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레콘키스타
레콘키스타
레콘키스타La Reconquista는 재정복, 영토 탈환이라는 뜻이다. 모슬렘에 빼앗긴 땅을 기독교인들이 다시 정복한 일을 말한다. 레콘키스타 기간은 718년부터 1492년까지 800년 가까운 세월이다. 피레네에서도 가장 높은 피코 데 에우로파 코바동가에서 벌어진 718년과 722년 두 번의 전투에서 기독교 세력이 처음으로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이긴 것을 레콘키스타의 시작으로 삼는다. 80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조금씩 이슬람 세력을 밀어내면서 영토를 넓힌 기독교 세력이 아름다운 성 알람브라가 있는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최후의 모슬렘 타이파를 이베리아에서 축출했을 때 레콘키스타는 마무리되었다. 엘 시드는 이 시대를 상징하는 종교 전쟁의 영웅이었고, 스페인 마초주의machismo 문학의 최고 캐릭터였다. 사람들은 영웅을 노래하고 싶어 했고 과장과 허세가 없으면 영웅담이 아니다. 듣는 이들의 감정을 휘저을 수 없으면 스토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산물이 <시드의 노래>다.
20세기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셋José Ortega y Gasset조차 이것을 재정복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조소했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해 온 세월이 자그마치 800년이면 그것은 이미 스페인 그 자체다. 이 철학자는 스페인이 유럽화, 즉 기독교화를 추구하느라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바스크부터 아프리카까지 모든 강렬한 자기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고 냉소하면서 스페인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돈키호테가 악당으로부터 그토록 지켜주고 싶었던 둘시네아처럼 스페인 사람들은 이교도로부터 로마가톨릭을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다.
무어
지브롤터 건너 아프리카에서 더운 바람이 새로 일었다. 11세기 사하라 남쪽에서 세네감비아Senegambia 왕국이 섰다. 피부 검은 자들의 땅에서 처음 선 이슬람 국가였다. 알라를 믿지 않는 자들을 이슬람교로 개종시키고,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렸다. 기독교가 로마가톨릭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랬듯이 주변을 정복하는 성전 지하드를 전개하면서 이슬람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땅에서 쫓아냈다. 신과 신의 전쟁이라는 두꺼운 가면을 썼다. 이슬람이 세력이 강해지면서 아프리카의 북서쪽 지중해와 대서양의 해안선을 따라 무라비트왕조가 섰다. 그들을 이베리아 사람들은 알모라비드라고 불렀다. 이들은 물욕도 강하고 싸움 잘하는 사나운 베르베르족 계열이었다. 코르도바의 우마이야 왕조는 톨레도를 빼앗긴 뒤로 지중해의 돈이 모이는 세비야를 지키기 위해 알모라비드에 지원을 요청했다. 승냥이를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1087년 알모라비드는 지브롤터를 넘었다. 그들은 잔인하고 싸움에 이골이 난 자들이었다. 엄격하고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알모라비드에 문약한 우마이야 왕조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들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이베리아의 이슬람 지역을 모두 차지해 버렸다. 기독교 스페인은 레콘키스타 초기에는 우마이야와 싸우다 후반에는 이들 알모라비드와 싸웠다. 톨레랑스를 추구한 우마이야에 비해 알모라비드와의 싸움은 양상이 달랐다.
이베리아 사람들은 모슬렘들을 무어Moor라 한다. 본디 무어moor는 황무지 같은 척박한 땅이라는 말이었다. 그중에서도 마그레브 같은 이베리아와 가까운 북아프리카 땅에 사는 베르베르족이라 불리는 흑인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들은 이슬람교를 믿었고 그래서 무어는 기독교인들이 아프리카인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아랍인들 또는 이베리아에 사는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도 경멸하는 뜻에서 부르는 말로 확장되었다. 신들끼리 서로 관용하지 않고 인간의 피를 요구할수록 무어라는 단어 속에는 증오와 멸시와 적개심이 물처럼 끓었다. 이베리아 사람들은 500년 동안이나 지배한 우마이야 왕조 시대의 모슬렘에게는 무어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우마이야는 기독교도에 대해 관용적이었을 뿐 아니라 선진 문물을 가져다주어 이베리아를 지중해와 유럽에서 가장 문화가 앞섰고 부유한 땅으로 발전시켜 주었다. 그러므로 존경할만한 모슬렘이었다. 그러나 알모라비드는 기독교인들에게 모질었다. 게다가 후진적이었다. 모질고 문명 수준도 낮은 그들은 피부색도 검었다. 그러므로 우마이야 왕조의 사람들처럼 존경받을 수 없었다. 1605년 최초의 근대소설 <돈키호테>가 출판되었다. 돈키호테의 생각은 곧 스페인의 생각이었고, 돈키호테의 꿈은 이미 깨져버린 스페인의 꿈이었다. 이 소설에는 그 시기 스페인 사람들의 생각이 잘 묻어있다. ‘개 같은 무어인’, ‘그들은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수’ 같은 문장이 자주 나타난다. 스페인에서 '무어인'은 가장 악질적인 존재이자 이교도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개였고, 원수였다. 레콘키스타의 전장에서 마주 선 무어인의 목을 벨 때, 칼을 높이 쳐들어 일격을 가하는 순간 기독교인들은 “산티아고!”를 외쳤다. 수호성인 산티아고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처단했다. 무어인만이 아니었다. 유대교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산티아고가 수호성인이 된 뒤로 페니키아 시절부터 이베리아에서 함께 살아온 이웃들인 유대인들은 무어인과 마찬가지로 단지 이교도일 뿐이었다. 이베리아에서 이교도에 대한 학살이 일상화되기 시작했고, 잔인성은 기독교 신앙심을 재는 척도가 되었다. 카리브에서 마주친 선주민들의 목을 벨 때도 산티아고를 외쳤다. 아름다웠던 그리스도의 관용은 산티아고의 이름으로 목이 잘렸다.
+ 스페인은 '레콘키스타'라는 단어를 18세기부터 사용했다. 18세기는 스페인이라는 해가 완전히 진 때다. 스스로 위로하고 싶은 초라해진 스페인은 영웅과 신화가 다시 필요해졌다. 영원한 기독교 수호자가 되고 싶었던 스페인은 영웅과 신화를 위해 기독교의 적을 설정하고 레콘키스타라는 단어를 새로 주조해 냈다.
+ 14세기 후반에 이슬람교는 필리핀 일부까지 전파되었는데 스페인 사람 마젤란이 처음 필리핀에 도착한 것은 1521년의 일이었다. 마젤란은 그 당시 스페인 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이 섬을 필리피나스 섬Las Islas Filipinas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섬에 사는 사람 중에 약 5%가량 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었는데 이들이 새로 침략해 온 이교도 기독교 스페인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서는 소문자로 모로moro라 했다. 굳이 소문자를 쓴 것은 키 작은 무어 놈들이라고 부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필리핀에서 축출될 때까지 필리핀의 키 작은 원주민 모로들은 기독교 정복자들에게 항쟁을 이어갔다. 아바나와 산티아고 데 쿠바에는 모로 요새가 유명하다. 특히 산티아고 데 쿠바의 모로 요새는 세상에서 제일의 난공불락의 성일 것이다. 이 요새들의 이름에 쓰인 ‘모로’는 툭 튀어나온 모난 곳, 곶을 뜻하는 스페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