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브레

13. 리브레

#286 파리조약

by 조이진

파리조약

  스페인은 필리핀에서 미국과 일전을 벌이겠다며 함대를 파견하려 했으나 미국이 스페인 본토를 공격하는 계획이 알려지자 곧장 항복했다. 그해 겨울 파리에서 미국과 스페인의 대표가 종전 조약을 체결했다. 미국이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쿠바를 통치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로써 콜럼버스의 침공 이후 400년 스페인 식민지 시대는 종식되었고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은 완전히 축출되었다. 오랜 가톨릭 수호국임을 자부해 온 스페인이었지만, 신교도의 신생국에 패전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아바나 모로 성에 미국 국기가 게양되고 있다. 이날 미국은 '다시는 이 깃발이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번에도 미국은 쿠바 대표의 참석을 거부했다. 다른 섬의 대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약은 그해 말에 스페인의 통치가 종료된다고 했다. 1899년 1월 1일 정오에 아메리카의 황금열쇠로 불렸던 아바나만 모로 요새에서 스페인 국기가 내려가고 그 자리에 45개의 별이 그려진 미국 국기가 올라갔다. 아바나의 모로 요새는 400년 동안 아바나와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의 지위를 지켜온 곳이다. 1762년 이 성에서 영국 국기가 올라간 뒤로 두 번째로 스페인이 아닌 나라의 국기가 올라갔다. 이 의식에서 축사한 미국 상원의원은 “이 깃발은 이제 다시는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이 행사에 쿠바 국기는 올라가지 못했고 쿠바 해방군도 참석하지 못했다. 공식 권력 이양 행사가 치러진 시간 동안 쿠바 해방군 출신들은 아바나시 바깥에서 미군에 의해 격리되었다. 막시모 고메스만이 초청받았지만, 참석을 거부했다. “우리의 깃발은 쿠바 국기다. 수많은 쿠바인의 눈물과 피가 젖은 쿠바 국기만이 우리의 국기다.”

  

  쿠바는 3차 독립 전쟁에서 스페인을 패배시켰다. 그러나 덩치 큰 이웃집 누군가가 막판에 끼어들어 그들의 승리와 독립을 훔쳐 가버렸다. 승리한 자가 다시 패배자가 되었다. 이 전쟁은 미국의 개입으로 갑작스레 모든 것이 뒤바뀌어버린 전쟁이 되었다. 미군정은 해방군을 지휘했던 흑인 지도자들을 최하 보병계급으로 강등했다. 이 하나만으로 세 번째 쿠바 독립 전쟁의 결과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파리 종전 협정에 사용된 조약의 정식 명칭은 스페인-아메리카 전쟁Spain-American War이었다. 3차 쿠바 독립 전쟁이 미국-스페인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전쟁의 명칭에 쿠바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전쟁 명칭이 미국의 공식 입장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쿠바 해방군의 역할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상대도 해주도 않았다. 파리조약으로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 괌을 식민지로 삼는 것을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았다. 쿠바만은 텔러 수정안으로 식민지로 합병하지 않았다. 쿠바는 다이노 가시관 해태이를 시작으로 400년간 스페인에 굴종하지 않고 제국주의에 투쟁해 왔다. 406년의 긴 독립 전쟁이 마침내 결실을 맺으려 할 때 갑자기 끼어든 미국이 승리를 낚아채 간 다음 미국의 전쟁으로 둔갑시켰다. 정전 평화협정에 서명 당사국의 이름이 없는 것은 곧 주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호세 마르티가 그토록 걱정했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세오 장군 사망 후 쿠바 독립 전쟁을 이끈 막시모 고메스 장군. 그는 해방 후 아무런 직책을 갖지 못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3. 리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