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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케이크워크

#258 외로운 별

by 조이진

론스타

나르시소 로페즈Narciso López는 베네수엘라 출생의 스페인 육군 장군으로 라틴 아메리카 독립운동의 아버지 시몬 볼리바르가 이끄는 독립군을 진압하는 전투를 지휘했다. 전역한 다음 쿠바에서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했고 반스페인 노선의 당파에 들어갔다. 스페인이 그런 불순분자를 검거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1850년에 화기로 중무장한 필리버스터 의용군 600여 명을 데리고 쿠바를 침공했다. 무기는 미국 남부의 노예 농장주들과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마련했다. 쿠바에서 스페인을 축출하고 미국 정부에 병합시키는 것이 그와 워싱턴의 목표였다. 거사가 성공하면 그가 신생 쿠바주의 주지사가 되고 노예제를 유지하여 설탕 플랜테이션을 운영하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 그는 모두 세 차례 필리버스터링을 시도했다. 첫 번째는 출항도 못 했다. 두 번째부터는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출항했다. 마탄사스 옆 카르데나스에 상륙했다. 카르데나스는 미국인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미국인이 와있었다. 로페즈의 필리버스터들이 상륙했지만, 카르데나스에서 아무도 호응하지 않아 몇 시간 만에 플로리다 남쪽 섬 키웨스트로 도주했다. 몇 시간뿐이었어도 필리버스터가 가져온 깃발이 펄럭였다. 깃발은 쿠바인 필리버스터가 텍사스주 깃발인 론스타The Lone Star를 참고해 비슷하게 그린 것으로 푸른색과 흰색 바탕에 붉은 별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1492년 이래로 약 350년 만의 쿠바섬에서 스페인 국기가 아닌 다른 깃발이 처음으로 휘날린 몇 시간이었다. 비록 쿠바를 침략하려는 필리스버스터들이 들고 왔지만, 이 깃발은 쿠바 독립운동이 시작되던 1902년에 쿠바 국기로 채택되었고 오늘날까지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으로 도망한 로페즈는 포기하지 않고 435명을 이끌고 세 번째 쿠바에 잠입했다. 이번에는 이틀 동안 버텼다. 결국 스페인군에 체포되었다. 로페즈를 제외한 51명은 스페인 군인에 의해 처형되었고 나머지는 은광에 노역자로 보내졌다. 로페즈는 아바나로 이송되었다. 스페인은 종교재판 때 심문하던 방식으로 그를 의자에 묶어 고문했다. 그가 갈릴레이인 양 외쳤다. “나를 죽여도 쿠바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진실로 믿었듯 로페즈는 쿠바라는 사과는 반드시 미국 땅에 떨어진다고 확신했다. 그에게 그것은 중력이라는 자연법칙과 다름없었다.

텍사스주 깃발 론스타. 텍사스는 미국 연방에 편입되지 않고 독립공화국으로 남으려 했기에 하나의 별이 그려진 깃발을 공화국 기로 삼았다.

스페인이 로페즈를 고문해 죽였다는 소식이 뉴올리언스에 전해졌다. 흑인들이 먼저 흥분했다. 누군가가 군중을 자극하고 대규모 폭동을 선동했다. 스페인 사람이 소유한 건물을 약탈하고 스페인어로 발행하는 신문사에 불을 질렀다. 미국 여러 도시에서 연달아 데모가 일어났고 맨해튼에서는 8천여 명이 군집해 스페인을 규탄했다. 흑인들이 방화와 파괴를 거듭할수록 로페즈가 백인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로페즈의 필리버스터링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쿠바 침공 사건은 미국의 필리버스터들에게 아메리칸드림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고 라틴 아메리카 여러 곳을 침공하도록 자극했다. 이때는 1850년 무렵으로 미국인 필리버스터들이 멕시코 북부지역을 차지하고 소노라 공화국, 로어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선포한 적이 있었다. 필리버스터들은 또 니카라과, 과테말라, 온두라스 같은 멕시코 남쪽 지역을 집중하여 공략했다. 모두 쿠바와 비슷한 기후로 설탕 플랜테이션 농업이 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을 각별하게 탐냈다. 필리버스터 윌리엄 워커는 니카라과 침공에 성공하여 10개월간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쫓겨난 후 온두라스에서 처형되었다.

istockphoto-452465017-612x612.jpg 쿠바 국기. 쿠바를 침공한 미국 필리부스터들이 들고 온 깃발과 비슷하다. 미국인 해적들은 텍사스 론스타 깃발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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