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사냥
사냥
이슬람교가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리비아 서쪽의 베르베르족은 사하라를 건너 다녔다. 이들의 근성은 사나웠다. 전차를 탄 경주에서 서로 창으로 죽이고 죽는 싸움에 능한 자들이었다. 이들이 사하라 남쪽에서도 대서양 쪽 검은아프리카와 지중해 상권을 이었고 사하라 남쪽에 사는 피부 검은 자들을 붙잡아 지중해 노예 시장에 끌고 가 팔았다. 이들은 노예상이자 이슬람 전도자들이기도 했다. 지중해 시장을 모슬렘들이 장악했으니 아프리카 상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편이 사업에 유리했다. 돈은 신을 바꾸게 하는 또 다른 신이다. 노예상은 아프리카에서 이슬람을 확장하는 추진체가 되었다. 코란은 노예제를 명시적으로 허락해서 이슬람교도가 아닌 자라면 사람을 노예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이슬람교도라면 노예로 삼을 수는 없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도 이슬람교를 받아들여야 했다. 노예로 끌려간 사내아이들은 소금 짐이나 상아 같은 것들을 맨 등으로 져 날랐다. 벗겨진 채 경매대에 세워진 딸들은 할렘에서 남자들의 노리개가 되었다. 딸들이 사내아이들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렸다. 자식을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조상 대대로 믿어온 신앙을 버리고 알라에게 예배해야 했다. 12세기까지 아프리카 노예거래소에서 팔린 사하라 이남의 피부 검은 자들이 115만 명에 이르렀다. 사하라 이남의 수단 땅에서는 피부 검은 자들이 다른 피부 검은 자들을 끌고 와 노예상 베르베르족에게 팔았다. 피부 검은 자들끼리는 오래전부터 종족 간 갈등이 심했는데 싸움에서 이긴 종족은 적들을 죽이지 않고 산 채로 끌고 가 노예상에게 팔았다. 그러면 돈이 되었다. 돈벌이를 위해 전쟁을 계속했고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노예는 끊임없이 공급되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알모라비드의 노예상들은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세네갈, 기니까지 사람을 사냥하는 터가 되었다. 열대 우림의 정글 앞까지 사냥터가 넓어졌다. 알모라비드의 엄격한 이슬람 근본주의도 지중해에서 멀어질수록 변했다. 지역마다 전통이 가미된 특이한 이슬람교로 조금씩 바뀌어 갔다. 전통 신앙과 결합할수록 검은 이들은 이슬람교를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껍데기는 이슬람교지만 그 혼은 아프리카의 토속신앙이었다. 기니 일대 만딩가 족의 이슬람 종교의례에는 만딩가의 악기가 사용되었다. 악기가 들어가면 악기마다 다른 리듬과 비트도 들어간다. 만딩가의 음악은 아랍의 음악과 섞였다. 이웃이 팔려 가고 옆 마을이 불에 탔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피부 검은 자들은 농사짓고 살던 마을을 떠났다.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떠났다. 아프리카와 아랍이 뒤섞인 음악도 이슬람교와 함께 남쪽으로 떠났다. 끌려가서 없고, 떠나서 사람이 없는 곳에 유목민들의 소가 떠돌아다녔다. 소가 뜯은 땅은 황폐해졌다. 기상이변은 그때도 이미 있었다. 건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비는 내리지 않고 경작하는 사람이 없어지니 땅은 금세 사막으로 변했다. 알모라비드가 지배한 350년 동안 초원이었던 아프리카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사하라로 계속 변해갔다.
알모라비드가 이베리아에 들어온 지 60년 만인 1147년에 또 다른 이슬람 왕조 알모하드가 이베리아를 침공했다. 알모라비드가 이베리아에서 쫓겨났다. 알모하드도 북아프리카에서 갓 일어난 왕조였다. 이들도 금과 노예가 유통되는 돈의 도시 세비야를 차지했다.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었지만 유목민인 알모라비드에 비해 농경 부족 출신인 알모하드는 좀 더 예술 친화적이었다. 50년 정도의 짧은 통치 기간이었지만 이들은 이베리아의 예술과 문화를 존중했다. 기독교 레콘키스타에 축출당한 최후의 이슬람 세력이 바로 알모하드다.
알모라비드가 아프리카에서 영토를 넓히면서 유럽에 금을 공급했다. 이 시기에 유럽에 유입되는 대부분의 금은 알모라비드가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그들이 노예들을 부려 금을 캐내 이베리아에 들여보냈다. 상인과 상인끼리 또 나라와 나라끼리 거래도 금으로 거래했다. 이때부터 금이 기준 화폐로 자리 잡았다. 때마침 지중해 세계는 물론이요, 피레네 너머 유럽 경제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구매력이 늘고 실크로드의 교역량도 폭증했다. 훈족에게 쫓겨 세운 베네치아가 동양과 서양을 연결했다. 국제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제 금이 곧 국력이 되었다. 금을 많이 소유한 나라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금을 원하는 세비야가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챘다.
+ 로마의 정원이라는 모로코 수도 라바트 지역의 첼라Chellah와 카사 블랑카를 알모하드 왕조가 건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