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재잘
재잘
스페인 문학사 연표의 첫 줄에 있는 <시드의 노래>는 12세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베리아에는 8세기 또는 9세기부터 재잘Zajal이라는 문학 형식이 있었고, 11~12세기에는 무와샤Muwashshah라는 시가 형식도 있었지만 스페인 문학사는 이런 장르의 문학을 포함하지 않고 문학사 연표에도 올리지 않는다. 레콘키스타 전 모슬렘 왕조가 이베리아를 지배하던 시대에 유행했던 문학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시기 이전의 역사를 부정하는 스페인은 모슬렘 통치한 톨레랑스 정신이 빚어낸 화려했던 문화를 애써 외면한다. 세르반테스가 ‘개 같은 무어인’,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한 지 4백 년이나 지났지만 현대의 스페인은 여전히 그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기 문학은 스페인 학자들이 아닌 미국 학자들이 연구한다.
미국 학자들에 따르면 재잘은 기독교도들이 아랍풍의 노래와 뒤섞어서 부르던 노래 스타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도란 로망스어를 쓴 피레네 인근의 바스크 지역 사람들을 말한다. 8~9세기에 피레네에서는 주목할만한 일이 있었다. 동유럽을 지배했던 아바르칸 제국 또는 유스Eus 제국의 밝족이 피레네로 들어온 때가 이 때다. 아바르 또는 유스의 밝족이 윷판 같은 별자리 그림을 깃발로 내걸고 강성한 나바라 고을을 세웠을 때가 이때다. 레콘키스타 이전이었으므로 이슬람과 기독교 두 종교, 두 신은 조화하지 못했을지라도 사람과 사람의 문학과 음악은 서로 섞이고 조화했다. 미국 연구자들은 이 노랫가락을 '바스크 사람들이 불렀던 올드 로망스 풍의 노래로 그 가사는 속어 투의 아랍어와 로망스어가 섞인 노래'라고 설명한다. 또 그 주제는 남녀 간의 성애 같은 것들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많았다고 했다. 재잘은 하층민들이 저잣거리 술집에서 부르는 노래였으니 속요라 할 수 있다. 이런 저잣거리 재잘을 안달루시아에 살았던 아랍의 궁정 시인들이 받아들였다. 궁정 시인은 왕과 왕비, 귀족들과 함께 살면서 시와 노래를 창작하여 교류하는 시인들이므로 재잘을 고상한 아랍어로 형식을 정제해 발전시켰다. 그것이 무와샤다. 바스크의 속요 재잘을 안달루시아의 궁중 시인들이 아랍 귀족의 시가 문학으로 격을 높였다. 이베리아에 종이 만드는 기술이 처음으로 소개된 이 시기에 이베리아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 새로운 노래 형식이 아랍 세계로 전파되어 크게 유행했다.
재잘은 2줄로 된 4행시다. 그리고 네 번째 줄의 마지막 단어에 소리의 규칙 즉 운을 주었다.
Vivo ledo con razón
amigos, toda sazón.
Vivo ledo e sin pesar
pues amor me fizo amar
a la que podré llamar
más bella de cuantas son.
Vivo ledo con razón,...
‘_온ón’으로 끝나는 규칙적인 소리가 운이고 라임rhyme이다. 본문 시를 말하고 나면 후렴구를 노래한다. 이런 패턴은 여러 번 반복된다. 한 사람이 본문 시를 선창 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답창 하듯 후렴구를 함께 불렀다. 순서에 맞춰 본문 시를 부르는 창자를 계속 교대하면서 노래는 끝없이 반복할 수 있었다. 차례가 된 창자가 노랫말을 자유롭게 붙일 수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참가자의 문학성과 순발력, 창의력, 지식 같은 것들을 경쟁했다. 위 시에서는 첫 줄부터 세 번째 줄까지 ‘-아르ar’로 끝나다가 네 번째 줄의 끝말 소리만 ‘-온’으로 바뀐다. 약속한 운이 나오면 이를 신호로 일동은 후렴구를 함께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불러도 되었다. 후렴구가 있는 재잘을 무와샤라고 했지만, 특히 재잘에서 반복되는 후렴구를 가리켜 무와샤라고도 했다. 후렴구는 한 대목의 시가 끝났을 때 다음에 이어질 시로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했다. 그 형식이 후렴구 무와샤다.
우리 전통 문학에도 무와샤 같은 형식은 대단히 많다. 예를 들어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에서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가 후렴구 무와샤다. 이렇게 반복해서 다시 부르는 무와샤 구절을 ‘다아시tawāšīḥ’라고도 했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이 부분은 창자에 따라 바뀌므로 '재잘'이다. 한 대목의 시의 끄트머리 소리인 운을 '가자kharjah'라 했는데 이것은 다음 줄의 시로 이어가자는 소리의 규칙 즉 율이었다. ‘가고 싶어 가느냐’의 ‘냐’가 반복되므로 ‘냐’가 '가자'에 해당한다. 최종적으로 시를 끝내서 막는 마지막 소리를 '막아스markaz'라고 했다. 앞에서 본 스페인어 시에서는 첫 줄부터 셋째 줄까지 끝나는 소리 ‘-알’이 '가자'고, 시를 끝내서 끝을 막는 마지막 소리 ‘존’이 '막아스'다.
아랍 음악은 단선율이다. 단선율은 하나의 가락만으로 노래하는 음악이다. 우리 고전 음악의 정가, 시조, 판소리, 민요도 아랍 음악처럼 단선율이다. 아랍 음악을 가져다 노래 가사만 기독교 경전의 시를 얹어 노래로 불렀던 중세 교회 음악 칸티가가 단선율 노래다. 그러나 아랍 음악은 칸티가와 중요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이베리아에서 재잘과 무와샤가 불릴 때 마침 아랍에서는 또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유행했다. 아랍의 시인들은 노래할 때 북의 둘레를 두드려 북장단을 넣었다. 고수가 창자 옆에 앉아 북을 쳐 창자의 노랫가락을 끌어가는데 이것이 장단이요 비트다. 비트는 박이고, 비트를 합치어 장단을 이루었다. 북장단에 흥을 실어 가락을 노래한 것이다. 고수가 북을 두드려 장단을 만들고, 노래하는 창자는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창을 하였는데 고수가 북을 두드리는 일을 '다라바taraba'라 했다. 코르도바에서도 유행했는데 이베리아 스타일의 다라바를 '다라바 안달루시tarab andalusi'라 했다. 아랍 말로 '다라바'는 '때린다srtike' 또는 '다룬다handle'는 뜻인데, 북 같은 악기를 '두드려서 소리 낸다'는 뜻의 단어다. 아랍 사람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북을 다루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무 채로 쳐서 소리를 내는 북을 '다루북daru-buk'이라 했다. 다루북은 북의 둘레 즉 변죽을 울려서 가수의 소리를 다스려주는 연주법을 말한다. 북을 쳐 북장단을 만들고 북장단에 흥을 실어 노래를 하는 우리의 판소리와 다름이 없다. 또 다루북의 리듬과 장단은 우리 굿거리장단, 세마치장단과 매우 비슷하다. 마치 살짝 새롭게 해석한 우리 국악을 듣는 듯하다. 아랍에서처럼 이베리아에서도 다라바는 뛰어난 묘사력의 노랫말과 울림 강한 창법으로 감성적으로 호소하고, 공감과 감동을 일으켜서 관객들을 강하게 몰입시켰는데 이는 마치 노랫가락이 흥겨워 장내를 떠들썩하게 흔들어놓는 우리의 판소리나 마당놀이 같은 음악이었다. 아랍의 전통 음악이 용어부터 음색, 연주법까지 우리말, 우리 음악과 무척 흡사했다. 재잘과 무와샤는 이런 다루북장단에 맞춰 단선율 가락을 불렀고 운과 율 즉 끝소리와 호흡에서 형식에 맞춰 불렀다. 재잘과 무와샤, 또는 다라바 음악은 대개 남녀의 사랑을 다루었는데, 떠나버린 남자에 대한 그리움과 이별의 정한, 여인의 노골적인 성애가 주제였다. 그 속에는 적나라한 성 묘사와 노골적인 음담도 농밀하게 스며있었다. 외설스러우며 야하고 음탕한 사설들이 노골적으로 거침없이 노랫가락에 실려 노래로 불렸다. 그것들을 주로 여성이 불렀다.
고려가요 <쌍화점>은 개성에 정착해 만둣집을 하는 위구르 사람과 섹스하고 싶어 하는 여인들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다. 소문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그래도 그 회회 아비와 한 번은 자보고 싶다는 마음을 돌아가며 큰소리로 선창 하고, 함께 노래 부르는 여자들 일동이 후렴구를 크게 합창하는 방식의 노래다. 북과 장구를 다루면서 말이다. 사랑 이야기 <춘향가> 중 춘향과 이몽룡의 연애 행각과 방중술 대화는 놀라울 만큼 외설스럽다. 이몽룡이 춘향의 성기를 가까이 살피면서 그 생김을 묘사하는 대목은 조선 시대 청춘남녀의 행실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외설스럽다. <변강쇠전>, 또는 <가루지기전>에서는 아예 변강쇠와 옹녀가 서로의 성기를 바라보면서 부르는 <기물가>라는 노래도 있고, 창가는 첫 시작 대목부터 충격적일 만큼 야하고 노골적이다. 소리와 아니리와 너름새로 묘사하는 포르노그래피라 해야 마땅하다. 이런 내용의 사설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중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불렀다니 현대의 가치관으로도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판소리도 다라바처럼 고수가 북을 다루고, 창자가 노래를 부른다. 우리의 시조, 고려가요, 정가, 판소리, 마당놀이가 모두 하나의 뿌리에 닿아 있었다. 북장단에 맞춰 길게 늘여 빼 부르는 멜리스마 창법이 그것이다. 멜리스마Melisma는 단일 음절의 가사를 여러 음표 사이를 연속적으로 이동하면서 길게 늘여 빼 노래하는 기법이다. 그 뿌리가 드렁칡처럼 아랍을 거쳐 이베리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10세기 전후 고려 시대의 일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 처용이 노래하던 신라 때도 아랍과 교역하였고, 머리에 새 깃털을 꽂은 고구려 사신이 숱하게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말 달려 훈민족과 연합해 중화족과 다투었다. 고려 때 개성과 벽란도에는 아랍인과 위구르 상인들이 20만 명씩이나 귀화해 살아 혼혈하였다. <고려사>에는 왕으로부터 성을 받아 정착한 위구르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그런 성씨가 여럿이다. 개성에서 가을에는 팔관회가 열렸다. 팔관회는 민족을 열어준 하늘에 있는 조상에 제를 지내는 삼국시대부터 치러진 전통 의식이었다. 이때는 마침 동남아시아에 계절풍이 불 때라 그 바람을 타고 이슬람 상인들이 배를 타고 개성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고려 때 예성강 나루터에는 늘 아랍인들의 배가 가득 찼다. 팔관회는 워낙 성대하게 치러져서 고려에서 열리는 세계 박람회이기도 했다. 육로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많은 수의 이슬람 무역상들이 왕에게 귀한 물품을 진상했다고 <고려사>는 기록했다. 사람이 오면 노래도 온다. 노래가 오면 악기도 함께 온다. 우리의 전통 민요와 음악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랍과 영향을 주고받았고, 그것이 이베리아까지도 연결되었다. 유라시아 대륙 해 뜨는 동쪽 끝에서 해 지는 이베리아 서쪽 끝까지 밝족의 노래와 시, 악기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말에도 ‘재잘댄다’, ‘재잘재잘한다’라는 말이 있다. 끊김 없이, 쉴 새 없이 목으로 소리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스페인 문학사 연구자들은 8~9세기에 피레네로 이동한 바스크 즉 이바르, ‘밝’족이 재잘 장르를 처음 개발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들 바스크가 자신들의 말 유스가라 즉 훈족의 말로 재잘이라 했다. ‘재잘’이 본디 바스크가 처음 개발한 문학 장르였을지, 한반도에서 시작한 장르였을지는 알 수 없다.
고려 말에 가이나들만 재잘거린 것이 아니다. 당대 엘리트인 이방원과 정몽주가 주고받는 시는 즉흥 라임 배틀 작품이다. 라임은 21세기 현대 대중음악에서 중요한 요소이고 형식이다.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 라임 베틀이다. 순발력과 창의력을 라임이라는 방식으로 겨룬다. 힙합은 무대 위 승부일 뿐 실제 목숨을 건 배틀은 아니다. 가장 위대한 라임 베틀은 이미 1392년에 벌써 이루어졌다. 이방원과 정몽주는 <하여가>와 <단심가>로 라임 베틀을 벌였다. 이날의 라임은 400년 왕조를 뒤엎을 혁명이었고, 베틀은 담판이었다. 한 사람은 칼을 들어 목을 쳤고, 한 사람은 선죽교에 피 얼룩으로 남았다. 한 남자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혁명에 대한 기개로, 한 남자는 수백 년 왕조를 지키겠다는 충절로 절벽의 끝에서 마주 선 날 밤에 이런 시를 노래했다. 이것이 라임 배틀이다.
‘이런들 엇더며 져런들 엇더료. 만수산 드렁칡이 얼거진들 엇더리
우리도 이치 얼거져 백년지 누리리라‘<이방원 하여가>
‘이 몸이 주거주거 일백 번 고쳐주거 백골이 진토되여 넉시라도 잇고업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쉴 줄이 이시랴.‘<정몽주의 단심가>
고수가 북을 두드려 장단을 만들고, 노래하는 창자는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음악 스타일 '다라바taraba'는 떠돌이 방랑시인 목소리꾼 후글라르에는 더없이 좋은 공연 방식이었다. 후글라르가 재잘을 선창 하면 그를 삥 둘러싼 청중들이 다 함께 후렴구 무와샤를 답창했다. 청중들이 노래에 참여하면 더 몰입하기 좋았고, 이야기꾼도 노래하고 흥을 돋우기 좋았다. 마당놀이처럼 관객들이 공연에 참여하는 형태가 1천 년 전 바스크 지역에서 후글라르에 의해 자리 잡았다. 밝족의 후손들이 쇼 비즈니스의 역사를 혁신했다.
트로바Trobar라는 말은 다라바taraba에서 나왔다. 이 트로바라는 단어가 20세기 중반 라틴아메리카의 대중음악을 강타했다. 트로바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쿠바 혁명 이후 혁명을 계몽하는 새로운 노래 운동을 상징하는 장르의 음악 트로바도르로 부활하였다.
+ 무와샤는 본디 '무샷다mushata'라는 시리아 말에서 나온 말이다. '무샷다'는 '리듬' 또는 '노랫말'이라는 뜻이었다. 이 시리아 말 뮤샷다가 스페인어 '무지카musica', 영어 '뮤직music'의 어원이다.
+ 우리 고전 문학은 형식에서 재잘과 같은 형식의 노래와 시가 많다. 고려가요부터 진도 아리랑까지 형식 면에서 재잘, 무와샤와 다름이 없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대평성대(大平成代)
날러는 어찌 살라 하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대평성대(大平成代)‘<가시리>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쾌지나 칭칭 나네
우주 강산에 비친 달아
쾌지나 칭칭 나네’<쾌지나 칭칭 나네>
‘대밭에는 대도 총총
하늘에는 별도 총총
우리 아기 시집가네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 단선율 음악에 대비되는 복선율은 서로 다른 리듬을 동시에 쓰는 음악을 말한다. 현대 음악은 대부분 복선율이다.
+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승된 고려가요는 재잘처럼 계속 바뀌는 시부와 무와샤라는 후렴구로 구성된 곡이 대다수다. 이런 형식의 문학을 식자층에서는 시조라 했다. 어쩌면 우리 민중들은 재잘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귀족층이 단선율의 멜리스마 창법으로 정가를 부를 때 민중들은 주막에서 재잘거렸을 것이다. 이베리아에서도 이슬람 궁정 시인들은 재잘이라 하지 않고 무와샤라는 이슬람식 말로 고상하게 장르를 표현했다. 또 비슷한 시기 고려 말에 시조라는 한자어가 등장했다. 시poets와 조tunes 즉 노랫말을 부르는 가락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