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카리다드

10. 카리다드

#231 인민

by 조이진

누에보 푸에블로

지킬 수 없다면 내 것이 아니다. 아메리카는 너무나 넓었고 스페인은 그것을 지킬 수 없었다. 1670년 스페인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영국이 카리브해 일대에서 스페인의 식민지를 노략하더니 결국 자메이카를 완전히 차지했다. 자메이카를 근거 삼은 영국 해적의 해적질은 더 심해졌다. 이 해에 스페인은 자메이카가 영국의 영토임을 조약으로 인정했다. 콜럼버스가 카리브를 침략했을 때부터 교황과 유럽 세계는 브라질을 제외한 대서양 너머 모든 땅이 스페인 영토라고 인정해 왔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스페인의 영토라 할지라도 이제는 실효적으로 영국이 점유하고 있고 또 스페인이 그것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 영국이 자메이카의 주인임을 스페인이 인정한다는 조약이었다. 법이란 정의가 아닌 승자를 위해 있는 것이라는 법 전통을 세웠다. 영미법은 불법일지라도 타인의 소유지를 오랫동안 점유하면 점유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한다. 이런 이상한 법률 논리와 전통이 이때 처음 생겨났다. 빼앗은 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가 법이었다. 이 조약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레콘키스타 때부터 이때까지 스페인과 가톨릭은 동고동락해 온 한 짝이었다. 이 조약은 가톨릭이 이제 신교의 힘에 완전히 제압된 처지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조약은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나선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신교 국가들을 흥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교황의 권능도 그 힘이 카리브 바다에 가라앉았으니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카리브해에서 스페인의 식민지를 노골적으로 약탈했다. 스페인 왕실은 빠르게 몰락하고 있었다. 이런 형편에서 스페인은 돈이 될 만한 상품에 욕심냈다. 엘 코브레의 사람들이 자유인 신분이 된 점을 순순하게 인정해주지 않았다. 왕실은 구리광산을 다시 몰수했다. 구리를 채굴해 보았자 바다로 싣고 나가자마자 해적에게 빼앗기게 될 처지에서 구리를 다시 채굴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 마을에 사는 어린이를 포함해 271명의 자유인을 다시 노예로 삼고자 했다. 노예를 팔아서라도 푼돈이라도 챙겨보자는 잔꽤였다. 부끄러운 스페인, 돈 앞에서 숭고한 가면을 벗어던진 로마 가톨릭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자메이카를 새로 얻은 영국은 지금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보려던 참이었고, 자메이카에서는 사탕수수가 돈벌이였다. 사탕수수는 곧 노예다. 영국이 자메이카에서 쓸 노예를 필요할 것이니 스페인 왕실은 자메이카에 노예를 대주고 몇 푼이나마 이문을 얻어보려는 치졸하기 그지없는 셈이었다.

쿠바 종교의 중심인 카리다드. 물라토의 피부색을 띠고 있다.


이미 10여 년을 자유인으로 살아온 엘 코브레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다. 스페인 관리들이 인구조사를 나왔다. 말이 인구조사지 노예 자원 재고 조사이자 구체적인 매매 준비 행위였다. 자유인 100여 명이 재고 조사를 나온 스페인 관리들을 모두 몽둥이로 패서 죽였다. 그리고 다이노 조상들이 콜럼버스 스페인군에게 대항했듯이, 죽창과 부뚜 몽둥이를 들고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으로 올라갔다. 산으로 간 새로운 씨보네들을 후안 모레노가 주도했다. 10살 때 바다에서 카리다드 상을 처음 발견한 그 흑인 소년이 30대 어른이 되어서는 예배당에서 카리다드를 지켰다. 그러다 70대가 된 이제는 엘 코브레의 혁명가가 되었다. 그가 엘 코브레 마을 사람들을 대표하여 스페인 국왕에게 탄원서를 냈다. 그 탄원서에는 “우리에게 우리의 푸에블로pueblo에 계속 살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돈을 내고서라도 살 수 있게 해 주소서”라고 적혀 있었다. 중요한 단어는 푸에블로다. 푸에블로는 스페인에서는 법률 용어다. 스페인 국왕이 인정하는 권리와 의무가 있는 인민people이 사는 공동체 마을이라는 뜻의 정치적 단어다. 즉 푸에블로는 노예가 아닌, 권리를 지닌 자유 인민들의 공동체라는 뜻이다. 영어의 국민republic에 가깝다. 모레노는 엘 코브레가 스페인 법률에 따라 적법한 정치 단위라는 점을 명분으로 선언했다. 노예가 돈을 주고 자유를 살 수 있는 것도 스페인 법이 오랫동안 인정한 법이었다. 그러므로 스페인 사람과 동등한 자격으로 동등한 법과 권리를 적용받겠다는 주장이었다. 모레노는 지금 노예 해방과 스페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을 선언한 것이었다. 모레노는 그 의미를 알고 그런 문장을 포함하였다. 스페인 왕실은 꼼짝하지 못했다. 모레노에게 스페인 국왕의 칙령이 당도했다. 모레노가 대신 읽었다. 이제 이 푸에블로에는 앞으로 어떤 인민도 팔리거나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씨마론이 되어 산에 숨은 사람들이 이제 자유인이 되어 산에서 내려왔다. 푸에블로들은 자유인이 되었고, 돈을 주고 자유를 살 수 있었다. 푸에블로가 되기 위해 사람들은 버려진 땅을 일궈 유가와 옥수수를 심었다. 조상 다이노들이 그랬듯 고누고conuco를 새로 만들고 나누어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씨앗을 뿌렸다. 고누고가 생기고 수확물이 생기면 자유인들은 예배당을 중심 삼아 집을 지었다. 스페인 사람들과는 피부색이 완전히 다른 푸에블로들이 검은 피부의 마리아상에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푸에블로들은 카리다드가 기적을 일으켜 자기들을 지켜주었다고 믿었다. 열심히 일한 푸에블로들은 돈을 모아 예배당을 새로 짓고 크고 깨끗하게 꾸몄다. 성당의 지붕도 높아졌고 카리다드의 상을 밝히는 구리 촛대도 은촛대로 바뀌었다. 이것이 산에서 내려온 씨보네가 이룬 누에보 푸에블로, 새 마을의 풍경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에 성공한 뒤 누에보 푸에블로Nuevo Pueblo 운동을 펼쳤다. 이들의 마음속에 씨보네 사회는 혁명 쿠바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사회였다. 누에보 푸에블로는 우리말로 새 마을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자율적으로 노동하고 산물을 공유하며 함께 사는 새로운 세상의 마을을 건설하는 운동이었다. 이것이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새마을 운동이다.

엘 코브레의 성당. 이 성당은 가톨릭의 마리아가 아니라 쿠바인들의 카리다드를 모시고 있다. 외세 압제에 굴복하지 않았던 쿠바인들의 신앙의 중심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 카리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