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늑대
늑대
미국이 루이지애나를 사들인 지 20년 지났을 즈음에 쿠바와 미국 남부는 거의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악기와 리듬, 밴드와 서커스가 쌍둥이 자매를 더욱 가깝게 했다. 그러던 1822년의 어느 봄날에 미국 상원의원 드울프DeWolf가 미국 국무장관 존 애덤스John Adams를 늦은 밤중에 찾아왔다. 드울프는 미국을 통틀어 가장 돈 많은 사업가였다. 노예 매매로 돈을 벌었다. 이 분야에서 미국에서 가장 악질적인 자로 이름을 떨쳤다. 어느 신문은 이 자의 이름 울프를 빗대 인간을 잡아가는 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비아냥거린 일도 있었다. 그는 20년간 44차례나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에 흑인을 가득 채워 실어 왔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노예 수입을 금지한 뒤로는 노예를 이제 쿠바에다 팔았다. 그가 쿠바에 실어 내린 노예만도 2,000명이 훨씬 넘었다. 일부는 자신이 소유했다. 그도 쿠바에 자기 소유의 설탕과 커피 플랜테이션을 갖고 있었다. 쿠바와 노예에 이권이 많은 정치가였다. 그가 일요일 밤에 국무장관을 찾아온 것은 쿠바 때문이었다. 그는 영국이 몇 개월 안에 쿠바를 점령할 것이라는 정통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국무장관에게 말했다. 영국은 한때는 노예무역 시장을 장악했지만, 이때는 노예무역을 가장 반대하는 나라로 돌변한 때였다. 겉으로는 그랬지만 영국도 자메이카 같은 카리브해에서 노예무역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노예선에 대해서만 해군력을 앞세워 단속하며 노예무역 중단을 강요했다. 일종의 경제적 봉쇄정책이었다. 만일 영국이 쿠바를 차지하게 된다면 드울프의 노예 사업은 끝나게 될 형편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소유의 설탕과 커피 농장도 잡초밭으로 변하게 된다. 그가 일요일 밤중에 애덤스를 찾아간 것은 이런 영국의 쿠바 점유 시도를 막으려 함이었다.
애덤스는 성마른 신출내기 상원의원에 시큰둥했다. 그것은 그의 사정이었다. 물론 애덤스도 드울프처럼 쿠바를 남의 손아귀에 넘기고 싶지 않았다. 쿠바를 노리는 영국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같은 이제 막 독립한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도 카리브의 황금알인 쿠바를 삼키려 하고 있다고 보았다. 실제 그 무렵에 멕시코가 쿠바를 스페인에서 해방하고 멕시코에 병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멕시코 정치가들은 지리적으로 볼 때 쿠바섬은 멕시코의 부속 섬이라고 벌써 주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쿠바는 멕시코가 유럽으로 드나드는 선착장이자 출입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미국의 시선은 달랐다. 쿠바는 미국이 멕시코만으로 드나드는 출입문이었다. 또 콜럼버스가 침공한 이래 유럽 세력은 쿠바를 아메리카 대륙에 드나드는 자물쇠 구멍으로 간주하였다. 쿠바의 고통스러운 운명은 이런 지정학적인 구조 때문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와 운명이 닮은 꼴이다. 미국은 독립하자마자 곧바로 미국의 국경을 다시 그릴 구상을 했다. 이른바 아이디얼 맵이다. 토머스 제퍼슨의 아이디얼 맵에는 미국 국경선 안에 쿠바가 포함되었다. 1809년에 그는 남동쪽으로는 쿠바를, 북쪽으로는 캐나다 북쪽을 미국의 국경으로 삼는 아메리카 제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리오그란데와 쿠바를 잇는 남쪽에서 그린란드까지 아메리카 대륙 북반구 전체를 정복한 제국을 추구한다고 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의 건국이념으로 표방한 이념은 미국 제국주의였다. 그는 자유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 자유는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같은 다른 세력으로부터의 미국의 자유를 뜻했다. 미국에 지배당하는 나라의 자유는 그의 머릿속에는 없었다. 토머스 제퍼슨도 드울프처럼 노예 사업자였다. 그가 판매하는 노예수요처가 미국이었다는 점만 달랐다. 노예 무역상들은 언제나 누구나 쿠바를 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