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티아고

2. 산티아고

#029 후글라르

by 조이진

쇼 비즈니스

12~13세기에 후글라르juglares라는 이야기꾼이 나타났다. 스페인 역사학자 메넨데스 피달은 후글라르를 인류 최초의 보도 기자로 보았다. 후글라르들은 바스크 지역인 이베리아 북부 부르고스, 레온, 카스티야, 갈리시아 지방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면서 다른 곳에서 일어난 전쟁 이야기를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며 전해주는 목 소리꾼이었다. 모슬렘과 전선을 형성한 바스크 지역이 가장 전투가 잦은 지역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교육을 받지는 못한 이들이 전하는 소리들은 대개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을 모아 이야기로 엮은 것들이었으므로 일부는 사실이기도 했고 또 일부는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덧붙인 이야기이기도 했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된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다른 후글라르가 한 '소리'가 사람들에게 호응이 좋으면 그 이야기를 본떠 자기 이야기에 덧붙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었다. 재미가 있으면 사람들이 바구니에 돈을 던졌기 때문이다. 말만 늘어놓는 것보다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노래라는 기법을 섞어 이야기를 풀어내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재미있어했다. 스페인 최초의 문학작품 <시드의 노래>의 제목도 '노래'인 이유다. 아주 오래전부터 페르시아에서는 짧은 잠언psalm 형식의 문장을 만들어서 그것을 암송했다. 솔로몬의 잠언이 예다. 암송할 때 노래로 했다. 그러니까 암송하기 위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스에서도 시poet는 악기를 연주하며 '읊는 말'이란 뜻이었다. 노래라는 장르가 아랍 사람들을 통해서 이베리아에 전달되었고,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 후글라르를 낳았다. 처음에는 엘 시드 같은 전쟁 영웅이 노래의 소재였다. 레콘키스타 상황이었으니 후글라르의 노래에는 이슬람과 무어에 대한 멸시와 증오가 담겼다. 레콘키스타 전쟁을 위해 기사들은 전쟁에 나갔고 귀부인들은 성과 저택에서 외롭고 적적했다. 이야기꾼들은 오락거리가 필요한 귀부인들은 귀부인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달콤한 백마의 기사 이야기를 좋아했다. 멋진 백기사가 숱하게 태어났고 백기사들은 귀족 유부녀를 사랑해 목숨을 바쳤다. 그런 이야기가 레콘키스타 때 크게 유행했다. 후글라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스토리'이기도 했고, 그들이 다룬 전쟁과 기사의 활약 이야기는 '히스토리'이기도 했다. '히스토리' 즉 역사가 모두 진실인 것은 아니다. 후글라르가 전해준 소식과 이야기가 진담 반, 농담 반인 것처럼 역사도 그렇다. 이때 후글라르들이 쓴 언어가 로망스어다. 부드러운 발성으로 달콤한 문장의 가사를 노래로 불렀다.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로 시의 문장 즉 가사를 지었고, 이제 드라마적 구조를 갖춘 이야기 전개로 왕 앞에서 연기했고 감동을 끌어냈다. 오페라의 전형이 만들어졌다.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는 탄호이저라는 이름의 후글라르에 관한 이야기다. 왕들은 유명한 후글라르를 성으로 초대해서 공연하여 위세를 과시했고, 후하게 보상했다.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난한 후글라르들은 성 아래 광장에서 공연했다. 후글라르들이 오면 장터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럽 최초의 목소리 이야기꾼인 후글라르. 피레네 지역에서 최초로 나타났다.

피레네 너머 남부 프로방스는 옥시타니아 지방이다. 이베리아와 이웃한 옥시타니아에서는 후글라르를 종글러jongleurs라 했다. 피레네 남쪽 바스크 지역의 후글라르가 시를 노래하며 문학성을 띤 음유시인다운 성격도 가졌던 데 비해 종글러는 광대에 더 가까웠다. 몸 개그를 가미해서 웃겨주는 재주를 인정받으면 왕이나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성안에 정착할 수 있었다. 후글라르가 궁정 시인이었다면, 종글러는 궁정 광대였다. 주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자기 재능에 따라 종글러는 특화했고, 다양해졌다. 주인이 시와 노래를 좋아하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악단minstrel이 되었고, 바보스러운 짓을 좋아하면 유치한 어릿광대가 되었고, 공중에서 몸을 날리는 곡예사가 되기도 했고, 신기한 마술사, 팬터마임 연기자, 재치 있는 말장난 수다쟁이가 되기도 했다.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고 빨간 큰 코에 원뿔형의 모자를 쓰고 헐렁한 옷을 입는 피에로 캐릭터가 이때 생겨났다. 그가 바로 대표적인 종글러다. 스페인의 후글라르에는 이런 캐릭터가 없었으므로 서로 달랐다. 종글러 가운데는 저글러juggler를 써서 공연하는 자도 있었다. 저글러는 종글러가 던지는 소품에서 생겨난 단어다. 광대라는 뜻의 영어 단어 조커joker도 저글러에서 나온 말이다. 오늘날 민스트럴 쇼라 불리는 장르가 있다. 그 원형이 종글러 공연이었다. 후글라르와 종글러가 버스킹을 했다. 길거리 공연하여 자신을 고용해 줄 주인 즉 스폰서를 찾고, 바구니에 담길 돈을 찾았다 후글라르는 시인이기도 했고 가수이기도 했고 퍼포머이기도 했고 역사가이기도 했고 뉴스 리포터이기도 했고 오피니언 리더이기도 했다. 가난한 외톨이 떠돌이이기도 했고, 유랑극단이기도 했다.

종글러. 얼굴에 연지 화장을 하고 저글러를 흔들고 있다. 종글러는 광대 조커와 민스트럴 쇼의 원형이다.



+ 우리는 후글라르와 뒤에서 이야기할 트로바도르 둘 다를 음유시인이라 번역한다. 그러나 이 둘은 성격이 서로 다르므로 둘을 구별하고 트로바도르를 음유시인으로 표기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후글라르는 후글라르라고 표기한다. 후글라르는 라틴어로 '목throat'과 관련이 있는 단어다.

+ 역사라는 뜻의 '히스토리'에 '이야기'라는 뜻이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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