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브레

13. 리브레

#285 메인

by 조이진

메인

55bf0cf3-3a4b-457a-921e-c415fa7e1251.jpg 메인호 폭발. 이 배는 미국이 스스로 폭파한 것으로 밝혀졌다.

  1898년 2월 15일 밤. 메인호가 폭발했다. 미국의 신문들은 “스페인이 미국의 함선을 폭파했다…. 260명 미 해군 선원 전원 상어 밥 되다”라는 머리기사에 폭발 장면을 그린 삽화로 1면 전체를 편집했다. 신문들은 조작된 증거를 기사로 마음껏 찍어냈고 메인호의 폭발음이 아직 공중에 흩어지기도 않았지만, 미국인들은 스페인에 전쟁을 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신문은 날마다 강제수용소의 비참한 사진을 게재하고 폭발 소식을 다루며 분노를 부추겼다. 메인호가 모로 요새와 푼타 요새 사이 아바나 앞바닷속으로 침몰하자 전쟁을 선언하라는 미국인들의 요구가 함포 소리처럼 뉴욕의 하늘을 덮었다. 미국 정부는 스페인이 폭탄을 설치해 폭발한 사건으로 빠르게 단정했고, 이에 맞춰 신문 파는 소년들은 미국이 스페인에 선전포고했다는 기사를 실은 호외 수만 부를 뉴욕의 길거리에 뿌렸다. 호세 마르티가 그토록 걱정했던 말을 소년들이 똑같이 외쳤다. “상원이 전쟁을 승인할 것”,“단 며칠 만에 스페인 전쟁은 끝”, “지옥에나 가야 할 스페인이 미국을 공격”, “이제 전쟁 시작”, “미국은 메인호를 기억하라. 스페인을 침몰하라"라는 선동 구호가 매일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신문을 팔아주는 헤드 라인이 좋은 헤드 라인’이라는 생각을 가진 퓰리처 같은 신문업자들이 사실은 없고 선동으로 가득한 호도와 구호와 과장으로 지면을 가득 채웠다. 때마침 선전 선동에 아주 적합한 미디어를 과학이 탄생시켰다. 최신 뉴미디어인 시네마토그라프 장치는 마침 일어난 메인호 폭파사건을 녹화해 빠르게 확산하였다. 전쟁이라는 선정적인 주제와 결합한 자극적인 활동 영상이 대중을 흥분시켰다.

illustration-0215-2017-sinking-of-the-maine.png 미국의 신문들은 선정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퓰리처가 가장 앞장서 전쟁을 선동했다.

퓰리처의 종이 매체와 세상에 처음 선보인 활동 영상 매체는 미국이 쿠바에 즉시 파병해야 한다는 명분을 빠르게 증폭시켰다. 미국 자본이 가장 원했던 여론이었다. 메인호가 가라앉은 지 한 달 뒤 매킨리 대통령은 전쟁하지 않고 쿠바를 매입하겠다고 스페인에 제안했다. 스페인으로서는 쿠바 해방군을 상대로도 이길 수 없는 전세였고 또 미국이 전쟁에 개입했을 때 미국에 이길 수 없음은 더욱 자명했다. 스페인으로서는 미국에 쿠바를 파는 것이 전쟁에서 패하지 않고 명예를 지키면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기도 했지만, 아직 쿠바를 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이 중재하던 평화협정 안에 스페인은 동의했지만, 쿠바 해방군은 그렇지 않았다. 쿠바 해방군의 입장은 “지금 정전협정을 하자는 주장은 스페인에는 가장 유리하되 쿠바에는 가장 불리한 제안일 뿐”이라고 했다. 미국 주도로 정전협정을 체결하게 된다면 이제 미국이 나서서 해방군을 무장 해제하고 해체할 뿐 아니라 쿠바를 분열에 빠트릴 것인데 임박한 독립을 달성하지 않고 무장 해제할 이유가 없었다. 해방군 지도자 막시모 고메스는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모든 화력을 다해서 전쟁을 지속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중재는 실패했고, 의회는 매킨리 행정부가 쿠바에 개입해 전쟁을 마무리하라고 압박했다. 쿠바가 스스로 스페인을 축출하고 독립을 달성해 버릴 순간이 거의 임박했다는 것을 매킨리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많은 미국의 자본이 쿠바에 투자되어 있었다. 미국은 쿠바의 혁명을 지켜볼 수 없었다. 미국을 행동하게 한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영국이 아시아를 지배하는 거점으로 홍콩을 가졌듯이 지금은 미국이 스페인 식민지 필리핀을 빼앗아 마닐라를 미국의 홍콩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국은 쿠바의 독립 완수를 돕기 위해 스페인과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쿠바인들에게 설명했다. 마침내 의회는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전쟁을 승인했고 스페인에 선전포고했다. 결의안은 ‘미국은 전쟁이 끝나고 쿠바에 평화가 정착되면 철군하고 통치권을 쿠바섬사람들에게 되돌려준다’라고 명시했으나 ‘평화가 정착되는 시기’는 미국의 견해대로 결정될 것이었다. 쿠바를 병합하지는 않는다는 조건은 미국에서 설탕을 생산하는 유권자를 둔 지역 출신 의원의 입김 때문이었다. 쿠바가 미국 일부가 되면 쿠바에서 가져오는 설탕에 관세가 없어질 것이고 이는 미국 내 설탕 생산 업자들로서는 달갑지 않을 일이었다. 전쟁은 개시되었다(1898). 미국이 쿠바의 주권을 차지하겠다고는 하지 않았고, 평화가 정착되면 오직 쿠바인들에게만 통치를 이양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미국 의회 법안은 쿠바 지도자들을 일면 안도할 수 있게 했다.

guantanamo-base-1898-granger.jpg 스페인 국기가 내려가고 쿠바 국기 대신 미국 국기가 게양되었다. 쿠바 해방군도 진입하지 못했고, 평화협정에도 쿠바 대표는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125,000여 명의 미군들이 관타나모 해안에 상륙했다. 90명의 종군기자도 함께 행군했다. 동영상 카메라가 전쟁을 촬영했다. 미군 전사자는 322명뿐이었다. 쿠바 해방군의 협조를 받아 적은 피해로 쿠바에서 빨리 승부를 가릴 수 있었다. 4개월 만에 스페인은 항복했다. 미국 군대가 스페인 군대를 항복시키고 산티아고 데 쿠바 시에 진주했을 때 쿠바 해방군은 산티아고에 진입할 수 없게 제지당했다. 스페인의 국기가 내려가고 그 자리에 올라간 국기는 쿠바 국기가 아닌 미국의 국기였다. 공식 문서에서도 쿠바공화국이라는 표기와 휘장은 사용되지 못했다. 2주 뒤 미군은 스페인 대표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쿠바인은 누구도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심지어 통역으로도 참여하지 못했다. 미국이 쿠바에서 무슨 계획을 하고 있는지 쿠바 지도자들은 알 수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계속되었다. 미군정은 패전한 스페인 관료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가졌던 지위를 계속 유지하게 해 주었다.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이 무기를 내려놓아야 마땅했지만 정작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는 쪽은 승리한 쿠바 해방군들이었다. 쿠바 해방군들은 아바나와 산티아고에서 축하 행사를 열지도 못했고 심지어 회합하는 것마저도 금지되었다. 그들은 조용히 개별적으로 엘 코브레의 카리다드 예배당까지 순례하여 카리다드에게 승리의 소식을 알리고 불투명한 쿠바의 미래에 축복을 기도하는 것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쿠바의 지도자들은 혼란스러웠고 공화국의 미래는 음울한 전망으로 기울었다. 시간이 갈수록 결국 미국이 쿠바의 운명을 결정하리라는 것만 확실해졌다. 쿠바 지도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쿠바인 경비대가 치안을 유지해 평온하고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충분히 잘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쿠바가 자유를 찾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점을 언론매체를 통해 홍보하는 일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도할 언론도 미국의 언론사였다. 어느 쿠바 지도자는 이때의 소회를 이렇게 비유했다. “워싱턴의 지휘 아래 영국과 싸워 뉴욕을 빼앗은 미국의 독립군 지도자들이 뉴욕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프랑스가 프랑스의 국기를 게양하고 영국과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 미국의 깃발은 꺼내 보지도 못하게 하며 미국 대표를 들여보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쿠바의 한 지도자는 미군정 사령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당신들이 진행한 평화협정의 조건이나 스페인의 항복 조건 등에 대해 단 한마디도 통보받지 못했다. 승리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 들었다. 그 모든 것을 신문을 통해서야 알았다. 나는 물론 내 휘하의 그 누구도 그런 역사적인 협정에 초대한다는 한마디 말을 들지 못했다. 당신들이 우리를 산티아고 시내에 진입 못 하게 했던 이유가 우리가 스페인인들을 야만적으로 학살하고 보복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우리는 항복한 군인을 죽이지 않는다는 규칙도 모르는 야만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해진 옷을 입고 싸웠다. 너희 조상들이 너희의 독립을 위해 싸웠을 때도 그렇게 가난하고 해진 옷을 입고 싸웠었다. 너희가 그렇게 싸워 이긴 너희 조상들을 존경하듯 우리는 우리의 대의를 숭고하게 여긴다.” 미군정이 이 편지에 답장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남북 전쟁은 미국을 분열한 전쟁이었지만, 40년 만에 다시 치른 쿠바 전쟁은 미국을 하나의 합중국으로 통합했다. 북부 출신이든 남부 출신이든 지금 그들의 적은 남북이 아니라 오랜 전제주의 유럽 세력 스페인이었다. 이 전쟁으로 미국은 유럽 세력을 대서양 너머로 쫓아버렸다. 이 전쟁에서 제국주의 팽창을 자극하는 미국 신문의 힘도 확인되었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 언론은 미국이 ‘세계인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시작한다는 숭고한 ‘가치’를 주조해 냈다. 그 첫 번째 시험장이 쿠바였다. 메인호가 침몰하고 1년 뒤 미국과 스페인 양국 조사단은 침몰의 원인을 발표했다. 폭발은 석탄을 태워 증기 만드는 곳에서 일어났고, 바로 옆에 쌓인 석탄에 불이 옮겨 붙어 배가 폭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증기기관을 제조하는 기술력의 미숙함이 폭발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1년은 너무 길었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1년 안에 모두 다 일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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