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쌍둥이
쌍둥이
가예타노 마리오티니는 미국 동부 도시를 기차로 순회하는 곡마 단장이었다. 광대와 곡예사가 서커스를 했고, 말 같은 동물을 훈련해 공연했다. 공연 흥행을 위해 천막 입구에 코끼리를 전시했다. 가예타노가 미시시피강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코드 누아르가 엄격하게 적용된 뉴올리언스에서 흑인들은 제방을 따라 백인들과 격리된 광장이나 외딴 공터에서 모여 드럼 치고 춤을 추었다. 1817년 미국 전역에서 오직 이 푸블리크 광장Place Publique만이 흑인들이 드럼을 두드리며 춤을 추며 길을 걸을 수 있게 허락된 곳이었다. 그래서 뉴올리언스 콩고 광장은 미국의 흑인 역사에서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흑인들은 일요일 하루만큼은 조상들의 전통대로 옷을 입고 춤을 추고 행동할 수 있었다. 가예타노는 푸빌리크 광장에 서커스 전용 목조 공연장을 짓고 공연했다. 그래서 서커스 광장Place du Cirque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미국식인 서커스 스퀘어Circus Square로 불리다 오늘날에는 콩고 광장Congo Square이 되었다. 콩고 광장은 루이 암스트롱 공원 안에 있다. 루이 암스트롱 파크가 있는 것만으로도 이 광장이 재즈의 고향이라는 뜻이다. 마리오티니는 1809년에 뉴욕으로 이주했다. 음악의 땅 아바나 출신답게 그는 곡마단에 전속 밴드를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티켓 판매를 위해 뉴올리언스 거리를 밴드가 연주하며 돌아다니게 했다. 미국인들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시조로 P.T. 바넘 Barnum을 꼽지만, 마리오티니가 천막을 치고 코끼리를 앞세워 밴드 연주하며 미국 전역을 돌며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할 때 바넘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마리오티니가 콩고 스퀘어에서 코끼리를 타고 서커스를 할 때는 하바나 클럽이 포크 대통령에게 쿠바를 병합해 달라는 제안서를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쌍둥이 자매들은 서로 취향이 비슷하다. 아바나와 뉴올리언스가 그랬다. 뉴올리언스가 아바나에 비해 늦게 태어난 젊은 도시이기는 해도 춤에 관해서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바나에 경쟁할 수 있는 도시였다. 아바나처럼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춤과 음악에 흠뻑 젖었다. 쿠바를 병합하자는 제안서가 포크 대통령에게 제출될 무렵 뉴올리언스에는 80여 곳이 넘는 무도회장과 춤추는 거리가 있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음악 소리는 귀를 찢을 듯 컸고, 춤을 추는 자와 현란하게 몸을 치장한 자들이 뒤섞였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뒤꽁무니를 쫓고 몸을 뒤엉켰다. 그 무렵 미국에서도 화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고 있었고 화학이 발명한 물질이 산업의 현장으로 스몄다. 일산화질소는 달콤한 향기와 단맛을 지닌 환각 물질이다. 이 기체를 흡입하면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가스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맨 처음 상용화했다. 1822년 뉴올리언스의 무도회장 천정에서 일산화질소를 살포했다. 이 웃음 가스는 백인들 청춘 남녀에게만 살포되지 않았다. 물라토와 흑인들이 드나드는 볼룸에도 사용되었고 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시시피강 주변은 인디언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지역이었다. 백인들은 이 지역 인디언들의 저항 의지를 꺾고 순치하기 위해 마약처럼 이 가스를 살포했다. 볼룸 사업자들은 웃음 가스 원료를 구할 수만 있으면 어린이 전용 볼룸에도 살포했다. 두 도시가 비슷한 점은 많았다. 아바나에서 댄스교습소가 물라토와 윤락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듯이 뉴올리언스에서도 그랬다. 코드 누아르는 물라토와 백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을 콰드룬quadroon이라 불렀다. 말 그대로 흑인 피 25%와 백인 피 75%로 섞인 유색인이라는 뜻이다. 미국이 나폴레옹에게 루이지애나를 사들인 지 이태 뒤에 콰드룬 여자들을 상대로 춤을 출 수 있는 교습소가 문을 열었다. 교습소 주인은 상 도맹그에서 탈출한 프랑스인이었다. 그곳은 오직 100% 백인만 손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교습소가 문을 열기 전까지는 댄스와 윤락 상대방을 찾기 위해서 백인들도 유색인들과 경합해야 했다. 백인들로서는 무척 불쾌한 일이었다. 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교습소는 유색인을 아예 손님으로 받지 않았다. 뉴올리언스에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서비스상품이었다. 뉴올리언스는 고적대 연주에 맞춘 퍼레이드와 춤추는 장례식에 몰입하기로 유명한 도시다. 그 퍼레이드를 금관악기를 중심으로 한 브라스밴드가 주도했다. 브라스밴드는 트럼펫, 호른, 코넷 같은 놋쇠로 만든 금관악기와 플루트, 클라리넷, 색소폰 같은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취주악대였다. 여기에 드럼류와 콘트라베이스가 편성되기도 한다. 이런 브라스밴드도 이 세상에는 뉴올리언스와 아바나에만 있었다. 두 도시 모두 거리에서 행진하며 춤추는 축제를 좋아하는 특징이 있었다.
타콘이 아바나를 통치할 때 아바나 오페라 컴퍼니가 미국 투어에 나섰다. 아바나 오페라 컴퍼니의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가 판초 마르티다. 판초는 모든 배역을 이탈리아 연기자로 풀 캐스팅한 여덟 편의 이탈리아 오페라로 레퍼토리를 꾸렸다. 이 공연단이 뉴올리언스에서 두 달간 공연했다. 쿠바 공연단의 미국 투어의 시대가 열렸다. 몇 년 뒤 이들이 다시 뉴올리언스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스케일이 더 컸다. 연주 단원 75명에 합창단원이 30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9개월 동안이나 미국 동부를 순회하였다. 이들도 역시 이탈리아 출신 공연단이었다. 오늘날 미국의 3대 산업의 하나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쿠바의 곡마 단장 가예타노 마리오티니와 오페라 프로듀서 판초 마르티가 밑자락을 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