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피아노
커피
유럽은 설탕에 만족했다. 18세기 후반의 카리브해는 유럽의 설탕 통이었다. 유럽인들은 잼과 사탕을 발명했고, 설탕을 잔뜩 넣은 빵은 천국의 맛이었다. 부유한 귀족의 식탁일수록 큰 설탕 병이 올라와 있었다. 설탕이 부와 성공을 상징했다. 생 도맹그를 소유한 프랑스의 빵은 유난히 달았다. 합스부르크 왕후 마리아 테레지아는 큼지막한 설탕 그릇과 초콜릿 잔과 숟가락 세트를 순금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그때 유럽이 소비한 설탕의 오 분의 사를 프랑스와 영국의 카리브해 식민지가 생산했다. 나폴레옹은 병사들에게 이 전투가 끝나면 원 없이 설탕을 주겠노라고 외쳤다. 나폴레옹과 영국은 서로를 봉쇄했지만, 전쟁의 명운은 설탕이 갈랐다. 바다를 장악한 영국이 유럽에 설탕을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프랑스와 유럽에서 설탕 가격이 폭등했다. 설탕을 먹을 수 없게 되자 유럽인들이 나폴레옹을 원망했다. 나폴레옹을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하게 만든 숨은 주역은 설탕이었다. 수출이 막히자 설탕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은 사업 종목을 바꿨다. 이때 카리브해에 커피 플랜테이션이 많이 생겨났다. 오늘날 커피의 황제로 평가받는 콜롬비아, 자메이카, 쿠바의 커피 농업이 시작되었다.
생 도맹그에서 도망 나온 자들은 돈과 노예, 그리고 그 둘을 합친 플랜테이션 농업기술을 가지고 왔다. 이때까지 쿠바 오리엔테 지역은 플랜테이션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설탕 농업도 생 도맹그만큼 발달하지 않았을 때다. 스페인은 광범위한 식민지에서 광물 채굴로 큰돈을 벌었기 때문에 농사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나 영국과 비교해 자본주의 이행도 늦었고, 산업화의 물결도 아직 닿지 않았다. 커피에 대해서도 아직 관심 두지 않았다. 쿠바에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도 없었다. 생 도맹그 도망자들이 커피를 마시자 쿠바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도망자들이 소규모 커피 농사를 시작했고, 커피점을 열었다. 그 무렵에 개인이 땅을 소유할 수 있도록 바뀐 제도로 쿠바 동부에서 커피 플랜테이션이 시작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쿠바 토박이들보다 사업에 능통했다. 커피 플랜테이션이 방파제를 넘어 중부로 북상했다. 설탕, 면화, 인디고 플랜테이션도 함께 늘어났다. 생 도맹그 프랑스인들이 농업에 무지한 스페인인들을 제치고 아시엔다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피아노
사탕수수는 가파른 언덕 비탈의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서 태양을 최대로 받아내는 농업이다. 커피 농업은 반대다. 커피나무는 그늘 속에서 천천히 자라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커피 플랜테이션은 넓은 잎을 가진 키 큰 바나나 나무를 두어 커피나무에 그늘을 드리우고 땅을 촉촉하게 한다. 키 큰 나무 아래 키 낮은 커피나무, 그 사이로 산책길처럼 작업로를 낸 커피 농장은 수수한 정원 같다. 맑은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시냇물. 완만하게 이어지는 언덕에서 반질반질한 초록색 잎으로 덮은 커피나무에 달린 열매가 짙은 다홍색으로 익을수록 커피는 달콤한 점액으로 채워진다. 단맛이 가장 강한 사탕수수를 처음 달인 흑설탕을 휘저은 소량의 쿠바식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는 유난히 끈적하고 달콤하다. 커피가 달게 익을수록 쿠바에서 프랑스 문화도 달고 진해졌다. 생 도맹그에서 살았던 것처럼 프랑스인들은 쿠바에서도 희고 고운 하늘을 배경으로 솟은 아름다운 흰 저택을 짓고 살았다. 서재와 당구장 그리고 무도회장도 갖췄다. 플랜테이션 주인들은 밤마다 우아한 무도회를 즐겼다. 생 도맹그에서 그랬듯이 쿠바에서도 파티 음악은 흑인들이 연주했다. 프랑스인들은 바이올린과 첼로, 하프, 플루트 연주를 즐겼다. 이 무렵 피렌체에서 피아노가 발명되었다. 피아노 개발자가 붙인 악기의 애초 이름은 ‘여린 소리도, 센 소리도 내는 클라비쳄발로clavicembalo con Piano e forte’였다. 쳄발로에서 피아노를 개량했기 때문이다. 쳄발로는 건반을 누르면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낸다.
그래서 소리가 작고 음이 지속하는 시간도 짧았다. 반면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줄을 두드려서 소리를 낸다. 소리를 크게도 낼 수 있고 진동이 길어 소리가 지속하는 시간도 길다. 그래서 작은 힘으로 쳐 여린 소리도 낼 수 있고 또 강하고 큰 음도 낼 수 있는 쳄발로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 쳄발로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유행한 악기다. 하프시코드와 바흐는 바로크 시대를 상징했다. 바흐는 하프시코드와 피아노가 공존하고 교체되는 시기를 살았지만, 피아노곡을 한 곡도 작곡하지 않았다. 카리브의 설탕 경제로 유럽은 번영하고 있었고 음악도 새로운 소리를 원하고 있었다. 하프시코드보다 큰 음량과 음역 폭, 반응 속도를 갖춘 피아노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음악을 반영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새로운 사운드, 새로운 음악의 발견자들이었다. 커피에 빠져 정확히 60알의 커피콩을 갈아서 커피를 추출해 마시던 열정적인 피아니스트 베토벤은 피아노를 악기의 왕으로 자리 잡아 주었다. 베토벤의 피아노곡은 호방했다. 그는 빈에서 피아노를 가장 많이 망가뜨린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노를 사랑한 베토벤이 교향곡 <영웅Eroica>(1804)를 작곡한 해에 현대의 것처럼 작게 개량되어 배에 실을 수도 있게 된 피아노는 프랑스인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주문으로 산티아고 데 쿠바로 들어왔다. 커피 풍미 풍부한 프랑스인들의 정원에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피아노가 연주되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혼합되는 쿠바라는 음악의 용광로에 피아노가 뛰어들었다. 빠른 드럼 비트와 격정적인 아프리카 춤을 만났다. 쿠바의 피아노는 더는 여리고 성스러운 곡을 연주하는 유럽의 피아노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