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팀발레로
팀발레로
아바나에는 무도회장 말고도 춤을 출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댄스교습소였다. 백인 남성들이 주로 드나들었다. 여기서는 백인들이 물라토 여자 댄서와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었다. 춤을 추면서 연애하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값도 흥정했다. 이런 교습소가 성행하자 자기 판잣집을 댄스교습소로 삼는 여자 물라토도 많았다. 아바나 성곽 바깥 가난한 골목마다 교습소가 꽉 들어찼다. 쿠바에는 발데스Valdés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유독 많다. 1711년에 아바나 주교가 왕립보육원을 세웠고, 주교가 고아들을 세례하고 자신의 성을 아이들에게 내려주었기 때문이다. 주교의 성이 발데스였다. 그래서 쿠바에서 발데스는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기도 한다. 백인 아이들이 보육원에 들어갈 일은 없다. 전부 물라토나 흑인들이었다. 주교는 여기서 보육하는 대다수 발데스 소녀를 날마다 여러 댄스교습소에 보냈다. 댄스 파트너이자 연애 파트너로 공급했다. 이 주교의 보육원은 피델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문을 닫았다. 1800년대 후반에 쓰인 쿠바 소설은 네그로와 물라토 일곱 명이 바이올린 3대, 콘트라베이스, 피콜로, 클라리넷, 팀발 드럼으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한 교습소를 스케치했다. 팀발은 아프리카에서 알모라비데들이 이베리아로 가져온 케틀드럼이다. 스페인에서 쓰던 악기를 프랑스 루이 14세가 자신의 오케스트라에 편성한 뒤로 유럽에서 한때나마 오케스트라의 기본적으로 편성된 악기였다. 하지만 팀발은 빠른 춤을 추기 위해 연주하는 쿠바 음악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낮고 무거운 소리의 프랑스 팀파니를 대체하기 위해 쿠바 뮤지션들은 바일라paila를 만들었다. 바일라라는 이름은 파에야를 요리할 때 쓰는 얇고 넓은 팬의 이름에서 따왔다. 바일라를 유럽인들이 팀발이라 불렀다. 처음 바일라를 만들었을 때는 달걀 반을 쪼개놓은 모양이었고, 재질은 나무였다. 시간이 가면서 밑동이 열린 원통형 모양으로 변했고, 재료도 금속으로 만들었다. 오늘날의 드럼 연주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드럼 세트가 이 케틀드럼에서 진화된 것이다. 이 드럼에다 소 워낭인 카우벨을 걸어 보조 타악기로 두드린다. 팀발은 2개가 한 조인데 조금 큰 것을 수컷이라는 뜻의 마초macho, 작은 것을 암컷이라는 뜻의 엠브라hembra라 불렀다. 이런 구색은 상류층을 상대로 하는 오케스트라의 구성이었다. 슬럼가에서는 형편이 달랐다. 가난한 사람들이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플루트 같은 비싼 악기를 갖출 수는 없었다. 가난한 이들은 소리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두드렸다. 그러면 비트가 되었고 리듬이 되었다. 춤이야 따로 번거롭게 교습받을 것도 없었다. 어떤 몸짓이라도 춤이 되었고 에로틱할수록 좋은 춤이었다. 프랑스 궁정의 아장아장 품위 넘치는 미뉴에트도 만일 이들 쿠바 흑인 노예들이 춘다면 곧바로 몸과 몸, 엉덩이와 성기 부위를 서로 비비는 콩고 스타일의 미뉴에트로 바뀔 것이다. 아바네로는 이내 아바나를 떠났다. 멕시코에서는 아바네라를 '고추'라는 뜻의 “라 피미엔타La pimienta”라고 했다. 아바네라 또는 탱고가 자극적이고 중독성이 강해 그렇게 불렀다. 아바나를 떠난 하바네로가 라틴 아메리카를 두루 돌아 스페인으로 상륙했다. 그러면서 콘트라단자도, 탱고도 아닌 아바나 사람들의 춤 하바네로 또는 하바네라로 이름이 굳었다.
1843년에 아바나 신문에 흥미로운 광고 문구가 실렸다.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살롱이 새로 개업한다는 영업 광고였다. 댄스파티는 늦은 밤 10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이 살롱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서 왈츠와 단자danza 같은 곡을 연주했다. 이 광고는 왈츠와 단자 곡에 맞춰서 남녀의 가수들이 가사가 있는 노래를 부른다고 강조했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살롱. 이것은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생 도맹그 스타일의 클럽 문화가 아바나에서도 시작되었다. 그것도 화려한 가면을 쓰고 춤을 춘다고 했다. 이것이 이 살롱의 차별적인 셀링포인트였다. 무도회에서 가면은 익명성을 만들어준다. 얼굴이 감춰지는 무도회의 짓궂고 음탕한 재미를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때도 여자는 1페소, 남자는 2페소를 입장료로 받았다. 그런데 이 살롱에서 곡을 연주한 오케스트라가 특이했다. 전투가 없는 쿠바에서 스페인 군대는 할 일이 없었다. 광고는 스페인군에서 가장 큰 군악대였던 연대 소속의 군악대가 이 무도회에서 살롱에 소속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곡을 연주한다고 했다. 이것은 연주단의 규모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규모와 방식이었다. 그렇게 큰 규모의 연주단 연주에 맞춰 가사를 붙여 노래 부르며 왈츠와 탱고 춤을 춘다는 무도회는 새로운 방식의 공연이자 엔터테인먼트였다. 오케스트라의 구성도 현악기, 취주악기, 목관악기, 드럼 악기가 하나로 조화되었다. 건반악기만 빼고 모든 악기가 다 편성되었다. 악대와 오페라 가수들 그리고 댄스곡을 연주하는 흑인 연주자들까지 한데 모아 연주한 이 공연은 새로운 오케스트라 스타일을 보여주었고 하모니의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