배를 타고 대서양 바닷가로 떠났다. 그때는 허리케인이 부는 시기였다. 소년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하듯이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소금을 만드는 동안 악천후로 폭풍이 불었다. 소년들은 마리아에게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깨어보니 폭풍우가 그쳐 하늘은 맑고 바다가 잠잠했다. 세 소년은 소금을 만들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그들은 저만치 떨어진 물속에서 하얀 물체가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소년들은 카누를 저어 다가갔다. 처음에는 한 마리의 큰 새인 줄 알았다. 점점 가까이 갈수록 소녀상처럼 보였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오른팔로는 아기 예수를 안았고, 왼손은 금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었다. 마리아는 널빤지 위에 서 있었다. 다이노 소년이 모자를 벗어 그 상을 건져냈다. 상은 작았고, 두 뼘이 채 안 되었다. 마리아가 올라서 있는 널빤지에는 “나는 자비의 동정녀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흰옷을 입은 성모는 물라토와 같은 검은 피부색이었다. 놀라운 것은 성모상이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느 데도 젖지 않고 완전히 마른 채로 떠 있었다. 세 소년이 마리아상을 가지고 엘 코브레에 돌아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몇몇은 나뭇가지를 엮어 어설프나마
제단을 만들어 마리아상을 모셨다. 그리고 나뭇잎과 여러 꽃잎으로 장식했다. 스페인 관리자는 안토니오 앙골라라는 소년에게 엘 코브레의 스페인 관리에게 알리도록 했다. 흑인 노예가 그런 스페인식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기독교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앙골라는 그가 붙잡혀 온 출신지다. 스페인 광산 책임자는 작은 예배당을 짓게 했고, 램프를 보내 제단에 올려두고 절대 불을 꺼뜨리지 말라 명했다. 이 램프도 엘 코브레에서 채굴한 구리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쿠바뿐 아니라 스페인에도 피부 검은 물라토 성모상이 많은데 엘 코브레의 카리다드 성모상에서 시작되었다.
신비한 일은 또 일어났다. 어느 날 밤, 다이노 소년 로드리고는 카리다드 성모상이 밤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벽이 되어서야 옷이 젖은 채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스페인 사람들은 로드리고를 의심했다. 다이노들은 그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종교적 상징물을 땅에 묻어두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이노들은 재미zemís를 작물과 함께 땅에 묻었다, 묻으면서 풍작을 기원했다. 그런 다이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을 땅에 정성스레 묻고 풍습대로 그 위에 오줌을 쌌다가 스페인 신부와 정복군에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온 마을이 학살당한 일도 있었다. 다이노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예수를 신 중에서도 최고의 권능을 갖는 신이라고 하기에 그런 일을 했었다. 최고의 신 재미를 묻으면 틀림없이 크게 풍년이 들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또 다이노들은 가문을 상징하는 재미나 해골을 강에 묻는 풍속도 있었다. 적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재미나 해골이 막아 가문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스페인 정복군은 그 소년이 동정녀 상은 자기 소유물이고 피부색도 검으니 백인들은 카리다드 동정녀 상을 가져갈 수 없다고 말한 적 있다고 누명을 씌웠다. 스페인 군인들은 그 소년이 밤에 동정녀 상을 땅에 숨기지 못하도록 소년을 밧줄로 묶어두었지만, 동정녀 상은 밤마다 사라졌다 되돌아왔다. 이 동정녀 상 때문에 민심이 뒤숭숭해졌다. 스페인 관리는 산티아고 데 쿠바의 광장에 있는 큰 성당으로 이 동정녀 상을 보내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군인과 신부들이 더 철저히 동정녀 상을 지킬 것이었다. 스페인 군인들이 동정녀 상을 호위하는 큰 행렬을 지어 산티아고로 출발했다. 축포와 함께 대형 군악대가 앞장서 곡을 연주하며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행렬이 산티아고와 엘 코브레 마을로 나뉘는 갈림길에 이르자 산티아고로 가는 길로는 도무지 나아가지를 못했다. 행렬은 결국 엘 코브레로 다시 돌아왔다. 이날을 기록한 스페인 기록자는 이것이 동정녀의 뜻이었다고 적었다. 그때부터 엘 코브레는 동정녀의 집이 되었다. 다이노들은 다 죽었고, 마을은 흑인들로 채워졌다. 엘 코브레의 동정녀는 이제 흑인들의 여신이 되었다. 스페인 왕실은 동정녀를 위해 엘 코브레에 큰 성당을 다시 지었다. 이 성당에서도 동정녀는 밤마다 어딘가를 다녀왔다. 흑인들이 말하기를 동정녀가 광산에서 자기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했다. 또 아픈 곳을 치료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기적을 증명하듯이 동정녀를 밝히는 램프는 아무도 기름을 붓지 않아도 꺼지지 않고 빛을 밝혔다. 밤에만 사라지던 이적을 이제는 낮에도 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어느 날 광산에서 노역하는 다이노 엄마를 찾던 소녀가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 바위에서 사라진 동정녀 상을 발견했다. 동정녀 상이 이 바위 위에서 자주 발견되자 사람들은 동정녀가 그곳에 자신이 있을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는 뜻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그날 밤 그 바위 위에서 세 개의 불빛이 반짝거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엘 코브레 마을 북쪽 언덕 바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것이 콜럼버스가 쿠바를 침공한 지 대략 100년 뒤인 1617년의 일이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엘 코브레의 자비의 동정녀 카리다드는 쿠바의 수호신이 되었다. 1916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카리다드를 쿠바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카리다드는 쿠바 문화의 상징체가 되었고, 거의 모든 집마다 카리다드의 상을 모시고, 그녀를 위해 간소하나마 날마다 제사 음식을 올린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는 카리다드라는 이름을 쓰는 여성들이 흔하다. 카리다드 이야기는 모든 쿠바인이 잘 알고 있다. 산티아고는 물론이고, 아바나와 마이애미, 뉴욕에 사는 쿠바인들은 기적의 카리다드를 수호성인으로 모신다. 쿠바 사람들은 예수나 마리아가 아니라 카리다드를 신앙한다. 스페인 식민지배자들은 카리다드 전설을 왜곡했다. 허리케인 속에서 카리다드를 발견한 세 소년은 다이노 2명과 흑인 1명이었다. 이것을 스페인 사람들은 한 명의 스페인 소년, 한 명의 다이노 소년, 그리고 한 명의 흑인 소년이 배를 타고 가다 카리다드 상을 발견했다고 등장인물을 바꿨다. 스페인과 다이노, 그리고 흑인 세 인종의 혼합체가 쿠바라는 점을 강조하고 화합해야 한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소금을 만들어오는 고되고 위험한 노역을 지배층인 스페인인에게 시킬 리는 없었다. 2015년 쿠바를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이 엘 코브레 교회당을 찾아 미사를 진행했다. 그 정도로 엘 코브레는 쿠바인들 신앙의 중심이자 성소다.
여기까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엘 코브레의 카리다드는 쿠바의 역사와 문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엘 코브레의 다이노와 흑인 노예들에게 카리다드는 생명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노역의 고통과 상처를 돌봐주는 보호자였다. 세월 가면서 광산마을 사람 중에 돈을 모아 자유를 산 유색인이 생겨났고, 기금을 모아 예배당을 개축하고 카리다드를 축원하는 행진을 하고 기도하며 약속의 날을 기도했다. 그들은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면 부디 노예로 태어나지 말게 해 줄 것을 기도하며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기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쿠바 사람들을 수호해 주는 카리다드는 약한 자들의 편이었다. 구원 기도가 통했다. 엘 코브레에서 제련된 구리는 아바나를 거쳐 세비야로 실려 갔는데 해적의 약탈이 어찌나 심했는지 스페인은 17세기 중엽에 구리광산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카리다드가 해적들을 동원해 노예들을 구원한 셈이다. 구리가 생산되지 않자 엘 코브레는 생기가 돌았다. 스페인 광산업자들이 버리고 간 철제 도구로 노예와 자유 유색인들은 이제 자신들을 위해 농사를 지었다. 쿠바에 처음으로 철기 문명 농업이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황무지를 개간했고 여자들은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다. 또 노천의 구리를 모아서 팔았고, 녹여서 종이나 소 방울, 예배당의 촛대 같은 것을 만들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떠나니 대포를 만들 이유는 없었다. 노력하면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돈을 내고 자유를 샀다. 기독교인들이 떠나니 사람들이 태어날 때처럼 자유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