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 아우로라
아우로라
1860년대에 쿠바는 미국이 아직 쿠바를 병합하지 않았지만, 미국 북부의 공업 기술이 쿠바섬을 잠식하고 있었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도 이미 하나로 묶였으므로 쿠바는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보다 가장 빨리 근대화된 모습을 갖추었다. 1830년대부터 철도가 부설되었고, 1850년대에 아바나는 키웨스트를 거쳐 뉴욕까지 전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1880년대에는 전화가 개통되었다. 에디슨이 1882년에 뉴욕타임스 빌딩에 최초로 전력을 공급한 지 10년도 채 안 된 1890년에는 아바나에서도 성냥과 양초 없이 불 밝힐 수 있었다. 그때 아바나는 스페인보다 현대적인 기반 시설을 갖춘 도시였다. 아바나 항을 떠난 증기선은 대서양 너머 스페인보다 뉴욕에 훨씬 일찍 도착했다. 수만 명의 쿠바 사람들이 이미 미국에 거주했고 미국 시민이 된 그들은 이때부터 쿠바섬의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했다. 미국인들도 사업차 또는 헤밍웨이처럼 쿠바에 이주하기도 했다. 미국이 발명하고 미국을 상징하는 야구단이 1868년대에 쿠바에서도 처음 만들어졌다. 경기 이름도 스페인어가 아닌 미국에서 부르는 말 그대로 ‘베이스볼beisbol’이라고 불렀다. 미국에 내셔널 리그가 조직된 지 2년 만의 쿠바에서도 프로야구단이 만들어졌고 쿠바 리그도 조직되었다. 1862년에 바스크인 바카르디가 작은 양조장을 인수했다. 그가 사탕수수 조청을 증류해 럼을 만드는 방법을 처음 개발했고 바카르디 럼은 부드럽고 가벼운 맛으로 세계시장에 널리 보급되었다. 쿠바에는 깊은 숲에 동굴이 많아 밤에 박쥐가 많이 날아다녔다. 바카르디는 박쥐를 럼을 상징하는 로고로 채택했다. 문맹자가 많은 쿠바 대중에게 박쥐는 식별하기 쉬운 상표가 되었다. 박쥐 로고가 붙은 바카르디 럼은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쿠바가 생산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에 수출한 최초의 상품이었다. 바카르디의 박쥐는 고급 럼의 상징이 되며 쿠바 최초의 국제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쿠바인들은 스페인의 투우 경기보다는 야구 경기를 좋아했다. 아직 쿠바라는 나라는 없었지만, 쿠바 사람들은 그렇게 스페인을 벗어나 쿠바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금은 스페인이 거둬갔고, 쿠바의 경제가 활발해질수록 세율은 높아졌다. 노예들이 벌어주는 막대한 돈으로 스페인에는 고급 주택이 늘어났다. 그때 쿠바에는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독립을 주창하는 사람도, 미국에 병합하자고 하는 사람도,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사람도, 노예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여기에 또 하나, 스페인 이민자들 속에 섞여 유럽에서 새로운 사조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나키즘과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시가 마는 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첫 노동자 신문 <새벽La Aurora>(1865)를 발간했다. 쿠바에 새 새벽의 빛이 불그스레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