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하바나 클럽
하바나 클럽
흑인 노예의 반란에 대한 공포심으로 일어난 가죽의 해를 보내면서 쿠바의 최상위 부유층 크리오요들은 더욱 미국이 쿠바를 합병해 주기를 원했다. 빠르게 힘이 줄고 있는 스페인 통치하에서는 곧 노예제 폐지 선언이 임박했다고 보았다. 그들이 보기에 미국은 노예를 강하게 억압하고 있으며 자유롭게 수입하고 있었다. 또 쿠바에 흑인 노예를 가득 싣고 입항하는 노예선들은 모두 미국 국기를 당당하게 달고 있었다. 영국 해군은 미국 국적의 노예선만은 단속할 수 없었다. 노예제를 마지막으로 폐지한 것으로 알려진 브라질도 노예 수입을 중단했지만, 쿠바는 집중적으로 노예를 수입하고 있었다. 1850-60년대만 해도 164,000여 명의 아프리카인이 쿠바에 하역되었다. 노예무역선의 90% 이상이 미국의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월스트리트의 금융기업들이 노예 사업에 투자했다. 미국 상원에 보고된 문서에 따르면 앙골라에서 70달러에 산 노예를 쿠바에서 1,200달러에 판매했다고 한다. 한 노예선 선장은 1854년에 상원에서 앙골라에서 655명을 선적했고, 쿠바에서 500명을 하역했으며 155명은 항해 중 죽어 바다에 버렸다고 증언했다. 남북전쟁이 터지기 전날 밤까지 노예무역은 남부보다는 북부 사업가들의 비즈니스였다. 1853년 새로 당선된 피어스의 취임식에는 “피어스 그리고 쿠바”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고, 신임 대통령은 “미국은 새로운 영토를 병합하고 팽창하는 행동을 더는 주저하지 않겠다”라고 취임사에서 선언했다. 함께 당선된 부통령은 워싱턴이 아닌 마탄사스의 플랜테이션에서 취임 선서했다. 쿠바에서 행한 신임 부통령의 취임식은 미국인들에게 쿠바섬은 분명한 미국의 섬으로 간주하게 했고 미국은 병합에 더욱 과감하게 덤벼들었다.
1847년에 미국에서 아바나로 온 병합파들이 쿠바 최상위층 부르주아 크리오요들과 마주 앉았다. 하바나 클럽Club de la Habana이 그들 회의체의 이름이었다. 아바나Havana가 하바나Habana로 바뀌었다. 하바나는 아바나의 미국식 표기와 발음이다. 스페인어와 영어가 하나로 섞였다. 이 이름에는 쿠바 앞날의 향방이 담겨있었다. 미국과 하나가 된 쿠바, 쿠바를 합병하는 미국이 되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쿠바를 2개 또는 3개의 주로 나눠 미국 연방에 속하게 되면 그보다 강한 노예제 방패가 없을 것이었다. 하바나 클럽이 미국 대통령에게 제안서를 제출했다. 하바나 클럽과 제임스 포크Polk는 노예 문제와 미국의 팽창에 대해 이해가 같았다. 미국 정부가 스페인에 10억 달러를 주고 쿠바를 매입하면 하바나 클럽이 1억 달러를 미국 정부에 보전하겠다는 것이 하바나 클럽이 제시한 제안서의 제목이었다. 하이 콘셉트로 간결하고 단순한 제목이었다.
제임스 포크도 테네시강과 미시시피 지역에서 거대한 농장을 소유한 노예 소유주였고, 재임 중에도 개인 노예를 대폭 늘렸다. 포크는 재임 중에 테네시주를 합병했다. 그리고 알래스카도 합병하려 했다. 영국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멕시코에서 독립을 원하는 텍사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미국이 그것을 빌미로 텍사스를 합병해 버렸다. 멕시코 베라크루스에 이틀 동안 1,300여 발의 대포알이 쏟아졌다. 탄피가 도심을 채웠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미국인들은 돈으로 살 형편은 안 되니 포탄으로 땅을 빼앗기로 했다. 미국의 포탄이 멕시코의 수도까지 떨어졌다. 멕시코는 2년간 버틴 끝에 항복했다. 항복의 대가로 대부분의 멕시코 땅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텍사스, 네브래스카, 네바다, 뉴멕시코,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같은 지역이 그때 빼앗긴 땅이다. 빼앗긴 땅은 농업이 가능한 땅이었고, 빼앗아 가지 않은 땅은 농사를 못 지을 땅이었다. 땅을 이렇게 잘라 간 것도 노예 농업을 하려는 미국 노예 소유주들의 셈이었다. 미국이 멕시코를 침공했을 때 멕시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지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방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새로 얻은 땅으로 미국의 영토가 서로는 캘리포니아를 지나 태평양에 닿았고, 남으로는 리오그란데강으로 멕시코와 국경을 정했다.
포크가 오늘날 미국 영토 사분의 일에 가까운 땅을 멕시코에서 빼앗았다. 미국에서는 멕시코 전체를 미국이 합병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있었다. 새로 확보한 영토에 철도를 잇고 백인들을 서부로 이주시켰다. 포크 대통령 재임 때 영토를 확장한 덕에 미국은 인구가 20년마다 두 배씩 늘었고 군사적으로도 강력해졌다. 알래스카는 1867년에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로서는 알래스카가 너무 멀리 있어서 지키기에 벅찼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영국에게 그 땅을 빼앗길까 조바심했다. 만일 그 땅을 영국이 차지하게 된다면 러시아는 앞뒤로 영국에게 포위당하는 형국이 될 터였다. 그러느니 차라리 돈 받고 미국에 넘겨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마침 크림 전쟁을 치른 후라 러시아로서는 돈이 절실하던 차였다. 미국으로서는 남북전쟁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남북전쟁 동안 영국은 북부 연방을 적으로 대했다. 그래서 북부 연방은 러시아로부터 지원받고 있었다. 영국이 알래스카를 차지하는 것은 미국에도, 러시아에도 좋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거래는 이뤄졌다. 미국은 75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샀다. 이때부터 미국 공화당 매파들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병합하는 것이 미국의 "운명"이라고 외쳤다. 대륙 전체를 통째로 노예제에 기반한 경제로 통합하려 했다. 미국의 팽창주의와 신제국주의가 혀를 날름거렸다. 다이노의 땅을 스페인이 빼앗더니 이제 미국이 그 땅과 사람을 삼키고 있었다. 쿠바의 설탕 산업은 이미 미국 자본이 틀어쥐고 있었다. 노예무역선에 가득 채운 아프리카인들은 뉴욕 금융기업들의 실물 자산일 뿐이었다.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과 미국 남부 노예 소유주 그리고 군대. 세 갈래 힘줄이 미국 제국주의라는 야수의 저작근이었다. 콜럼버스 시대의 스페인식 제국주의와는 얼개가 달랐다. 제국주의의 스타일이 달라졌다. 새로운 스타일의 제국주의였다. 야수의 견치 끝 바로 아래에 쿠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