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에스파냐
성
이베리아의 중앙에 있는 카스티야는 산들로 둘러싸여 서늘한 고원지대였으므로 지형 자체가 높고 단단한 성이었다. 강성한 나바라가 이곳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빙하로 깎인 험준한 피레네 산악지대에 살던 이들이라 산으로 둘러싸인 카스티야 지역은 바스크족에게는 더없이 유리한 지형이었다. 여기서 바스크족이 전개하는 산악전을 더운 땅에서 온 모슬렘들이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이즈음은 이베리아의 중부와 남부를 지배한 우마야드 왕조가 쇠퇴하면서 20여 소왕국 타리파tarifa로 사분오열된 상황이었다. 칼과 창을 들고 순례하러 온 자들 가운데는 춥고 가난한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서 카스티야의 군인 된 자들이 많았다. 이베리아는 이때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유럽 여러 곳의 상인들이 카스티야로 몰려왔다. 군인이 상인이기도 했고, 또 상인이 군인이기도 했다. 칼을 든 군상이 이베리아에 가득했다. 싸워 이기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고, 빼앗을 수 있었으므로 땅을 얻으면 신분이 상승했다. 땅과 돈을 위해 싸우는 전통은 로마 때부터 익숙한 삶의 방식이었다. 카스티야의 주인은 피레네를 넘오와 돌아가지 않은 자들을 모슬렘을 베는 칼과 창으로 썼다. 신을 위해 싸우는 전투에서 이들의 창과 칼을 돈이라는 뜨거운 불이 벼렸다. 그래서 더 잔혹했다. 이베리아에서 모슬렘과의 영토 전쟁은 500년 동안 이어졌다. 1492년 마지막 남은 모슬렘 왕이 알람브라 궁전을 뒤로하고 이베리아를 떠났다. 전쟁은 끝났다. 죽여서 돈을 벌었던 그들이 돈벌이를 잃었다. 이들이 거리를 쏘다니면 이베리아는 금세 무법천지가 될 것이었다. 그해 여왕은 콜럼버스에게 투자했다. 상인이기도 하고 군인이기도 한 자들이 황금이라는 또 다른 신을 찾아 1492년 콜럼버스의 배에 올라탔다. 처음 알게 된 땅이었으므로 신세계Nuevo Mundo라고 했다. 애초부터 돈을 좇아 배에 올라탄 자들이니 이들에게 신세계는 황금의 땅이었다. 그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사람은 살지 않고 황금만 살고 있었다.
에스파냐
이베리아 역사에서 콤포스텔라는 대성당으로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 수호성인 산티아고는 대성당을 만들기도 했지만, 기독교를 지켜준 영웅도 낳았다. 알폰소 6세. 팜플로나의 나바라코아 이러스마 왕 안초 3세 가르체스의 아들인 페르난도 1세의 아들이므로 알폰소 6세도 바스크다. 안초 3세가 죽으면서 이베리아 중북부 지역 영토를 나바라, 카스티야, 레온, 갈리시아로 나누어 형제들에게 상속했다. 그중 페르난도 1세가 카스티야 왕국을 세우고 부르고스에 도읍을 두고 레온 왕국의 여왕과 혼인했고 그 아들인 알폰소 6세가 레온을 상속받았다. 페르난도 1세가 죽을 때 카스티야는 산초 2세가 상속받았고, 세 왕국을 다시 통일했다. 이 과정에서 싸움에 진 알폰소 6세가 도망쳐 모슬렘 타이파에게 의탁했는데, 이 타이파가 모슬렘을 위협하는 산초 2세를 제거하기 위해 기독교인 귀족을 꾀어 산초 2세를 암살했다. 마침 산초 2세의 암살을 목격한 한 사내가 암살자를 그 자리에서 죽였다. 거사는 성공했고 알폰소 6세가 그 세 왕국을 모두 차지했다. 모슬렘의 후원을 업어 왕국을 다시 얻은 셈이다. 나바라는 바스크 민족의 연방 모국이었으므로 거기까지는 공격하지 못했다. 스페인 역사는 그를 다시 스페인 중북부 지역을 통일한 왕으로 기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과 모슬렘들은 서로 같은 편이기도 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도 연횡도 하는 정치적 파트너였다. 영토를 위해 기독교인끼리 전쟁하는 때도 흔했고, 모슬렘들끼리도 전쟁했다. 그러므로 종교보다는 정치적 갈등, 영토 갈등의 성격이 더 짙은 사회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모슬렘 타이파를 이용해 기독교도를 죽이고 왕이 된 알폰소 6세를 가리켜 엘 브라보El Bravo라 칭송했다. 1085년 엘 브라보는 마침내 무어인들의 수도인 톨레도를 점령했다. 톨레도는 기독교를 믿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도시다. 2세기 때 로마가 툴레툼이라는 이름으로 세운 식민지 거점이었고, 6세기부터는 고트 왕조 때 수도였기 때문이다. 그런 톨레도는 이베리아에서 로마와 기독교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톨레도를 되찾은 알폰소 6세는 스페인에서 다시 기독교 왕국을 일으켜 세운 왕으로 상징되었다. 엘 브라보는 스스로 히스파니아Hispania 황제라 칭했다. 히스파니아는 과거 로마가 이베리아를 가리켜 부르는 명칭이었다. 로마 시대를 계승한다는 뜻이다. 히스파니아라는 이름은 로마가 기독교로 통일한 땅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엘 브라보가 히스파니아 황제라고 부른 데는 자신이 이슬람을 축출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톨레도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런 톨레도는 모슬렘이 지배한 12세기까지는 톨레랑스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로마를 계승한 히스파니아의 황제 알폰소 6세는 모스크 사원과 유대인 예배당을 기독교 성당으로 개조했다. 세상의 어디에도 없던 것들을 부숴 세상에 흔한 것으로 덧붙였다. 산티아고를 수호성인으로 믿는 이들이 톨레랑스에 마침표를 찍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디아스 플라하는 “스페인은 유럽이 되기로 선택했다”라고 했다. 이 말은 스페인이 본래 유럽에 속한 땅이어서 유럽의 일원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 유럽에 속하겠다고 선택하여 유럽이 되었다는 말이다. 스페인은 북쪽에서 바스크, 켈트, 반달, 고트 등이 내려왔고, 남으로는 페니키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북아프리카, 이슬람이 들어왔다. 모든 물감이 뒤섞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폭도 용광로가 될 수도 있었다. 유럽도 될 수 있었고, 아프리카도 될 수 있었다. 종교로도 이슬람 지배가 800년, 기독교 지배가 600년이었다. 스페인이 모슬렘 국가로 발전했어도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었다. 여러 종교가 섞인 국가로 남았어도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스페인은 모슬렘의 800년 역사를 반기독교의 역사로 본다. 그래서 스페인 문학사는 아랍어로 쓰인 찬란한 작품들을 자신들의 역사로 포함해 다루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슬렘의 것이요 이단의 것이요 종교재판에 넘겨진 악마들의 영혼일 뿐이었다. 레콘키스타 뒤 그들은 4천여 권의 코란을 광장에 모아 열광하는 군중들 앞에서 불태웠다. 코르도바 '지혜의 집'에 있는 40여만 권의 아랍어로 된 오랜 지혜들을 불태웠다. 스페인이 서양이 되기로 한 첫 번째 '선택'은 알폰소 6세 때 이루어졌다. 그 선택과 결심으로 히스파니아를 나라 이름으로 했다. 이베리아 최초의 주인 이바르의 후손인 바스크들이 이베리아의 운명을 결심했다. 에스파냐가 되기로 선택한 뒤로 이슬람교도 무어인들의 땅 반도 남쪽 일부로 좁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