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티아고

2. 산티아고

#023. 산티아고

by 조이진

산티아고

피를 흘려야 할 군인들에게 수호성인이 필요했던 차에 펠라요와 테오도미로 주교에게는 좋은 이야기감을 묻은 덤이었다. 하늘에서 별 떨어지듯 떨어진 스토리는 별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떨어졌다. '받아들여진' 진실, 그것이 진실이다. 기독교도들은 흥분했고 갈리시아 왕은 야고보의 것이라고 '받아들여진' 그 유골을 자기 거점으로 옮겼다. 나바라 왕 알폰소가 그 묘지 위에 기독교 예배당을 처음 올렸다. 그는 남쪽의 이슬람을 막아내서 북쪽의 기독교를 지켜내고 있는 이베리아 북부 산악지대를 통합한 바스크 왕이었다. 그가 처음 예배당을 지었을 때는 유골이 발견되었을 때 무덤처럼 돌과 진흙을 물에 개 건물을 지었다. 기독교 나바라 왕국이 강성해지고, 또 왕이 새로 바뀔 때마다 예배당은 여러 차례 증·개축되었다. 150년 동안 지었으니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섞였고, 16세기에는 바로크 양식까지 덧대졌다. 844년 우마야드 왕조의 이슬람 군대와 벌인 클라비호 전투에서 성 야고보가 갈리시아 군사 앞에 백마를 타고 나타나 이슬람군을 물리쳤다는 영웅 서사가 덧붙으면서 성 야고보는 이베리아 서북부에서 모슬렘의 침략에서 기독교 왕국의 영토를 지켜주는 수호성인 산티아고로 추앙되었다.


피레네산맥은 남쪽 사면이든 북쪽 사면이든 모두 바스크들이 장악한 산악 지대다. 그들은 같은 바스크 민족으로 비슷한 언어를 썼고 하나의 경제 공동체였다. 남녘에서 탄생한 바스크의 산티아고 성인은 곧바로 북녘 바스크의 성인도 되었다. 옥의 말을 쓰는 옥시타니아 상인들이 피레네를 오르내렸다. 본디 동에서 서로 돈이 흐르는 실크로드를 타고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이베리아까지 온 그들 바스크족들이 돈을 버는 일에 재능을 발휘했다. 피레네 위아래 지역에서 상업이 활발했다. 수호성인 산티아고는 상인들에게는 도적 떼를 막아주고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호성인이기도 했다. 대성당이 자꾸 커지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상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피레네를 넘어와 참배하기 시작했다. 프랑크 왕국 사람들뿐 아니라 멀리 게르만족까지도 피레네를 넘어 서쪽 끝 별이 떨어졌다는 그 들판을 찾아왔다. 산티아고를 유럽 전체의 기독교 세계를 지켜주는 성인으로 받아들인 그들이 걸었다. 프랑크 왕은 사람들에게 순례를 떠날 것을 명령했고 바스크 상인과 돈이 다녔던 길이 신앙을 다지는 순례길로 바뀌었다. 프랑스에서 피레네산맥 북녘 아래턱까지 이르는 여러 갈래 길을 카미노 프랑세스 Camino Francés라 한다. 카미노 프랑세스는 산맥을 넘으면서 하나의 길로 모였다. 별이 떨어진 들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있다고 받아들여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길 카미노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순례길이 되었다. 멀리서 순례 온 자들은 돌아가는 고행을 택하지 않고 머무른 자들이 많았다. 이베리아는 상업이 발달하고 따뜻한 곳이니 떠나온 곳보다 살기가 나았다. 돈이 섞이고 피도 섞였다. 산티아고 가는 카미노는 중세와 근대에 이베리아의 문물을 피레네 너머 유럽 세계로 올려보네 주는 동맥이 되었다. 지중해, 서남아시아, 페르시아, 북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 문명이 남문을 열고 들어와 이베리아라는 심장에서 에너지로 응축되어 목동맥을 타고 유럽이라는 뇌로 들어갔다. 카미노를 따라 로마네스크 예술과 건축이 유럽으로 드나들었고 북문으로 고딕과 르네상스가 흘렀고, 바로크 예술도 그렇게 탄생했다.

640px-Juan_Carreño_de_Miranda_-_St_James_the_Great_in_the_Battle_of_Clavijo_-_WGA04486.jpg 후안 카레뇨 데 미란다의 <클라비호 전투의 성 야고보 대왕>(1660)

이베리아의 서쪽 끝 갈리시아에서 산티아고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 모슬렘을 물리쳤다는 클라비호 전투의 승리가 로마의 교황을 자극했다. 땅의 넓이는 신앙의 넓이와 비례했으므로 또 하나의 세속왕 교황은 모슬렘에 빼앗긴 땅을 되찾고 싶었고 이슬람 세력을 격퇴하고 유럽을 통일한 프랑크는 이베리아의 이슬람 세력을 공격할만한 힘도 있었고 땅과 돈을 갖고 싶어 하는 기사들도 많았다. 돈이라는 또 하나의 신이 세속과 신앙을 하나로 묶었다. 이베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슬렘과의 영토 전쟁을 보면서 교황은 십자군 전쟁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교황은 프랑크 왕에게 이베리아 북쪽에서 바스크가 모슬렘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고, 프랑크 왕은 예수의 이름을 내걸고 군사를 피레네산맥 너머로 파병했다. 전쟁이야 인간사에서 늘 있었던 일이었지만 이번 전쟁의 양상은 달랐다. 교황이 신의 이름으로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인간의 탐욕 전쟁은 성전이 되었고, 신들을 위해 인간이 싸우는 대리전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신이 인간을 위해 싸우지 않고, 인간이 신을 위해 싸우는 청부 전쟁.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천년의 전쟁문이 열렸다. 신을 위하여 사람이 사람을 베고 죽이는 어두운 시대. 톨레랑스는 끝났다.

Ways_of_St._James_in_Europe.png 산티아고 순례길. 유럽 기독교인들의 순례길이 되었다.

+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를 부르는 스페인식 표기다. 그의 본디 이름은 야고보lacobus였고, 이베리아에서는 그 발음이 변하여 이야고Yago라 했는데, 여기에 산토Santo를 붙이니 산토이야고가 되었다. 그것이 산티아고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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