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티아고

2. 산티아고

#027. 드럼

by 조이진

드럼

충격이었다. 피부 검은 알모라비드들을 처음 싸움터에서 마주했을 때 카스티야군은 이제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엽기적인 무기를 상대해야 했다. 드럼, 북소리였다. 무어들이 한꺼번에 두드리는 여러 종류의 드럼 소리는 시끄러워서 카스티야의 기독교 군사들의 얼을 빼 혼비백산하게 했다. 공포는 괴담을 낳았고, 두려움은 증오를 낳았다. 우마이야 왕조 때 따라 들어온 북아프리카인 들은 살짝 갈색인 편이지만, 이번에 나타난 이들의 피부는 아주 새카만 데다, 울긋불긋한 치장을 온몸에 붙이고, 얼굴에 두꺼운 여러 색 물감을 칠하고, 얼굴 생김도 기이한 그런 자들이었다. 싸움터에서는 좀체 어울리지 않을 반쯤 벌거벗은 검은 집단. 그들 속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강렬하고 뜨거운 사운드는 기독교 군사들의 오금을 저리게 했다. 본디 북은 짐승 가죽을 말리는 둥근 틀에 울림통을 갖다 붙여 만드는 것인데, 이들은 짐승 가죽 대신 싸워 죽인 자들의 껍데기를 벗기고 말려서 북을 메웠고, 그 피로 여러 겹 칠을 했으므로 북통은 검붉었다. 그런 끔찍한 소문은 가톨릭 교황을 수호하는 자들 사이에서 살가죽 벗기는 소리가 되어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피부 검은 자들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당연했다.

west-african-empires.jpg 서아프리카의 알모라비드 군단

아프리카에서 드럼은 애초 악기가 아니었다. 사람의 목소리를 크게 증폭해 주는 앰프였고 드넓은 벌판에서 저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대화였다. 미디어였고, 언어였고,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들은 초원에서 사냥할 때 이 확성기를 통해 대화하며 사냥감을 몰았다. 늘 북을 지녔고 말을 배우듯 북을 언어로써 배웠다. 살기 위해서 북을 두드렸다. 전쟁터에서도 그랬다. 북소리는 전투를 지휘하는 왕의 명령어가 되어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싸우는 피부 검은 자들을 쉽게 조종할 수 있게 했다. 그들은 또 갖가지 색깔의 큰 깃발을 흔들었다. 전투는 아주 잘 조직되고 훈련된 매스게임 같았다. 드럼과 깃발은 그들을 지휘하는 신호가 되었다. 깃발을 흔들어 진을 바꾸었다. 지친 자들은 뒤로 빠지고 기운을 되찾은 자들이 대신 앞줄로 나섰다. 드럼을 치면 왼쪽으로 갔다 또 오른쪽으로 갔다 하며 간결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리듬을 탔다. 새 떼가 공중에서 군무를 추는 듯했다. 아름다웠다. 그러면서도 잔인했다. 피가 튀고 살점이 흩어졌다. 전투는 차라리 뜨거운 전위 예술이었다. 이들을 마주한 기독교군의 왕은 엘 브라보, 알폰소 6세였다. 엘 브라보에게 무릇 전투란 양 진영에서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서로 마주 보고 달려 나가 창과 칼을 겨누어 먼저 상대를 찔러 진을 짓이겨 나가는 것이어야 했다. 그 순간은 비장하고 장엄해야 했다. 먼저 찌르면 내가 살고 늦게 찌르면 내가 죽는 것, 그런 싸움이어야 온당한 싸움이었다. 그런 엘 브라보의 군대에 이렇게 춤을 추듯 리듬에 맞춰 진을 움직이는 방식의 싸움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무어인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싸움의 방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연전연패했다. 용맹왕 엘 브라보는 무어를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톨레도에서 죽고 말았다. 이슬람 군대는 이번에도 이베리아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하고 반도의 남부만을 차지할 수 있었다. 고원 지형이 그 자체로 성인 카스티야와 로마와 우마야드 모슬렘도 지배하지 못했던 자존심 강하고 용맹한 바스크 민족이 버티는 피레네를 알모라비디드는 넘지 못했다. 하지만 세비야와 북아프리카를 차지했다면 지중해와 대서양의 관문인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을 모두 차지한 것이었다. 곧 황금을 차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충분했다.

main-qimg-851b390d90e51426bcd3043505bac470-lq.jpeg 드럼을 든 알모라비드 전사

이 전쟁 때 이베리아에 드럼이 처음 들어왔다. 피부 검은 자들을 따라온 아프리카의 드럼 비트가 세비야에서 섞였다. 음악은 또 새로워졌다. 돈과 돈이 오갈 때도 그렇지만 피와 피가 마주 튀고 칼과 칼이 부딪칠 때도 음악은 새로워졌다. 지중해와 중앙아시아, 아랍, 아프리카의 문물이 응축되어 에너지로 전환되는 이베리아에 드럼이라는 새로운 음악적 피가 들어왔다. 그때까지 유럽에서는 류트 말고는 악기라 할 것이 달리 없었고 스페인에서만 캐스터네츠와 탬버린이 사용되고 있었다. 전쟁은 그런 유럽에 드럼 사운드를 들여왔다. 류트라는 현악기만 있던 중세 교회 음악에 이제 드럼이라는 타악기가 완전히 새로운 음악 공간을 만들었다. 타악기는 곧 비트다. 비트는 박자고 장단이다. 장단이라는 공간이 태어나자 이제 음악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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