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레콘

14. 말레콘

#299 혁명

by 조이진

혁명

  1933년 8월 마차도가 쿠바에서 도망쳤다는 뉴스가 속보로 돌았다. 사람들은 기뻐했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카피톨리오 앞 광장에 5천여 명 이상이 군집했다. 맞은편 공원의 호세 마르티 동상에 올라간 누군가가 마차도가 하야했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기뻐하는 시위대는 대통령궁을 향했고 경찰이 발포했다. 슬로피 조 바 앞에서는 무장도 하지 않은 시위대에게 군인들이 연발 기관총을 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사체의 수를 세었고 이날 최소 20명이 사망했고 123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마차도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래도 쿠바 국민의 전국적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대규모 재무장에 몰입하는 독일 히틀러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미국은 마차도에게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쿠바에 다시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번에도 플랫 수정안이 인용되었다. 미국은 쿠바 독립 영웅 세스페데스의 아들 세스페데스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내정하는 등 마차도 정권 붕괴 뒤의 일을 야당과 협상하고 있었다. 마차도는 취임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루스벨트가 쿠바에 다시 군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므로 마차도는 미국 대사가 말한 미국의 경고는 대사가 부린 허세일 것이라고 짚었다. 그래서 마차도는 미국이 권고한 하야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미국의 해병대를 상륙시키겠다고 큰소리쳤다. 개입해 보라, 그리하면 모든 쿠바 국민이 총을 들어 미국과 싸울 것이라며 미국에 도발했다. 라디오 방송 마이크에 대고 쿠바 국민이 미국의 개입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물론 쿠바 국민은 미국이 쿠바 문제에 또 개입하는 것에는 크게 분개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쿠바 국민은 미국만큼이나 마차도를 증오했다. 이번에도 쿠바가 상황을 결정지었다. 마차도가 쿠바 국민에게 모두 일어나 미국 군대를 쫓아내 달라고 자극하고 있었지만, 군부는 오히려 마차도에게 권력을 내놓고 떠날 것을 통보했다. 실제로 동시에 여러 부대에서 쿠데타가 시도되었다. 미국이 새로 계획한 쿠바 통제 구상을 따른 군부는 주인 마차도를 물었다. 군부의 최후통첩이 있은 지 닷새 뒤 깊은 밤 파자마를 입은 마차도와 5명의 각료가 쫓기듯 공항에 나타났다. 각자 금괴를 가득 담은 배낭 2~3개씩을 비행기에 실었다. 비행기가 시동을 걸어 활주로를 향해 바퀴가 회전을 시작하는 순간은 성난 군중들이 탄 자동차들이 잔인한 피의 폭군을 찾아 탑승교를 거의 붙잡을 순간이기도 했다. 탑승교는 아슬아슬하게 비행기에서 분리되었고 가속이 붙은 프로펠러가 도는 비행기는 구동을 시작했다. 군중들은 놓친 비행기 꼬리날개에 대고 총알을 쏟아붓는 데 만족해야 했다. 동체에 잔뜩 총알을 받은 작은 비행기. 마차도가 겨우 자리에 앉았다. 창문을 올리니 빗물 흐르는 창문 너머로 불길과 연기가 솟는 아바나의 밤이 내려다보였다. 마차도의 집도 불타고 있었다. 아바나에는 회색빛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철권독재자 마차도가 무너졌다. 마차도는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황금을 들고 떠난 것으로 끝났지만, 날이 밝을 때를 알 수 없는 쿠바의 앞날은 빗속에서도 치솟는 연기처럼 음울했다. 다음날 아침 8시, 바하마 제도의 미군 고문관이 워싱턴에 급보를 타전했다. “전 쿠바 대통령 마차도가 동틀 무렵 이곳에 도착했음.” 쿠바 국민이 투쟁해 미국이라는 뒷배를 가진 마차도를 축출한 이때를 쿠바 역사는 1933년 혁명이라고 부른다.

1933년 독재자 마차도가 마이애미로 망명했다. 쿠바는 말 뿐인 공화국의 시대를 끝내는 듯했다.

  기뻐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메우고 실탄을 장전한 시민군은 프라도 대로를 행진했다. 기쁨과 분노는 약탈로 변해 마차도에 협조해 권세를 누린 자들의 집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다. 권세를 부린 자들 천 명 이상이 재판 없이 살해당했다. 마차도의 비밀경찰 수장은 프라도 대로에서 약국 앞을 지나다 총에 맞아 죽었고, 총에 구멍이 숭숭 뚫린 시체를 승리한 시민들이 대로에 전시했다. 시신을 실은 자동차들이 거리를 돌며 승리를 증명했다. 머리는 광장에, 몸은 그의 부모의 집 대문 앞에 내걸린 시체도 있었다.  대통령 궁에 난입한 군중들은 이제 이 집은 민중들의 것이라고 외치며 물품을 들고나갔다. 무능력했던 임시직 대통령 세스페데스의 호화로운 저택도 목표물이 되었다. 폭동은 공산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 주도했다. 미국에서 텔레비전이 이제 막 보급되고 있을 때였으므로 NBC, CBS 같은 신생 TV 방송사들에 이보다 텔레비전에 적합한 ‘그림’은 있을 수 없었다. 미국 방송만 보면 쿠바는 지금 흑인들이 일으킨 인종 폭동에 휩싸여 있었다. 흑백이었지만 피 흘리는 아바나 현장을 실감 나고 생생하게 촬영한 영상을 송출할수록 브라운관 텔레비전도 잘 팔렸다. 흑인과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주도했던 산티아고 시장의 저택도 약탈당하였다. 바하마를 거쳐 마이애미 비치에서 마차도는 쿠바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에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공산주의는 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였다. 우익 성향의 ABC방송도 마차도의 주장대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마차도가 쫓겨났다고 보도했다. 마차도는 마이애미에서 69세에 사망했다. 독립 전쟁 지도자 가운데 가장 젊은 장군이었던 그는 많은 국민의 지지 속에 통치를 시작했지만 부패했고 미국의 이익을 이용해 권력을 사유화했다. 쿠바 국민이 그런 그를 축출했고, 미국의 호수 안에 떠 있는 악어를 닮은 섬이 공산화할 것을 걱정한 미국이 마침내 그를 버렸다.

마차도가 떠난 쿠바는 혼란했다.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사들에게는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영상 소재였다.


 만일 마차도가 소요 사태를 성공적으로 진압했다면 미국은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미국이 투자한 자본의 이익과 안전, 그리고 미국 주변국이 공산화를 막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인 1930년에 미국은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에 마차도의 친구 라파엘 트루히요를 지명했다. 트루히요는 자그마치 31년간 통치했고, 미국은 그가 잘 해내도록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트루히요는 마차도가 미국에 그렇게 버림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군인들을 동원해 정적을 살해하고 테러했다. 미국 해병대가 니카라과에서 벌인 오랜 군사작전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는 마치 옆 방에서 고문당하는 친구의 비명이었다. 미국은 미 군정 종식과 주권의 독립을 요구하는 산디노 혁명군에게 대항할 소모사 군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지원해 군사 훈련을 시켜 싸우게 해 반미 세력을 뿌리까지 뽑아내고 독재정권을 세웠다. 미국 해병대의 위장막 아래서 소모사 왕조는 1934년부터 2대에 걸쳐 45년간 유지되었다. 1979년에 산디니스타 혁명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반공주의를 체제 이념으로 장기 독재한 소모사 정권을 끝냈다. 반미 해방 지도자 산디노는 니카라과의 국민 영웅으로 추대되었고, 미국 제국주의에 고통받아온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에 대항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마차도, 트루히요, 소모사는 미국의 꼭두각시 삼총사들이었다.

니카라과의 반미 투쟁 영웅 산디노. 그를 따르는 니카라과의 반미세력이 산디니스타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미국에 저항하는 영웅으로 여긴다.

미국은 이들이 국가를 안정 상태로 유지할 수만 있었다면 언제까지고 뒤를 받쳤을 것이었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독립된 주권국이 되어 불안정해지거나 공산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익을 방해하는 체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어느 곳에서든 붉은 깃발이 올라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고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점령하에 있어야 했다.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20세기 초 쿠바를 시작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친미 대리 정권을 통해 사실상 미국이 ‘또 하나의 아메리카’를 통치했다. 마차도는 비행기를 타고 쿠바를 떠났다. 그리고 미국이 원하지 않는 정권이 탄생했다. 미국의 ‘또 하나의 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생긴 일이었다. 쿠바 국민의 3차 독립 전쟁에 끼어들어 미국이 스페인에서 쿠바를 넘겨받은 지 35년 동안 유지돼 온 쿠바의 ‘유사 공화국pseudorepublic’은 부서졌다. 쿠바는 이제야 비로소 쿠바 국민의 공화국이 되었다. 콜럼버스가 쿠바를 침공한 뒤 처음으로 스페인이든 영국이든 미국이든 외세의 승인이 없이 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도망치는 마차도의 비행기 뒤꽁무니에 대고 총알을 쏟아부은 지 20년 뒤 쿠바는 다시 혁명의 총탄을 쏟아야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4. 말레콘