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필리버스터
필리버스터
포크 대통령이 아바나 오페라 컴퍼니의 갈라 공연을 즐기고 있을 때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의 최종 문안이 합의되었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멕시코 전쟁을 종결지었다. 전쟁에서 이긴 미국이 현재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전체 그리고 뉴멕시코 절반, 콜로라도와 와이오밍 일부를 멕시코에서 빼앗아 병합한다는 데 합의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에 서명하는 날. 포크는 1억 달러에 쿠바를 팔라고 스페인에 제안했다. 1억 달러는 몇 해 전에 하바나 클럽이 대겠다고 포크에게 제안한 금액이기도 했다. 스페인이 거절했다. 미국으로서는 쿠바를 전쟁이라는 방법으로 삼키기는 어려웠다. 쿠바에 30만 명 가까운 스페인 군인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전체 군인을 다 모아도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게다가 미국은 아직 해군이라는 조직도 없었다. 30만 명 군인이 무겁게 누르고 있는 쿠바는 안정적인 상태였다. 멕시코 땅을 손에 넣으니 미국의 영토가 태평양에 닿았다. 더 나아갈 서부가 없어진 미국의 눈이 남쪽을 향했다. 악어를 닮은 섬 쿠바. 미국 제국주의가 쿠바라는 악어를 요리할 솥을 건 가마에 장작을 넣기 시작했다. 미국의 쿠바 침공은 시작되었다.
미국의 역사는 400년 전 콜럼버스가 카리브에 상륙한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 이들이 뉴올리언스에서 출항했다. 가까운 중남미에 불법적으로 무장 침입하여 식민지를 선언하고 플랜테이션을 운영해 돈을 벌려는 미국 남부인들이었다. 콜럼버스의 방식이었다. 미국은 미국식 해적들을 필리버스터라고 불렀다. 자기들이 보아도 미국의 방식이 해적의 약탈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미국 필리버스터들은 중남미에 들어가 무장 소요를 일으키고 나서 점유한 땅을 자기들의 식민지라 선언했다. 분쟁 지역으로 선포한 뒤 이곳을 새로운 연방으로 삼아달라고 워싱턴에 요청하면 명분은 충족되었고 연방정부가 승인하고 무장 분쟁 지역을 합법적인 미국 땅으로 선포하면 준비 단계는 끝났다. 이제 소요가 발생한 미국 영토에 미국 군인들을 상륙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필리버스터들과 미국 연방정부의 구상이었다. 그 땅이 미국 땅임을 상호 인정하는 종전 협정을 맺고 나면 미국의 영토 확장은 마무리되었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 그것이다. 미국은 멕시코 땅을 그렇게 빼앗았고 멕시코 방식은 미국이 식민지를 확장하는 표준 프로세스가 되었다. 미국 영토로 합병했으면 마지막 단계는 돈을 벌 차례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실어와 플랜테이션을 운영했다. 20세기가 가까워질 때 미국은 400년 전 콜럼버스와 똑같은 생각, 똑같은 방법으로 스페인이 했던 일을 꿈꾸었다. 로툰다의 <콜럼버스의 상륙>과 차이가 있다면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다. 중남미를 식민지화하겠다는 미국의 창은 강했다. 뉴올리언스의 콜럼버스 같은 사람들이 그 창에 꽂힌 날카롭고 뾰족한 강철이었다. 20세기에 CIA가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반미 정권을 쓰러뜨리고 친미 정권을 세웠다. 그때 반복적으로 쓴 공작수법이 필리버스터링이었다. CIA가 공작을 시작하기 100년 전 포크 대통령이 필리버스터를 활용했다. 필리버스터링은 미국 의회보다 먼저 카리브의 악어 사냥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