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반데라
반데라
독립 영웅 반데라Quintín Bandera 장군은 분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정 점령기 동안 그는 독립된 쿠바에서 마땅한 역할을 갖지도 못했을뿐더러 먹고살 형편도 갖추지 못했다. 팔마 정부에 자리를 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찌나 곤궁했던지 그는 옛 동료들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흑인들은 이 독립 영웅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전하기도 했다. 쿠바 상원은 그런 행위를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고, 법안을 심사하는 회의에서 반데라의 행위를 크게 비난하기도 했다. 아바나 경찰청장 자리를 요구했던 그에게 팔마 대통령은 상원 건물의 문지기 자리를 배정했다. 먹고 살길이 없던 반데라는 비누 배달원 일을 하며 새로 나온 홍보용 비누를 아바나의 세탁소에 배달했다. 오늘날에도 쿠바에서 유명한 비누 브랜드 칸다도는 배달원 반데라의 사진을 전단에 싣고 사진 아래에 이런 문구를 붙였다. “나는 인민의 새끼입니다.” 치욕을 견디면서 그는 쓰레기를 뒤졌다. 그는 이런 처지에 놓인 독립 영웅과 흑인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또 그를 모독하고 배신한 옛 해방군 동지들을 고발하기 위해 해방군 사령관 복장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졌다. 팔마가 두 번째 대통령에 취임한 해에 봉기는 시작되었다. 반데라가 지휘하는 헌정군에 에스토네즈가 합류했다. 소소한 전투에서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반데라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국외 망명을 승인해 주면 항복하겠다고 팔마에게 제안하고 아바나 인근 야전에서 정부군의 답변을 기다렸다. 밤이 깊었을 때 맞은편에서 한 무리의 군인들이 다가왔다. 그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고 여긴 그는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은 채 그들을 맞았다. 앳된 정부군 군인들의 얼굴은 그런 빛이 아니었다. 73세의 독립 영웅 반데라는 수십 년 동안 쿠바를 위해 싸워왔던 지난 인생을 어린 군인들에게 호소했지만, 그들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마체테를 치켜들어 늙고 저항하지 않는 노영웅을 공격했다. 영웅의 몸뚱이는 몇 토막으로 나뉘어 수레에 던져졌다. 수레에 실린 그의 시체는 아바나의 한 공원에 설치되었다. 목 잘린 머리는 한쪽 귀마저 잘린 채로 전시되었다. 잘린 귀는 장군을 죽였다는 증거로 제출되었다. 많은 시민이 몰려와 영웅의 주검을 지켜보았다. 대개는 흑인들이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늙은 미망인은 장례라도 치르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팔마 대통령은 거절했다. 쿠바 독립투쟁 역사에 중요한 영웅의 주검에는 꽃도 예포도 없었다. 석탄을 나르던 시커멓고 더러운 수레에 판자를 뜯어 만든 관을 실어 콜론 묘지에 묘비도 석관도 없이 맨땅바닥에 묻었다. 반데라 살해 사건은 쿠바 전역에서 반란을 불렀다. 두 진영으로 갈린 해방군 지도자들끼리 서로 총을 겨눴다. 메노칼 같은 미국 설탕 사업자와 토지 소유자들은 하루라도 일찍 미국이 쿠바에 개입하라 요구했다. 이번에도 플랫 수정안에 근거한 요구였다. 호세 마르티가 그렇게 빨리 죽었을 때 쿠바 해방군 누구도 그들이 이런 비극을 겪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쿠바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국무장관 태프트를 아바나에 보내 두 진영을 중재하려 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3일 뒤 미 해군이 산티아고 데 쿠바에 상륙했고 7일 만에 쿠바 대통령은 하야하고 정권을 미 국무장관에게 이양한다고 했다. 미국이 두 번째 쿠바 문제 개입이었다. 태프트는 10일 뒤에 쿠바 군정 최고책임자로 파나마운하 책임자를 지명했다. 미국이 두 번째로 쿠바를 점령하는 동안 쿠바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쌓이고 꼬여 풀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플랫 수정안이 만들어내는 것들이었다. 미국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미국은 쿠바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그런 쿠바는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미국의 입장부터 먼저 살피는 자세를 가졌다. 미국은 쿠바 사람들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을 조종하거나 역이용하려 한다는 의구심도 일었다. 플랫 수정안이 미국을 요리하기 위해 쓰이는 칼날이 되기도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실제 쿠바공화국을 이루어냈던 집단이 느끼는 소외감과 절망과 불만이 빚어내는 갈등이었다. 스페인을 축출하는 데 절대적인 이바지를 했지만, 배제당한 해방군과 흑인들은 미국과 미국이 지원하는 쿠바 정권에 반발하고 있었다. 반데라와 에스테노즈가 그들을 이끌었다. 미국이 점령해 쿠바 리브레를 외친다고 풀릴 문제는 아니었다. 미국의 두 번째 ‘쿠바 리브레’는 3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아바나의 설탕 경제는 호황이 지속되었다. 설탕으로 큰돈을 버는 백인과 스페인 이민자 출신 부유층이 베다도로 모여들었고 희고 고급스러운 저택은 베다도의 상징이 되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미국인들은 땅을 거침없이 계속 사들였다. 미군이 철수하려면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새로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했다. 미국 시민권자이자 코넬대학 출신 친미 성향의 미구엘 고메스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고 미군은 철수했다. 쿠바 사람들은 다시는 미군이 쿠바 땅에 되돌아오지 않게 되기를 희망했다. 쿠바인들은 희망했으나 그 희망이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미국인들에게는 쾌적한 그늘이 되어주는 플랫 수정안은 쿠바인에게는 무거운 먹구름이었다.
“우리는 호세 마르티가 꿈꾸고 마세오 장군이 실현하려 했던....... 쿠바의 흑인들은 그것을 위해 쿠바 산하에 피를 흘렸고....... 모든 인종이 조화되는 쿠바를 이룬다.” 늘 흰 파나마모자에 흰 정장을 갖춰 입던 베다도의 신사 에스테노즈가 유색인 독립당PIC을 조직했다. 고메스가 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해였다. PIC는 인종 정의 실현을 핵심 강령으로 선언하고 국가공무원직을 인종적으로 균형을 맞춰 배분해 기용하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헌신한다는 정강을 발표했다. 인종 평등 실현을 위해 의무교육을 확대할 것과, 사형제 폐지, 토지를 쿠바 국민에게 재분배할 것도 요구했다. “쿠바인을 위한 쿠바 실현Cuba para los Cubanos”이 그들의 구호였다. 이 당이 빠르게 세력을 키워가자 그때까지 흑인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아 고메스 대통령을 당선시킨 자유당이 긴장했다. 자유당은 PIC의 분명한 흑인 지향 정체성이 오히려 나라를 분열시킨다고 비난했고 의회는 인종을 구분해 당원으로 가입시키는 정당 설립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법안을 만든 의원도 흑인이었고, 상·하원에는 흑인 의원들이 15%가량이나 되었지만, 그들도 유색인 당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법안에 찬성했다. PIC를 인종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한 진영에서는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우월한 대우를 받으려 한다고 역공했다. 에스테노즈는 멈추지 않았다. 흑인들을 백인과 평등하게 대하고 정의를 달라는 것이지 백인들보다 더 우월하게 대우해 달라는 것은 아니라며 전국을 돌며 대중을 상대로 웅변했다. 정부는 그들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체포했다. 에스테노즈를 잡아들였고 PIC 지지세가 강하고 저항이 예상되는 지역으로 군병력을 이동시켰다. 마침 핼리혜성이 지구 가까이에 접근하고 있었다. 76년마다 아름다운 긴 꼬리를 흩뿌리며 우주를 나는 이 혜성에 대해 신문은 신이 보내는 불길한 전령인 혜성이 지구에 부딪히는 날 지구는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관측을 실은 보도를 쏟아냈다. 총검으로 무장한 군대가 도시를 장악했고, 도시는 혜성의 가스로 뒤덮인 듯 적막하고 음침했다. 핼리혜성이 지구에 부딪는 날 흑인들이 백인을 죽이려 날뛸 것이라는 백인들의 ‘추측’마저도 머리 기삿거리가 되었다. 신문은 스스로 ‘핼리’라고 칭하는 흑인 지도자가 한 명 나올 것이라고는 것도 기사라며 실었다. 산티아고 데 쿠바 시장이 고메스 대통령에게 급전했다. “에스테노즈 일당이 몇십 명의 목을 잘랐다.” 어느 신문은 PIC 흑인 당원들이 엘 코브레의 카리다드 성모상 앞에서 모든 백인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했다는 기사도 실었다. 혜성이 지구에 부딪힐지 모른다는 그 밤에 흑인들이 집안에 마체테를 들고뛰어 들어올까 걱정해 백인들이 잠에 들지 못했다는 인터뷰 기사도 실렸다. 이웃 섬으로 카누를 타고 도망친 백인도 있었고, 들에 나가 밤을 지새운 백인들도 있었다. 그날 밤 핼리혜성은 지구에 부딪히지 않았다. 위협적인 일을 겪었다는 백인에 관한 사건 기사는 한 건도 없었다.
+ '나는 인민의 새끼입니다Soy hijo del pueblo.'는 영어 ‘I am a son of people’에 해당한다. ‘son of people’은 ‘son of bitch’를 달리 표현한 말로 ‘bitch라는 인종이 낳은 새끼‘라는 뜻이 된다. 여기서 bitch는 유색인을 가리킨다.
+ PIC. Partido Independiente de Colors는 영어 Independent Party of Color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