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브레

13. 리브레

#279 씨보네

by 조이진

씨보네

독립 열기 가득 찬 19세기말 쿠바는 정치적으로는 아직 스페인의 식민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독립적인 정체성을 만들고 있었다. 19세기에 유럽을 뒤덮은 나폴리 노래와 이탈리아의 장르인 오페라 아리아는 스페인 음악도 지배했고, 이탈리아 음악을 모방한 스페인식 칸시온canción이 유행했을 만큼 스페인은 크리에이티브라는 광채를 잃은 채 메마른 고목이 되었다. 프로듀서 판초 마르티의 활약한 이 혼란한 시기의 쿠바 음악계도 나폴리 칸초네, 오페라 아리아 같은 이탈리아 장르가 크게 유행해서 아바나 타콘 대극장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탈리아 아리아를 공연하는 전용 극장과 다름없었다. 쿠바 독립의 열기가 더워지면서 쿠바 부르주아들은 이탈리아의 아리아 음악 칸초네를 기틀 삼아 낭만적인 시어를 노래하는 쿠바 칸시온을 자기들의 음악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었다. 쿠바적인 개성이 가미된 쿠바 칸시온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음악과 분명히 차이가 나는 음악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음악의 쿠바화가 시도된 곳은 독립운동이 가장 먼저 활발하게 시작된 동부 쿠바 바야모 지역에서부터였다. 여기서도 이탈리아 음악이 대세였고, 이 지역은 또 아이티 혁명을 피해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프랑스 출신들이 정착한 곳이라 프랑스 음악francesa의 맛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지역적, 정치적 특징에서 서부 쿠바와는 음악적 토양이 달랐다. 낭만적인 선율에 조국애를 표현한 여성적이며 감성적인 노랫말은 10년 전쟁에서 공감의 힘을 발휘했다.

쿠바인들이 애국심과 자부심을 담아 부르는 노래 <바야모의 여인>은 오늘날 쿠바의 애국가로 불린다.

1851년 <바야모의 여인La Bayamesa>라는 살롱풍의 시어와 오리엔테의 애국주의가 결합한 노래가 태어났다. 이 곡은 프랑스혁명을 이끈 <마르세이유의 노래La Marseillaise>를 모델 삼아 만들어졌지만, 전형적인 유럽풍의 음악과는 그 스타일이 달랐다. 평론가들은 이 곡을 ‘식민지 시대의 정점에서 식민 본국과 분명히 대비되는 쿠바다움을 보여주는’ 곡이라고 평가한다. 바야모의 아름다운 자연과 바야모 여인의 부드러운 심성을 이탈리아 아리아풍의 멜로디 라인에 실어 부르는 이 노래가 애국적이고 정치적인 의식을 고양하는 노래로 받아들여졌다. 세스페데스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노래를 작사 작곡했기 때문이다. 본래 이 곡의 가사는 은유적이고 낭만적이었으나 독립운동가들은 정치적 지향이 분명한 내용으로 가사를 다시 썼다. 그동안에 쿠바 민족의식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시 속의 아름답고 인정 많은 바야모 여인은 쿠바의 모든 여인이자 스페인 지배에 저항하는 모든 쿠바인 그리고 독립할 공화국의 정체성을 상징했다. <바야모의 여인>이 쿠바에 시보네이즘siboneismo이라 불리는 낭만적인 문학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시보네이즘은 스페인과 콜럼버스가 쿠바를 침공하기 전 쿠바섬에 수천 년 동안 살아왔던 다이노 사회를 쿠바의 태초의 상태이자 고유한 문화의 뿌리로 삼고 이상사회로 그리워하며 또 콜럼버스가 침공하기 전 파괴되지 않았던 섬의 아름다웠던 자연을 자랑스러워하자는 문학 사조로 ‘쿠바다움’을 드러내는 민족주의 문학예술운동의 흐름이었다. 콜럼버스가 쿠바를 침공한 뒤 백인, 크리오요, 물라토, 흑인이 쿠바섬에 들어왔다. 콜럼버스와 여러 인종이 쿠바에 식민되기 훨씬 전부터 쿠바 섬에는 다이노가 주인으로 살았음을 다시 주목하고 쿠바의 본래 문화는 다이노 조상의 생활과 문화와 생각에서 비롯했음을 강조했다. 쿠바 지식인들은 쿠바의 여러 인종 사이 갈등과 격차를 시보네이즘으로 뛰어넘고자 했고, 이것이 쿠바 민족주의의 바탕을 형성하는 개념이 되었다.

siboney-.jpg 시보네이 시가 브랜드 상표. 쿠바인들은 콜럼버스와 유럽의 기독교 식민주의가 쿠바를 침략하기 전의 다이노 사회를 이상사회로 여겨 시보네 공동체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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