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레콘

14. 말레콘

#294 에스테노즈

by 조이진

에스테노즈

푸른 눈의 물라토 에스테노즈는 늘 흰색 정장 차림에 파나마모자를 쓰고 시가를 물고 있는 신사였다. 미국식 ‘피 한 방울 법칙one-drop rule’대로면 그는 흑인일 뿐이었다. 그는 공화국이 수립된 다음 건설 현장을 감독하는 일을 했고 미국인과 스페인 사업가들이 많이 사는 베다도에 그의 현장이 많았다. 흑인 노동자들이 대다수인 벽돌 미장공 노동조합을 이끌었던 그가 스페인이 쫓겨난 뒤 대규모 노동자 파업을 주도해 하루 8시간만 노동할 권리를 쟁취했다. 그가 이끈 벽돌공을 위한 노동 운동은 곧 아프리카계 쿠바인들의 권리를 위한 사회운동과 같은 것이었다. 미군정 체제에 있을 때도 쿠바의 백인 지도자들은 흑인들에게 권리를 주장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만일 흑인들이 권리를 주장하면 미군정 체제를 연장하는 명분을 쥐여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그 때문에 견디어 온 흑인들은 미군정이 정권을 이양한 지 닷새째 되는 날 흑인 제대군인회를 조직했다. 미군정이 직접 통치하는 때가 끝났으니 에스테노즈를 비롯한 흑인 맘비 해방군들은 백인들이 누리는 만큼 동등하고 충분하게 흑인들도 시민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여겼다. 흑인들은 대표단을 구성해 신임 에스트라다 팔마 대통령을 두 차례 면담했다. 그들은 쿠바 의회와 공직에서 흑인들을 대변할 대표자 수를 늘리고 백인과 평등하게 대우받게 법으로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왜 국가공무원직에 흑인들은 배제되는지 항의했고, 왜 정부와 지방의 거의 모든 공무원 자리를 백인들이 다 차지하고 있는지를 따져 물었다.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함께 싸웠으니 대통령은 유색인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또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0대의 늙은 팔마 대통령은 면담이 피곤하다는 이유를 들어 그들의 간청을 거절하고 내보냈다. 그러면서 팔마는 흑인해방군 제대군인들이 권리를 요구할수록 그 자체가 인종주의라고 비난했다.

estenoz.jpg 왼편 에바리스토 에스테노즈. 유색인 차별에 항의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에스테노즈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신문에 기고하고 흑인 해방군 전역자들을 상대로 직접 강연하면서 흑인에게는 평등을 요구할 정당한 권리가 있음을 일깨웠다. 그는 베다도에서 집 짓는 일을 계속하면서 미국을 방문해 미국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가하는 인종차별의 현실을 직접 대면했다. 2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투표하기 위해 귀국했을 때야 그가 연임을 위한 대선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에스트라다 팔마 대통령 정권을 전복할 음모를 꾸민 주모자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선거는 미군정이 철수한 뒤 쿠바공화국이 주도해 치르는 첫 대선이었고 팔마에는 미국의 도움 없이 치르는 첫 선거이기도 했다. 상대 당 후보는 흑인들의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해방군 지도자 출신 미구엘 고메스였다. 부정과 사기와 공무원들의 권한 남용으로 선거운동은 극심하게 혼탁했다. 선거가 2달이나 남았지만 15만 명이나 허위 등재된 명부가 발각되었고, 팔마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무원과 교사를 해직시켰다. 팔마의 경쟁 후보가 속한 당의 지도자는 시엔푸에고스에서 암살당했고, 선거일 직전에는 에스테노즈가 공화국 전복을 꾀하고 반란을 기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대서특필되었고, 선거 날 아침 조간신문에는 또 다른 불온 단체가 지방 경찰서를 습격해 탈취한 무기로 선거일 아침에 팔마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발각되었다는 경찰 발표가 헤드라인을 채웠다. 수갑을 찬 혐의자들의 사진도 크게 실렸다. 선거 결과는 사전에 정해진 대로 선거가 끝나자마자 발표되었다. 선거 몇 주 전에 경쟁 후보 고메스는 생명에 위협을 받았다며 미국으로 도피했으니 어차피 선거는 별 의미도 없었다. 뉴욕에서 고메스는 미국이 쿠바 내정에 즉시 개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 요구는 플랫 수정안에 근거를 두었다. 미국은 지금 플랫 수정안의 효과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플랫 수정안은 미국의 재산과 미국인의 생명이 위협받을 때 반드시 쿠바에 개입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그 결과 쿠바에서 권력 지향자들이나 그들과 맞서는 정치적 반대자들로서는 상대 세력을 스스로 극복하지 않아도 되었다. 플랫 수정안을 가동하라고 미국에 요구하면 되었다.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믿을만한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면 미국은 개입할 수 있었다.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면 굳이 쿠바 안에서 상대 진영과 힘겹게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백인으로 그려진 쿠바를 죽이려는 칼을 든 흑인들을 그린 풍자만화. 흑인들이 '인종주의'라는 칼을 들었다고 했다. 인종주의자들은 흑인들의 저항이 인종주의라고 프레임을 만들었다.


1905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쿠바인들을 실망했다. 수십 년 동안 스페인에 투쟁한 막바지에 들이닥쳐 독립을 낚아채 간 미군정도 참기 힘들었는데, 미군정이 종식된 지금 쿠바에 펼쳐지는 양상도 그들이 꿈꾸었던 공화국의 모습은 아니었다. 1902년에 미군정이 종식되고 독립 정부가 수립되면 쿠바 정부는 국가가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해줄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쿠바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쿠바의 땅 대부분은 미국인에게 불하되었고, 이권과 특혜는 스페인 사람 또는 스페인 사람들에 부역한 자들이 차지했다. 독립투쟁에 헌신했던 흑인 쿠바인들은 차별과 가난에 고통스러워했다. 팔마 정부에 그들에게도 국가직을 나눠 달라고 요구했지만, 개선되는 것은 없었다. 사회의 혼란, 혼탁, 혼돈, 무질서 이런 것은 더는 그들의 문제일 수 없었다.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다시 하나뿐이었고 그들은 그 길에 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선거 하루 전날 국가 전복 혐의라는 엄청난 죄목으로 체포되었던 에스토네즈는 팔마의 두 번째 취임식 하루 전날 풀려났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에스토네즈는 곧바로 흑인 해방군 출신 운동가들과 반란을 조직했고, 헌법 실현을 군대라는 뜻으로 헌정 군이라고 명명했다. 해방군의 80%를 차지했던 흑인 해방군들이 다시 모였다. 헌정군 사령관은 3차 독립 전쟁에서 안토니오 마세오 장군, 막시모 고메스 장군과 함께 아바나 서부 진격을 지휘한 반데라 장군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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